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시인 김삿갓이 어느 마을 유지의 환갑잔치에 가게 되었다. 남루한 행색으로 인하여 처음에는 말석에 앉아 있었으나 김삿갓임을 알아본 큰아들이 상석으로 그를 안내한 후 축시 한 수를 부탁했다. 술 한 잔을 들이켠 후 김삿갓은 천천히 시 한 수를 읊었다.
"저기 앉은 노인은 사람 같지 않고
일곱 아들은 모두 도적이다."
좌중은 모두 대경실색했다. 더구나 김삿갓을 상석으로 안내한 큰아들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아니, 처음엔 몰라보고 말석에 앉혔다지만...... 어찌 이 자가 좋은 날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노비들이 잔치를 망친 김삿갓을 끌어내려고 슬슬 주위로 모여들었다. 김삿갓은 개의치 않고 주위를 한번 쓱 둘러본 후 술잔을 가득 채워 단숨에 비운 뒤 다음 줄을 읊었다.
" 어느 날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왔나
천도복숭아를 훔쳐다 잘도 봉양했구나"
사람 같지 않은 노인은 신선으로, 일곱 아들은 한 개만 먹어도 천 년을 산다는 천상의 복숭아를 갖다 바친 효자가 되었으니...... 기막힌 반전 시에 좌중은 넋을 잃었고 마을 유지는 김삿갓을 자기 옆에 앉힌 후 극진히 대접했다고 한다.
요즈음 인터넷 댓글을 보면 덕담보다는 험한 말이 판을 친다. 악성 댓글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자 일부 포털에서는 연예면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애 버렸다. 또한 요즘 정치인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원색적인 비방과 욕설로 날을 지새운다. 새도 좌.우 날개가 있어야 날 수 있고 비행기도 한쪽 날개만 있다면 제자리만 맴돌거나 추락할 것이다. 공생을 위한 건전한 비판은 간 곳이 없고 오직 비난과 추궁만 난무할 뿐이다.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자기편은 감싸고 상대방은 대역 죄인이 된다. 인생 백 세 시대라지만 좋은 말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할 말은 하더라도 김삿갓 같은 풍자와 해학이 아쉽다.
새해가 되니 카톡으로 여기저기서 안부 인사가 들어 온다. 복사한 연하장이나 동영상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짧은 글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글들도 많이 보낸다. 어떤 글은 돌고 돌다 보니 같은 내용의 좋은 글을 여러 사람에게 받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몇십 년 전 필자가 노트에 메모해둔 글이 오는 경우도 있다. 젊은 시절에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면 노트에 메모해 두고는 했다. 한창 독서에 열중할 때는 매일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을 때도 있었다. 두툼한 대학노트 한 권이 금세 명언들로 가득 찼다. 이를 바탕으로 다니던 은행 사보에 독후감과 수필을 몇 번 올렸더니 얼마 후 직장 동료들에게서 작가 선생(?) 이란 칭호를 받게 되었고 사보 편집위원으로도 위촉이 되었다. 금융 관련 월간지에서도 수시로 원고 청탁이 들어 왔다. 원고료도 꽤 짭짤해서 용돈이 궁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 당시 메모해 두었던 글들이 지금도 카톡으로 유통되는 걸 보면 명언은 역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모양이다.
어느 여론 조사를 보니 사람들이 죽을 때 제일 많이 후회하는 것이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것이라고 한다. 돈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성공과 실패도 아닌 심각한 생이란 것이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수긍도 된다. 명언과 좋은 글이 인생의 지침이 될 수는 있지만 그대로 실천하기에는 얼마나 힘이 드는가? 때로는 수도자 같은 삶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새해에는 좋은 글과 더불어 유머와 해학에 대한 글도 공유하여 유쾌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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