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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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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8-20 16:50

수필가 심현숙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얼마 전 63년 지기 친구의 비보를 접했다. 2주전에 친구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낸 내 글을 읽었는지 확인하던 차 이상한 걸 발견했다. 친구사진이 있던 자리에는 언젠가부터 야생화로 바뀌더니 이제 그것도 없어지고 이름 세자 아래에는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물음표가 있다. ‘번호를 바꿨나?’ ‘혹시 무슨 일이 있나?’ 단숨에 렌트 룸으로 돌아와 전화를 해봤으나 ‘고객의 사정으로 당분간 착신이 정지 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왔다. 불길한 생각이 스치자 급히 친구동생에게 전화를 했으나 세 번 만에 겨우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언니 작년 11월18일에 돌아가셨어요.” 10여년 만에 암이 재발되어 허리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떠났다고 한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총동원해 치료했으나 살릴 수가 없었다며 울먹였다. 미국에서 실험단계에 있는 약까지 고액을 주고 공수해 와 사용했지만 폐와 뇌로 이미 전이 된 암을 극복할 길은 없었다고 비통해했다.

  친구의 죽음은 충격적이지만 실감이 나지 않는다. 3년 전 친척의 결혼이 있어 서울에 갔을 때 만났는데 그 때는 전혀 병색이 없었다. 나는 친구가 10여 년 전 암을 앓았는 줄도 몰랐다. 왜 말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의문이지만 아마 그 말을 들으면 내가 힘들까봐 말하지 않았지 싶다. 그런 줄도 모르고 건강 보조제 한통을 선물로 내밀며 ‘항암제, 시력강화,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며 TV 광고문을 줄줄이 뇌었던 생각을 하니 정말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걸 받아든 친구는 고맙다며 강남에 있는 담당 한의사에게 보이고 먹겠다했다. ‘이제 나이가 드니 건강관리를 체계적으로 하는 모양이네’라고만 단순하게 여겼지 암이라는 병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부분 나의 모국방문은 5-7일, 길어야 9일 정도였다. 몸이 불편한 남편을 두고 오래 있을 수가 없다보니 친정어머니를 뵙고 볼 일을 보면 곧 바로 돌아오곤 했다. 그 바쁜 일정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뺄 수 없는 건 친구를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 살지 않는 형제들은 나를 보러 상경했지만 나는 친구를 보기 위해 수원으로 내려 간 적이 많았다. 오래도록 그곳에 터를 잡고 산 친구는 복잡한 서울을 좋아하지 않았다.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온 그에게는 바다를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수원이 고향처럼 편안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났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를 따라 장흥군 관산면에서 유년기를 보냈는데 우리와는 억양이 다른 아이들이 관산초등학교에 한명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피난민 촌에서 사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는 금 새 친해졌다. 그 만큼 세상이 따뜻했고 사람들은 순수했다. 고교졸업 후 안 일이지만 그 친구는 나보다 네 살 연상이었다. 여기저기 피난을 다니다보니 호적을 만들 수도 없었고 그 나마 부모가 돌아가신 아이들은 생년월일을 알 수가 없어 제대로 기록된 사람이 없다고 한다. 입학하기 전까지는 한글도 몰랐으나 나이가 있다 보니 4학년으로 들어와 1년간 4년의 과정을 마친 셈이다. 사실 나이든 학생들에게는 한글 깨우치기와 덧셈 뺄셈 구구단 외우기, 그리고 곱하기와 나누기가 그리 힘 든 교육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5학년 때 반장이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며 우리의 우상으로 우뚝 섰다. 내가 그와 가까워진 건 고등학교 때부터이다. 중 3년간은 떨어져 있었으나 내 마음속에는 그 친구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등학생이 되자 광주에서 다시 만났고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서먹했지만 서로 집으로 오가며 가족처럼 되었다.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한 시기였기에 다른데 눈 돌릴 여유가 없었다. 나보다 공부 잘 했던 그를 질투한 적도, 자기보다 좋은 환경을 갖은 나를 시샘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을 뿐 더러 상대를 언제나 존중하며 믿었다. 오래 만나지 못해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친구를 기다릴 거라는 믿음이 힘든 나를 버티게 했다. 내게 그런 사람이 몇 마디 문자도 안 남기고 떠났다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허무하다. 그러나 몇 번이고 생각해보니 물가의 새처럼 조용히 떠난 것도 모두가 나를 위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힘든 친구를 자기까지 가세하여 무너지게 하고 싶지 않은 심중이 아니었을까. 그 숭고함이 나를 아프게 한다. 소식 전하지 못하고 목소리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떠난 마음이야 오죽 했을까. 이리 쉬 떠날 줄 알았으면 ‘사랑한다’고 말할 걸, '내가 먼저 시집가버려 미안하다'고 말 할 걸, 옷 한 벌 사준다 할 때 얻어 입을 걸, 밴쿠버에 초대할 걸 그랬나보다. 죽음 앞에서는 후회뿐이다. 지금 친구를 잃은 나는 허허로운 벌판에 멍하니 서있는 아이같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지만 64년 동안 동생 같은 나를 친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고 싶다. 뭐든 속으로 생각해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분수를 지켰던 우리의 만남이 64년 지기로 만든 것이다. 흔한 일은 아닐 진데 그 때는 내 인생에서 소중한 보석임을 몰랐다. 이제 그는 가고 없지만 우리의 우정은 내 가슴 속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기를 기원한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조용필의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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