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인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편리하게 단시간내에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못한 것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삶 속에 아직도 많이 존재한다. 특히 먹거리의
경우 그 나라 특유의 농산물은 교포들이 밀집한 도시가 아닌 이상 무척이나 구하기가
어렵다. 정 필요하면 제일 가까운 도시로 나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는 있지만 필요할 때마다
바쁜 일상을 제쳐 두고 매번 사올 수는 없을 뿐더러 더구나 싱싱해야 하는 야채는 가히
어렵기 짝이 없다. 가공식품이라면 몰라도 야채는 도무지 어쩔 도리없이 눈 딱 감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싶다. 밴쿠버에서 켈로나로 이사를 오며 한국 식품점이 있을까 검색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당연히 없었다. 파, 콩나물, 배추나 무같은 것들은 일반 마켓에서도
구할 수 있었지만 깻잎은 오리엔탈 마켓에 가도 그 모습조차 구경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십오년전이라 오리엔탈 마켓은 달랑 켈로나에 그나마 하나뿐이었다. 혹시
밴쿠버에서 공수해 올 수 없냐고 물으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고
중국인 아저씨는 부리부리하게 눈을 뜨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보니 가공식품들과 대충
몇 가지의 야채를 빼고 웬만한 식품들은 모두 냉동실에 들어가 꽁꽁 얼려져
있었다. 밴쿠버에서 물건을 공수해오기가 힘들기는 힘든가 보았다. 캐나다에서 깻잎은 주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야채인지라 당연히 없을 법도 했다. 사실 필자는 채식주의자이다. 먹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보니 입에 맞는 재료가 없으면 식욕은 뿔난 망아지처럼 그것을 찾아
더욱 갈구하게 된다. 일종의 보상 심리였다. 평소에 버섯을 고기대신 상추와 깻잎에 올리고
파무침과 생마늘, 고추를 얹어 싸 먹는데 깻잎이 빠지니 영 맛이 나지 않았다. 향이 강한
깻잎이 빠지니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깻잎대신 무엇을 싸서 먹을까 야채 진열대를
서성거렸다. 그 당시 나에게는 깻잎을 대신할 야채를 발굴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과제였다.
첫번째로 케일을 실험해 보았다. 그 다음은 양파를 종류대로 얹어보았다. 달다는 흰 양파,
샐러드에 적합한 보라 양파, 크기가 아주 작은 쉘럿이라 불리는 양파 등 맛이 제각각 달랐다.
그러다 이탈리안 파슬리를 보았고 그 옆에 놓인 연하고 부드러운 고수를 발견하였다. 고수는
실란트로라고 불리운다. 처음 그 냄새를 맡았을 때는 하도 향이 강렬해서 이걸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지방을 함유하고 있는지 미끌거리기까지 한 것이 세상 처음 보는 신기한
야채였다. 향이 너무 특이해서 처음에는 아주 조금만 먹었다. 머릿속으로 나는 지금 깻잎을
먹고 있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이것은 캐나다에서 버터를 먹고 자란 깻잎이다. 그래서
아주 조금 맛이 다를 뿐이야’ 라고 생각하며 먹었다. 그것을 서너 번에 걸쳐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상추에만 싸서 먹을 때보다 맛이 훨씬 좋았다. 점차 고수의 양을 조금씩
늘렸다. 처음에는 이파리 한 개 정도 올려 먹던 것을 십오 년이 지난 지금은 두 세 가닥을
줄기째 통으로 올려 한번에 먹어 치우고 있다. 사람은 적응에 강한 동물이라더니 입맛
까다로운 나와 고수와의 친화력이 새삼 놀라웠다. 보통 고수는 향이 각별하여 비누 맛이
나거나 또는 구토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일부 다른 이들에게는 식욕을 돋구는 호불호가 강한
식품이라 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한다던가. 고수는 깻잎보다도 더 좋은 역할을
내게 충분히 베풀고 있었다. 입맛이 없을 때 고수를 먹으면 나는 오히려 식욕이 돌아오고
좋았다. 비빔밥에 넣고 비벼먹거나 고수만 가지고 새콤하게 초무침을 해먹기도 하고
스무디에 넣고 갈아 먹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전이나 부침개 반죽에도 빠트리지 않았다.
고수의 효능을 보면 참으로 대단하다. 고수는 씹어 먹거나 차에 넣어 마시면 소화를
촉진시키고 위장 및 복부의 가스와 위통을 감소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맵고 짠 음식을 먹을 때 고수와 함께 먹으면 고수에 함유된 칼륨 성분이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주어 각종 혈관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동물실험에서도 쥐에게 고수를 주기적으로 투여한 결과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렇듯 내게 맞는 좋은 효능을 가진 야채를 발견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예로부터 좋은 것은 이웃과 나누어 먹어야 그 효험이 오래간다고
했다. 드넓은 캐나다 타국에서 깻잎을 찾기가 굳이 어렵다면 고수로 대체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영양사로서 맵고 짠 음식을 자주 먹어 위장병이 많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픈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오래된 허브 중의 하나인 고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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