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지금은 웃으면서 회상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지난해 나는 예상치 못한 일들로 학교에 불려갔던 일이 있다. 캐나다에서 지낸 지 2년 차에 접어들었던 터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해 조금은 방심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놓고 있다가 불쑥 학교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크게 당황했던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학교에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먹거리들을 사러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들을 카트에 담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진동했다. 발신인을 보니 학교 오피스다. 대체로 학교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좋은 소식이 아니기 때문에 덜컥 걱정도 되고, 궁금함도 일었다. 무슨 일일까? 아이가 무엇을 놓고 갔는가? 다쳤는가? 걱정을 담아 전화를 받았다.
놀랍게도 사무실이 아니라, 교장 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했다. 심각한 목소리로 간단한 상황과 입장을 이야기하더라. 내용인 즉 우리 아이 둘이 학교 내에서 형제 다툼을 벌이다가 ‘죽인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고, 이 사항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기 때문에 나와 직접 대화를 해야겠다는 것이다. 조금 놀랍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게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겨우 대화 중에 일어난 작은 일로 전화를 하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던 것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서 찬찬히 대화를 나눠보니, 아이 둘이 대화를 하며 격앙된 소리로 ‘죽을 줄 알아!’라고 했고, 그것을 궁금해하는 교장 선생님께 번역을 해서 알려주며 ‘킬(kill)’이라는 단어를 써서 표현했나 보더라. 아이가 좀 어려서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캐나다식으로 순화해서 설명하는 것도 잘하지 못했던 듯했다. 어쩌면 본뜻을 전달하지 못한 채 왜곡된 말을 했던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알았으니 이걸 전달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더라. 영어 실력이 부족하기도 하거니와 문화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것부터 해야 했으니 말이다. 최대한 설명을 하다가 결국 그 다음 날 통역까지 와서야 일이 해결되었다. 정확히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시고, 이해를 시켰고 나도 여기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처리 과정에 물론 감정적으로 짜증도 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헤매기도 했지만 잘 일단락되었다는 것이 안도했던 경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이 쉽게 ‘죽인다’는 말을 하게 된 배경엔 내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도 이런 언어사용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이 없었는데, 나 자신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하게 되더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참으로 ‘피곤해 죽겠다.’, ‘죽을 줄 알아’. ‘죽는다!’ 하면서 쉽게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하는 언어 습관의 모델은 분명 나다. 영어를 쓰는 캐나다에서 한국어 언어 습관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밖에 없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습관들 에도 눈을 뜨게 되기도 했다.
자극적이고 불편한 말들을 써야 의사가 잘 전달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참으로 나쁜 단어들이 언어 속에 이리저리 박혀있는 것들이 그제야 보이더라. 아마 그 안에 젖어서 채 알지 못했던 것들을 조금 떨어져 여기서 눈치챈 것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아이들이 배우는 한국어는 옳고 바르게 하리라. 그런 다짐도 했다. 오롯이 나의 거울과도 같은 모습으로 성장할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바른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그리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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