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훈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밴쿠버의 봄은 도시 전체가 마치 정원과 같다. 27년전, 나는 우리 4식구를 데리고 벗꽃이 활짝 핀 밴쿠버 공항에 도착하였다. 10살의 아들과 7살의 딸을 두 손에잡고 밴쿠버 땅을 밟은 것이 엊그제 같기만 한데 세월이이렇게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우리 두 아이들은카나다 교육을 무사히 잘 받고 이제는 독수리가 날개를펴고 훨훨 나르듯이 모두 둥지를 떠났다. 아들은 한국으로, 그리고 딸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지내고 있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글과 말을 열심히 가르쳤다. 한국에서 이미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우리 글을 잘알고 있었어도 계속해서 초등학교 6학년 까지의 국어를가르쳤고 성경을 읽고 쓰게하였다. 그리고 집에서는 절대 영어 한마디를 쓴 적이 없이 우리의 말로 이야기 하였기에 지금까지 두 애들과 의사소통에 불편함 없다.
나는 운전을 할 때마다 아이들과 지냈던 지난 날의 일들을 떠올리며 회상에 젖기도 한다. 특히 우리 딸은 논리가 늘 정확해서 우리 부부가 할 말을 잃을 때가 많았다. 내가 사회 생활이 좀 어리숙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을 때 아내는 나에게 화를 무척 냈다. 그 때 우리 딸이 한 말은 “ 엄마, 아빠가 사기 당한 것, 아빠 잘못은 아니야. 목사가 사람 말 믿은 것 당연한데, 속인 사람이 나쁜 것이고, 아빠는 그냥 재수가 없어 그렇게 된거야”.
이 말은 들은 아내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더이상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여보, 당신은 그냥재수가 없는가 보네..” 하며 “우리 딸이 당신에게 면죄부를 주었구려..”하며 잘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전 내 트럭이 미국 수마스 국경을 건너기 전라지에터가 고장이 나서 급하게 칠리왁에 있는 볼보 딜러로 가서 수리를 하게 되었다. 라지에터 교환에 하루 종일 걸려 나는 트럭을 그 곳에 맡기고 집으로 오려하니 아내가 운전이 서툴러 내가 랭리까지 가겠다고 하였다. 마침 근처에 시외버스정류소가 있어 조금 기다린 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나는 버스에 올라 요금을 카드로 결제하려고 했는 데 운전기사는 현금 5불을 내라 하였다. 나는 마침 카나다 돈은 없고 미화만 있어 미화를 보여주니기사는 “ 그냥 타라”고 하여 공짜 버스를 타고 랭리까지와서 팀호튼 커피샾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카나다에 살면서 처음 시외뻐스 무료 승차 혜택을 받아 나는 “아내에게 자랑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막 도착한 아내에게웃는 표정으로 반갑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내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그래, 트럭 고치는데 얼마나 든데?”하며속상해하였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잊고 “아마..., 3천불은 더 들걸…” 하니 아내는 “여보, 그 트럭 갖다 버려..”하여 나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나는 차를 타고집으로 오는 동안 죄인이 된 심정으로 아무말 조차 할 수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동안 밀린 집 안 밖을 정리하고잔디깍기 기계로 잔디를 깍기 시작하였다. 5월의 날씨답지 않게 뜨거운 태양 아래서 쉬지않고 잔디를 다 깍는동안 온 몸은 땀에 젖었다. 나는 집안에 들어와 샤워를하려고 하는 데, 아내가 내 모습을 보고 “우리 여보, 수고 많이 했네…” 하며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며손을 내 엉덩이에 가볍게 대었다. 그리고 아내는 “여보, 내가 생각해보니 수정이가 해준 말이 떠올랐어, 트럭이고장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단지 당신에게 재수가없었던 것이 아니겠어?”하며 우리 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그제서야 안심하고 칠리왁에서 시외뻐스 공짜로 타고 랭리까지 온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아내도 “여보, 카나다에서 오래 살다 보니그런 일도 다있었네”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에게 이렇게 위기가 올 때마다 이렇게 생각나게 한우리 딸의 그 한마디는 어쩌면 판사가 준 면죄부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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