Login

그날이 그날

김 베로니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03-23 13:40

김 베로니카 / 한국문협 벤쿠버지부 회원



  전부터 캐나다로 놀러 오겠다던 친구는 올해도 같다고 한다. 일찍 남편과 사별한 함께 살기 시작한 조그만 식구 쪼코 때문이다. 나이가 이젠 사람으로 치면 80 넘은 격이라 여기저기가 좋아지고 있다 했다. 작년부턴 많이 아파 어디 두곤 나올 수가 없단다. 누구에게 맡기지도 하고 강아지 곁을 떠나지 하는 친구가 안쓰럽다. 외로워서 어찌 살거나 힘들어하고 무척이나 우울해하던 친구 곁에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어 조그만 반려 쪼코는 그렇게 친구의 식구로 살아온 10년도 넘은 같다. 그날이 그날인 우리들의 안에 들어와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행복을 안겨다 주는 쪼코가 있었기에, 오늘도 친구는 살아갈 수가 있는 힘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다람쥐 쳇바퀴 매일 똑같은 일상이 때로는 숨이 막히게 답답했지만, 그런 오늘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또한 있는 것이다. 무의미하고 별다른 느낌도 없는 하루가 얼마나 고맙고 귀한 날이었다고 느끼게 것도 하나의 축복임엔 틀림없다근간 나에게도 요즈음의 나날들은 정말 막히고 답답하고 무료하다고 느껴 우울한 적이 있었다. 노년의 삶이라는 이리 힘들게 다가올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현실 앞에서 그저 시간만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두려웠다. 의욕이 없다는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참 일할 그저 편히 있는 그런 한가한 시간이 나에게 하루라도 주어진다면 하고 바란 적도 많았었다. 늘어지게 낮잠도 한번 자고 싶었고 이리저리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하루를 보내고도 싶었다. 커피 한잔 손에 들고 보고 싶은 책도 읽고 그저 하고 싶은 데로 며칠만 그렇게 지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도 했던 같다.

 

  젊은 날엔 남들이 한창 휴가를 즐기는 날씨가 상쾌하고 맑은 날에는 열심히 일했다. 추운 겨울에야 조금 한가해지니 그땐 시간을 내서 가까운 곳으로 다녀오곤 했다그런 날엔 하루나 이틀 만에 돌아오는 고된 일정이었지만 피곤한 줄도 몰랐었다. 그렇게 바쁘게 지냈는데 이젠 시간이 남아도는데 일이 없다. 갈수록 삶이 재미가 없어지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가고 싶은데도 없으니 앞으로 어찌 살지 막막하다. 무엇을 봐도 그저 멍하고 감정이 살아있지 않으니 우울증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이 오늘이라 하지 않던가, 내일이면 하루만큼 늙은 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늙기 전에 용길 내야 한다. 100 시대에 살고 있으니 지금이 무엇이라도 시작할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고 도전해 일이다. 바쁘게 일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서 여행을 다니던 그때가 그립듯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 후에는 지금의 내가 안이하게 보낸 날이 아쉬워질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원망과 자책을 할까 두렵기도 하다.

 

  우리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나 이웃들에게 인사를 주고받을 , 지루한 일상에서 주고받는 인사말이 '그냥,그날이 그날'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볼일 없고 의미 없이 보내는 날들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다. 오늘이 오늘이란 어찌 생각해보면 행복한 일상임엔 틀림이 없다. 환란 없이 평범하게 주어진 그날이 사실은 받은 날이 아니겠는가.

 

 요즈음같이 작은 바이러스 때문에 세상이 술렁이고 삶이 불안정하고 일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우리는 오늘 같은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날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평범하던 하루하루가 참으로 고마웠던 날이었다고 생각된다. 무심코 내다본 아침 하늘에, 구름 속에 떠오르는 눈부신 햇살에, 무상한 하루가 나에게 주어짐에 가슴으로부터 차오르는 벅찬 희열을 느낀다. 상쾌한 아침 공기가 내게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도 생각하게 만든다. 마음대로 가고 싶은에 있고 다정한 이웃들과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하며 나누던 잔에도 우리의 가슴은 뜨거워지기도 한다. 자유롭게 살아간다는 얼마나 복된 삶인지 새삼 느끼게 해주는 나날이다.

 

  일어나지 않을 같던 일이 일어나므로 해서, 많은 사람에게 삶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세상의 이치도 다시 일깨워주는 요즈음의 일상이 어쩌면 필요악이라는 생각도 본다. 하늘을 쳐다보자. 비록 내리는 회색의 하늘이지만 높은 곳에는 찬란한 빛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듯이, 매일 자리에 있어 줘서 정말 고마운 하늘이다. 주위의 모든 것에 마음이 담긴 시선을 주면서 서로 사랑하자. 주어진 날에 감사할 모르고 산다면 똑같은 하루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아쉬워서 애타게 원하고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하자. 그날이 그날인 날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그리고 후회 없는 그런 날을 보내야겠다. 행복이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즐기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면서 오늘을 불행하게 보내는 그런 삶에서 벗어나자. 그날이 그날인 가운데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오늘이 됐으면 좋겠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 베로니카의 다른 기사 (더보기.)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홍안에서 노안으로>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 난처했던 적도 꽤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비교적 젊게 보니 마음이 흡족할 때도 있었다.20대 초반 제대 후 복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경기도 안양시 어느 변두리를 걷고 있었는데, 불량하게 보이는 학생 세 명이 나에게 다가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 명은 체격이 작았지만 뒤에 2명은 보통 체격...
이형만 외 2인
<고귀한 분실>  해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꽃이 필 때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이 고마운 손님은 산란기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인 모천까지 무사히 회귀하는 연어들이다.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먼 바다에서부터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하천 상류 얕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연어에게 주어진 태생적 생존 본능이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양현석 외 2인
  팔루스는 사진 모임에서 매년 세 네 차례 출사를 가는 곳이다. 팔루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서부 맞닿은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한 밀밭 곡창지대이다. 구릉과 평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싹이 돋는 봄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갓 태어난 푸른 밀들이 춤을 추고, 여름이 다가오면 노란 유채꽃들과 푸른 밀들이 축제를 벌이고, 가을엔 밀들이 베어진 대지가 마치 전라의 여인처럼 본래 대지의 아름다운...
박광일
그래도 봄은 온다 2024.03.25 (월)
경칩 지나 춘분으로가는 길모롱이 언덕 바지에불현듯 반짝이는보라 빛 고운 웃음소리긴 긴 겨울 잔인한 혹한 속에서그래도 봄은 온다고옹기 종기눈 녹은 양지녘에 모여 앉은여리고 작은 제비꽃 가족반짝이는 보라 빛 비단 실 입에 물고대지 위에 점점이희망이란 단어를 환하게 수 놓고 있다
임완숙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