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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생(己亥生)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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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10-15 15:39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이달 말이면 이 땅에 태어난 지 60번째 생일을 맞게 된다. 마음 같아서는 그날이 노래 제목과 같이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되었으면 하지만, 사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돌아보면 내세울 만큼 딱히 이룬 것이 없고, 그나마 시간만큼은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대왔다는 자괴감에 그만 마음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움츠러들고 만다. 사실 요즘은 ‘갑장이’들을 만나면 반갑고 서로 위로가 되는 듯하여 동갑 모임이나 동갑끼리 운동을 자주 하게 되고, 또 하나는 ‘노년의 지혜’나 ‘노년의 진정한 멋’을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 강좌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된다. 지난 달에도 문협 모임에 나가 ‘노년의 멋’을 주제로 강좌를 진행한 한 문우님의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세우고 듣고 오기도 하였다.

원근각처에서 친구, 지인들이 보내주는 카톡 영상과 수 많은 글 가운데에서도 정치관련 내용은 열어보지 않고 패스하게 되고, 노년의 삶을 다룬 내용과 건강관련 정보들은 빠짐없이 열어보고 읽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성호 이익 선생의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 그러하다. ‘낮에는 꾸벅꾸벅 졸지만, 밤에는 잠이 오지않고, 곡할 때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는 눈물이 나며, 30년전 일은 기억하면서 눈 앞의 일은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고기를 먹으면 배 속에는 없고, 이빨 사이에 다 끼고, 흰 얼굴은 검어 지는데 검은 머리는 희어지네.’ 그런데 다산 정약용 선생은 이런 것들이 실은 좌절이 아니고 즐거움이라고 역설하였으니, ‘대머리가 되니 빗이 필요치 않고, 이가 없으니 치통이 사라지고, 눈이 어두워 공부를 못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귀가 안 들려 세상 시비에서 멀어지며, 붓 가는 대로 글을 쓰니 손 볼 필요가 없으며, 하수들과 바둑을 두니 여유가 있어 좋다.’고 과연 다산다운 배포와 해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의 여류작가 소노 아야코(1931년생)는 40세 되던 해부터 노년에 경계해야 할 것들을 메모 형식으로 기록하여 ‘계로록(戒老錄)’을 출간하여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몇 가지를 발췌해보며 남은 삶의 지표를 삼아보고자 한다.

1. 나이가 들면 젊었을 때 보다 자신에게 더욱 더 엄격해져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귀찮아도 많이 걷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2. 생활의 외로움은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외로움은 노인에게 공통의 운명이자 최대의 고통일 것이다. 매일 함께 놀아주거나 말동무 해줄 사람을 늘 곁에 둘 수 없다. 목표를 설정해서 노후에 즐거움을 얻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3. 마음에 없는 말을 거짓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됐어” 라고 사양하면 젊은 세대는 주지 않는다. “나도 먹고 싶은데 하나씩 돌아가나?” 라고 말해야 한다.

4. 혼자서 즐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무도 없어도 어느 날 낯선 동네를 혼자서 산책 할 수 있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5. 여행은 많이 할수록 좋다. 여행지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어디서 죽든 마찬가지이다. 고향에서 죽는다 해서 무엇이 더 좋은가? 자필로 서명된 화장(火葬) 승낙서만 휴대하고 다니면 된다.

6. 관혼상제, 병문안 등의 외출은 일정 시기부터 결례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부터 기도하는 것이다.

7. 노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과의 화해이다

  10월말이 찾아오기 전에 무엇보다 7번 항목을 실천하고자 다짐해본다. 그 날이 진정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 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자축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가만히 불러본다.


살아가는 이유 꿈을 꾸는 이유
모두가 너라는 걸
네가 있는 세상 살아가는 동안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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