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불씨

김베로니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12-16 08:51

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도자기로 만든 큰 화로가 있었다. 추운 겨울밤 그 화로에는 언제나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이 타고 있었다. 거기다삼발이를 올려놓고 밤도 구워 먹고 차도 끓여 먹었고 늦은 시간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된장찌개도 보글보글 끓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듯 보였다. 도자기에 그려진 호랑이 문양도 그렇고 금이 간 자리에 철삿줄로 얽어맨 모양도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보였다. 딸만 셋을 계속 낳아서 힘들어하든 어머니가 바로 내 동생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 귀한 남동생이화롯가를 맴돌면서 놀다가 화로 위에서 끓고 있던 숭늉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엎어지면서 화상을 입었다. 마침 그때 귀한 공작실로 짠털옷을 입고 있어서 더 심하게 다쳤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빠르게 치료를 해서 상처는 남지 않았지만, 그 후론 별로 화로에 대한 추억은없어진 것 같다. 언제 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 화로가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검은 재속에서도 언제나 불씨는 살아있었고 부젓가락으로휘저으면 재속에 숨어있던 빨간 숯덩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불꽃을 일으키곤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여러모로 힘든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어두운 일상이 너무 삶을 힘들게 할 때도 언제나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한 가닥 희망의 불씨가 우리의 삶을 지탱해준다.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차갑게 식은 것 같은 그 불씨가 우리에게 불꽃을 일으켜서 살아갈 힘을 준다. 그마저 없다면 우린 아마도 훨씬 더 힘든 삶을 살았을 것 같다.
  불씨란 참 좋은 것이 틀림이 없지만 어떤 곳에서 어떻게 불씨가 일어나는지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곳에는 불씨가 참으로 희망적이고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 지펴진 불씨는 아주 꺼진 것만 못 할 수 도있다. 유년기에 우리는 많은 일에 호기심과 더불어 여러 가지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중에는 좋은 기억과 더불어 생각하기도 싫은 일도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사춘기에 움트는 아스라한 사랑에 대한 끝없는 방황과 내 앞날에 대한 불안한 여러 가지 감정들이내면의 깊은 곳에 숨어 우리에게 불씨로 남아 마음속 어두운 곳에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되면 갑자기 불꽃으로 변해서우리 삶 속에 끼어든다. 그 불씨가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서 중요한 갈림길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 불씨가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것이라면 우리의 앞길도 평탄해지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걸림돌이 된다면 우린 많은 고통과 좌절에서 헤매면서 힘든 삶으로 나아가게 된다.
  오래전에 유행하던 불씨란 노래 속에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해 애틋함과 더불어 사랑의 불씨마저 꺼져버려 절망 속을 헤매는 그런 노래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와 가수의 음색도 희망마저 저버린 듯 한 우울한 노래가 한동안 내 마음속에 맴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아마 작은 불씨마저 꺼진 듯 힘들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때도 내 가슴속엔 불씨가 꺼진 듯 했지만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주고 있어서 오늘의 내가 존재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장 중요한 희망이란 불씨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 사실이다. 오늘을 열심히 그리고 마지막 날인 듯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은하지만 그렇게 하루를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루를 마감하고 자리에 누워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후회투성이고 왜 그랬을까 하고 내일은 다른 하루가 되겠지 하면서 희망을 걸어본다. 내가 마지막 가는 날까지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은 불씨가 있다면 하느님께바치고 싶은 사랑이다. 그 불씨만은 꺼지지 않게 소중히 간직해 조금씩 피워 환한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고 싶은 열망이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내 남은 날들에 하루하루를 타오르는 불꽃처럼 살고 싶다면 그것 또한 욕심일까?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가슴속에 간직한 불씨를 간직한채 꺼뜨리지 않고 희망 속에서 열심히 하루를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