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끈, 그리고 버팀목

강은소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8-12 09:13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수필을 쓰는 사람은 예술가다.
존 워너커에 따르면 작가는 예술가다. 그는 저자와 작가의 가치를 구분해 누구나 책을
내면 저자가 될 수 있지만, 작가로 불릴 수는 없단다. 저자는 그 사람이 하는 일, 글을
쓰는 행위를 말하고 작가는 자기 자신을 쥐어짜 글을 쓰는 사람, 그 사람을 정의한다.
그의 가치 기준에 따르면 수필을 쓰는 사람은 작가다. 수필가는 예술가다.
수필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오로지 나 자신이 되어 살아가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려 노력한다. 또 한 편의 수필을 위해, 나 자신을 비틀어 몸부림을 치다 뼛속까지
후벼 파 묶여 있던 글의 실마리를 풀어내려 애쓴다. 자칭 예술가라 하기에는 이름 없는
글쟁이라 쑥스럽고 부족한 점이 있지만, 분명 나는 수필을 쓰는 작가다.
수필은 나를 작가로 살게 한다. 다양한 시간의 변주 속에서 과작寡作이라도 멈추어
지지 않은 수필 쓰기는 여전히 작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나에게 수필은
작가로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중심을 놓치지 않고 붙들 수 있도록 잡아주는
버팀목과 그 버팀목에 꽁꽁 묶어주는 끈이 있어 나는 아직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수필의 끈과 버팀목에 의지해 글을 쓰며 작가로 산다.
내 수필의 큰 버팀목은「현대수필」이다. 현재 통권 110호를 발행한 「현대수필」로
통하는, 또 하나 작은 버팀목은 동인지 제21집을 낸 분당수필문학회다. 현대수필과
분당수필은 멀리 떠나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쌓인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나를
잡아주는 튼튼한 기둥이다. 그 버팀목엔 항상 자신의 그늘에 자리를 내어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는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 있다. 언제나 내 수필의 끈이 되어 등을 두드리며
글쓰기를 북돋우고 버팀목에 단단히 매어주는 정겨운 손길이다.

수필의 끈과 버팀목, 그것은 곧 변치 않고 함께하는 사람이다. 분당수필문학회에서
만난 선배와 후배, 동기 문우와 더불어 현대수필 문인회로 맺어진 인연이다. 우리는
수필의 길을 함께 가꾸어 가는 선후배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당겨주고 밀어주는 문학
도반으로서 서로의 끈이 되고 버팀목이 된다. 수필의 끈과 버팀목은 결국 문학의 끈과
버팀목이다. 모두 나의 문학에 튼튼한 버팀목을 세워주고 동아줄 같은 끈을 묶어주는
사람이다. 그중 중심에 떡 버티고 우리를 두루 어우르는 한 사람은 수필의 거목인
윤재천 선생님이다.
운정 윤재천 선생님은 내 수필의 스승이며 아버지다. 울퉁불퉁 흔들리던 문학의 길을
수필의 길로 다듬어 이끌어 주시고, 20년 가까이 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계신다. 첫 수필집을 내고 난 뒤 긴 시간이 지나갔지만, 아직 두 번째 수필집을 상재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선생님의 큰 사랑에 못 미치는
글쓰기는 늘 부끄럽고 죄스럽기 그지없다. 지난해 가을, 수필집이 아닌 시집을 들고
찾아 뵈었을 때도 선생님은 누구보다 더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다.
선생님은 가장 단단한 끈과 버팀목으로 내 문학의 바탕이 되어 주는 사람이다.
다짐한다. 선생님의 미수 기념 문집에 올리는 이 글을 쓰며 선생님과 나 자신에게
약속한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제2 수필집을 세상에 내놓을 것을 꿈꾼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 또한 나의 얼굴이고 내 글쓰기의 역사다. 욕심은 버려야 하리. 조금 더
성장한 작품집을 생각하면서 자꾸 미루어 두었던 발걸음을 이제는 내디뎌야 할 때다.
나는 작가다. 작가로서 글을 쓰며 살겠다면, 작가로 살아남겠다면 써 놓은 글을
정리하고 묶어내는 일도 거쳐 가야 할 숙제다. 작품을 묶어내는 일 이야말로 작가의
글쓰기가 한 단계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멀지 않은 어느 날 새 작품집을 들고 다시
찾아 뵐 그때, 주름 든 얼굴에 여전히 소년 같은 어설픈 미소를 띠고 계실 선생님을
떠올려 본다. 수필을 쓰는 우리 모두에게 수필의 끈이며 버팀목이신 윤재천 선생님.
오래오래 건재하시어 예술가를 꿈꾸는 우리 문학의 바탕을 더 여물게 다져 주시기를
빈다.
영원한 수필의 끈, 수필의 버팀목이신 선생님께 미수 건배를 올린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설 추억 2024.02.26 (월)
먼동도 트기 전 미처 눈곱도 닦아내지 못한 아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나선 읍내 방앗간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떡시루에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풍겨온다. 어머니는 머리에 이고 온 함지를 진작부터 길게 늘어선 줄 끝에 내려놓으신다. 그리고 아이에게 징긋 눈짓 한번 주시곤 잰 걸음으로 난전으로 나가신다. 아이는 당연한 듯 제집에서 가져온 함지 곁에 꼭 붙어 선다. 한동안 차례를 놓치지 않고 함지를...
바들뫼 문철봉
삶을 위한 사유 2024.02.26 (월)
 시간이 흐를수록 삶이란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쉽게 넘어지고, 상처 받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누구나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에 직면한다. 종종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한 실존 적 두려움을 피해보려 하지만, 매스컴을 통해 매일 아침 인류의 고통을 새롭게 마주할 뿐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고통과 재난을 등지고 서서 어떻게 하면 이 존재의 한계와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권은경
햇살 좋은 날에 2024.02.26 (월)
볕이 좋아 지팡이 짚고공원에 갔네전깃줄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새들처럼공원 벤치에 얼기 설기울긋불긋 빨래 줄에 널어 놓은 빨래처럼나이든 사람들이 햇살을 즐기고 있다몸이 힘들고 고달파도마음이 행복하면무릎 통증 어지러움이야이기고도 남을 테지만푸르고 깊은 하늘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햇살이 눈부셔서 만은 아니다.봄은 개나리 나무 잎 새에서 오고겨울은 한낮에도 언 땅 사이 살얼음 사이에숨었다
전재민
신호등 약속 2024.02.21 (수)
나는 그동안 이 신호등 앞에서 몇 번이나 멈췄었을까꾸고 나서 벌써 잊은 꿈을 기억해 내려는 듯이정표 없는 갈림길에 홀로 서 있는 듯그런 표정으로 파란불만 기다리던 지난날이제는 달라지고 싶다차창에 낙하하는 수천 개의 빗방울에 고마워하자빗방울이 고마우면 세상에 고맙지 않은 게 없겠지누구라도 잡아두지만 때가 되면 보내는 신호등어디서 긁혔는지도 모르는 상처는 아프지 않아신호등처럼 보내면 떠나는 걸 알아도 아프지 않아품 안에서...
윤미숙
개똥 통장 2024.02.21 (수)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계좌가 하나 있다. 이 계좌 잔고의 정확한 액수는 사실 계좌주인 나도 잘 모른다. 그 액수를 도통 모르는 점이 실은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글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되실 것이다. 수시로 적립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며, 이 계좌를 개설한 지는 대략 삼년 정도가 되었다. 오늘부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이 비밀 통장은 이름하여 ‘개똥 통장’이라 한다. 누구든지 손쉽게 계좌를 열 수 있다. 그동안 나만 알고(최측근 언니들 몇...
김보배아이
  우리 부부는 아들 하나를 키웠고 손주가 3명 있다. 손주로는 쌍둥이 손녀에게 3년 아래로 손자가 하나 있다. 쌍둥이 손녀는 올해 14살이 되었고 손자는 6월이 되면 11살이 된다. 손녀들은 7학년까지는 학교 공부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게 지내더니 8학년에 올라가니 심각해진 모습이 보인다. 손자 녀석은 여전히 학교 공부하는 눈치가 전혀 안 보인다. 주간 동안 하루는 방과 후에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픽업하면서 손자에게...
김의원
대관령 양 떼 목장에 눈이 내린다영하 13도의 추위 속목장 언덕에 눈이 쌓이고돌풍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며뿌연 안개를 뿌린다뺨을 때리는 눈보라로 얼굴이 얼얼하다뒤로 돌아서서 바람을 막아보지만앞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전날 내린 비로 나뭇가지마다물방울이 얼어서 유리 구슬이 트리처럼 달리고세찬 바람에 꺾어진 가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아래를 보나 위를 보나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하얀 눈의 세계몸이 휘청 거리게 흔들어 대는...
조순배
  늙은 개와 70 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정관일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