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도자기로 만든 큰 화로가 있었다. 추운 겨울밤 그 화로에는 언제나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이 타고 있었다. 거기다삼발이를 올려놓고 밤도 구워 먹고 차도 끓여 먹었고 늦은 시간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된장찌개도 보글보글 끓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듯 보였다. 도자기에 그려진 호랑이 문양도 그렇고 금이 간 자리에 철삿줄로 얽어맨 모양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딸만 셋을 계속 낳아서 힘들어하든 어머니가 바로 내 동생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 귀한 남동생이화롯가를 맴돌면서 놀다가 화로 위에서 끓고 있던 숭늉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엎어지면서 화상을 입었다. 마침 그때 귀한 공작실로 짠털옷을 입고 있어서 더 심하게 다쳤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빠르게 치료를 해서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그 후론 별로 화로에 대한 추억은없어진 것 같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화로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검은 재속에서도 언제나 불씨는 살아있었고 부젓가락으로휘저으면 재속에 숨어있던 빨간 숯덩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불꽃을 일으키곤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모로 힘든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어두운 일상이 너무 삶을 힘들게 할 때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 가닥 희망의 불씨가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다.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차갑게 식은 것 같은 그 불씨가 우리에게 불꽃을 일으켜서 살아갈 힘을 준다. 그마저 없다면 우린 아마도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았을 것 같다.
불씨란 참 좋은 것이 틀림이 없지만 어떤 곳에서 어떻게 불씨가 일어나는지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곳에는 불씨가 참으로 희망적이고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 지펴진 불씨는 아주 꺼진 것만 못 할 수 도있다. 유년기에 우리는 많은 일에 호기심과 더불어 여러 가지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에는 좋은 기억과 더불어 생각하기도 싫은 일도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사춘기에 움트는 아스라한 사랑에 대한 끝없는 방황과 내 앞날에 대한 불안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 우리에게 불씨로 남아 마음속 어두운 곳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갑자기 불꽃으로 변해서우리 삶 속에 끼어든다. 그 불씨가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불씨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것이라면 우리의 앞길도 평탄해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걸림돌이 된다면 우린 많은 고통과 좌절에서 헤매면서 힘든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래전에 유행하던 불씨란 노래 속에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애틋함과 더불어 사랑의 불씨마저 꺼져버려 절망 속을 헤매는 그런 노래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와 가수의 음색도 희망마저 저버린 듯 한 우울한 노래가 한동안 내 마음속에 맴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아마 작은 불씨마저 꺼진 듯 힘들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때도 내 가슴속엔 불씨가 꺼진 듯 했지만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주고 있어서 오늘의 내가 존재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장 중요한 희망이란 불씨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 사실이다. 오늘을 열심히 그리고 마지막 날인 듯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은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루를 마감하고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후회투성이고 왜 그랬을까 하고 내일은 다른 하루가 되겠지 하면서 희망을 걸어본다. 내가 마지막 가는 날까지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은 불씨가 있다면 하느님께바치고 싶은 사랑이다. 그 불씨만은 꺼지지 않게 소중히 간직해 조금씩 피워 환한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남은 날들에 하루하루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고 싶다면 그것 또한 욕심일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간직한 불씨를 간직한채 꺼뜨리지 않고 희망 속에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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