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세상을 바라보는시점(視點)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7-02 16:59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소설이건 동화이건, 심지어 때로는짧은 시의 경우까지도 작가들은 보통 자기를 숨긴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narrator)를 작품 전면에 등장시킨다. 이 점은 참으로 문학의묘미가 아닐까 싶다. 삶을 꼭 자신의 육성으로만 이야기하여야 한다면 때로 얼마나 부담스럽고 때로 얼마나부끄러운 일이 많을까? 그러나 전지전능한 神과도 같이 작가는 한 인물을 가공하여(혹은 창조하여) 그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꼬집고 타이르고 때로는목놓아 울 수도 있으니 이처럼 재미나는 일이 세상에 어디 또 있으랴 싶기까지 하다.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제목에서 나타나듯 사랑방에 하숙을 친 선생님과 그리고 어린 딸을 데리고홀로 살아가는 젊은 미망인이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화자는 6살 난 ‘옥희’라는 계집아이이다. 독자는 두 사람의애틋한 연모의 감정을 깨닫고 함께 안타까워하지만 오로지 관찰자 ‘옥희’만이 그 사실을 모르는 셈이다. 엄마가왜 갑자기 달걀을 한 판 더 주문하는지, 자물쇠로 굳게 잠가 두었던 풍금을 어느 날 문득 열어 연주하는이유도 오직 ‘옥희’만이 모르는 채, 소설은 진행되고 이 점이 이 소설을 한없이 순수하고 그리고 격조 있게만드는 동인(動因)이 되는 셈이다. 만약 어머니의 시점으로, 혹은 사랑방 손님을 작품의 ‘화자’로 삼아 글을 진행했다면 얼마나 저급하고통속한, 그저 주간지에 실릴 법한 가담항설(街談巷說)이 되었을까?

스웨덴의 P 라케르크비스트는 ‘바라바’라는 소설을 남겼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원래 예수가 돌아가신 십자가에서 죽었어야 할 도둑이다. 그런데난데없이 석방된 바라바는 처음에는 그저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 뒤도 안보고 달아나지만, 그러다 과연도대체 자기를 대신해서 자기가 죽어야 할 자리에 묶인 저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고, 군중들사이에 묻혀 예수를 바라보며 그의 생을 추적해 나가는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풀려난 도둑의 시점에서예수를 바라본 이 소설은 1951년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진달래꽃’의 시인 김소월은 그의 많은 시 가운데에서‘여성’을 화자로 등장시키고 있다. 분명 소월은 오산학교와 배재고보를 졸업한, 그리고 비록 자살로 일찍 생을 마치기는 하였으나, 처자를 거느린어엿한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 대부분이 여자의 목소리로 쓰여진 까닭은 무엇일까? 몇 가지 재미있는 추리가 가능할 것도 같다. 우선은 심리적 이유에서이리라.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모진 매를 맞고 정신줄을 놓은 소월의 부친을 아직 어린 소월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로 인해 사춘기에 겪게 되는 ‘동일시 과정’속에서 그의 마음은 아버지에게서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을 것이다. 특별히 그를 살뜰히 보살핀 모친과 숙모에게 기울어진 그의 내면세계 속에는 남과 다른 강한 anima(남성 속에 자리한 여성적 경향)가 자리잡게 된 것은 아닐까? 또는 이를 소월의 고도로 계산된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육사나윤동주, 이상화처럼 소월은 본격적인 체제 저항 시인은 아니었다. 그러나나라 없는 세월을 살며 왜 가슴속에 피맺힌 울분이 없었겠는가?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쇼가 지배하는 강력한남성 우월주의 앞에서 오히려 그는 섬세한 여성의 목소리로, 휠지 언정 부러지지 않는 세상과의 대결 방식을선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세상은 언제나 내가 보는 대로 보일 것이다.또한 세상은 내가 말하는 대로  다가오는 것이 맞는 듯하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셨던예수의 시점(視點)으로 세상을 보기 원한다고들 쉽게 말은하면서도 그러나 여전히 말석을 권하면 불편해하며, 또한 틈만 주면 어김없이 고개를 쳐드는 두더지 게임과도같이, 자꾸 높은 곳에 눈을 두려고 하지는 않는지 나 자신을 돌아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