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친정 엄마는 아흔 셋, 열 여덟 에 시집을 와 아흔 여덟 아버지와 목하 76년째 해로 중이시다.
지금도 삼시 끼닛거리를 장만하고 얼룩얼룩한 꽃무늬보다 베이지나 보라색 옷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집 앞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곤 하신다.
삼십 년 가까이 변두리 아파트에 짱 박혀 살다 보니 집과 함께 낡아 가는 사람들끼리 대강은 서로 낯이 익은 처지다.
"할마이도 많이 늙으셨네. 모시옷 날아갈 듯 입고 나서면 동네가 다 환했었는데... "
나무 아래를 지나던 영감이 두런두런 아는 체를 했다. 엄마도 비주룩이 웃어 주었다.
"그래도 손은 안즉 참 곱소잉. 한번 잡아 봐도 되오?"
세 살 터울로 일곱 남매를 키우느라 남정네 손이라곤 아버지 말고는 잡아볼 기회조차 없으셨을 엄마,
기가 차 대꾸도 안 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고쳐 앉았더란다.
"잡아 보시오. "
삭정이같이 거친 손이 그래도 뜨뜻미지근은 했다던가.
"그래..., 영감은 몇 살이나 자셨소?"
손 놓고 연식을 따지다 보니 영감님 나이가 아뿔싸, 큰아들보다 고작 몇 살 위였다나.
구십 마나님과 칠십 영감님이 느티나무 아래서 손잡는 상상에 모처럼 모인 딸들, 배를 쥐고 웃었다.
"근데 엄마, 무슨 맘으로 외간 영감한테 손을 허했소 그래?"
"죽으면 썩을 육신, 이제 뭐 할 것이냐. 것도 다 목숨 붙어 있을 때 베푸는 보시 아녀?
3동에 사는 늙은이인데 할멈이 앓다 먼저 갔다누만."
내 보기엔 영감님이 나이 드신 누님 손을 잡아 준 것 같은데
엄마는 한사코 연하의 남정네가 '데시'한 거라고 우기고 싶은 눈치다.
시시비비 가려 무엇하리. 살아 있는 목숨끼리 나누어 갖는 생명의 온기가 뭉클한 것을.
친정에 다녀온 후 내게도 감히 생심生心이 솟았다. 삼십 년쯤 뒤,
느티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춥고 외로운 과객을 향해 선심 한 번 오지게 쓰고 싶은 것이다.
관세음보살처럼 그윽하게, 지하 여장군처럼 호기롭게.
"잡아 보시오."
하하하.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최민자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