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완성된 포도나무 지지대는 멋진 그늘막이 되었다. 지난주 로이가 세워준 프레임 위에 나무 막대들을 격자로 얹고 포도나무 가지들을 보기 좋게 묶어주었다. 지난봄부터 도면을 그리고 필요한 장비와 재료를 찾아 발품을 팔던 일들이 드디어 마무리가 되었다. 사실 로이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 우리 힘으로 그늘막을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4개의 쇠파이프로기둥을 세운 후 4개의 쇠파이프를 그 위에 연결해, 사방 ㅁ자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우선 원하는 길이의 쇠 파이프를 구할 수 없었다. 로나, 홈 디포, 포코 빌딩 서플라이즈에선 목재와 달리 쇠 파이프 컷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해머나 파운더 등 땅에 쇠 파이프를 세우는 일도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고심하던 우리에게 쇠 파이프 지지대를 설치해 오이 농사를 짓는 옆 밭의 베티가 로이를 소개해 주었다. 콜로니 텃밭 농장에서 20여년 농사를 짓다 은퇴한 로이는 농장의 궂은일과 회원들을 기꺼이 돕는 캐나다인이다.
어느 날, 텃밭에서 로이를 만나고 온 남편은 뜻밖의 말을 했다. “아니, 내 도면을 꼼꼼히 보더니 자기 집에 있는 쇠 파이프를 용접하면 우리가 원하는 길이를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하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로이한테서 콜로니 농장에서 다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이미 용접한 쇠 파이프 프레임을 우리 밭으로 옮겨 놨으니, 땅에 프레임 세우는 일을 같이하자는 내용이었다. 남편과 내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꼿꼿하고 마른 체구의 노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악수를 청하는 로이의 손은 거칠고 투박했으나 온화한 표정에 눈빛은 부드러웠다.
“우리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덕분에 우리의 오랜 문제가 해결됐습니다.”라는 내 인사에 그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며 트럭에서 연장을 챙겨 앞장서 우리 밭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텃밭 구석에는 이미 로이가 가져다 놓은 쇠파이프 프레임이 놓여 있었다. ‘이 무거운 프레임을 어떻게 옮기셨을까---!’ 용접한 쇠파이프의 이음새도 아주 매끄러워 보였다. 로이의 진두지휘로 미리 표시한 땅에 프레임을 일으켜 세우자,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뭉툭한 해머로 쇠 파이프를 내리쳤다. 얼마 후 숙련된 솜씨의 로이가 작업을 마치고 한숨 돌릴 때, 남편이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로이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고맙다는 인사만으로 충분하다.”
그의 꾸밈없는 태도에는 진정성이 묻어 있었다. 인종과 종교, 정치적 이념의 편견 없이 다른 사람을 돕는 그의 순수한 심성에서 인간의 향기가 배어 나왔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와 실리가팽배한 요즘 세태에 그는 조건 없이 남을 돕는, 참된 삶의 방향을 향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활련화 향기 그윽한 그늘막에서 나는 오늘 로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온 가족이 당신이 만든 덜 매운 김치와 양념갈비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앞으로 갈비양념 레서피를 제외한 더 이상의 답례는 원하지 않는다. 당신이 누군가를 돕는다면 그것이 나에 대한 답례이다.” 로이는 바라는 바 없이 베푸는 ‘무주상보시 (無住相布施)’의 어려운 과제를 말하고 있었다.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고, 튼튼한 집을 지어 우물을 파고 과일나무를 심어, 땅을 아름답고 소망스러운 곳으로 만드는 사람은, 비록 그 일로 자신은 이익을 얻지 못한다 해도 오랫동안 이땅 위에 쓸모있는 자산을 이룬 것이다.” 언젠가 텃밭의 그늘막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휴식의 공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철학자 에머슨의 말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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