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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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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4-15 13:11

이종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유달리도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나는 꽃이 만발하는 봄이 오면 자주 어머니를 생각하며 깊은 희열과 회상에 잠긴다. 또한 오래 전군 장병을 위한  인기 TV프로였던 우정의 무대에서 젊은 장병들이 소리 높여 외쳤던 어머니가 떠오르며 어머니의 모습이 내 가슴속에서 그리움을 진하게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점점 더 보고 싶어지는 어머니를 글로써 이렇게나마 외쳐보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날에 시장을 둘러보며 사서 선물로 드린 브로치를 받으시고 좋아하셨던 어머니, 그 다음해에는 고무신…. 어머니는 내가 드린 어떤 선물도 반가워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서울의 원효로에 가게를 구입해 임대를 놓으시고 월세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나를 항상 데리고 가셨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영동 근처 한정식 음식점에서 꼭 불고기를 사주시던 어머니. 지금도 서울에 가서 한식 음식점을 찾아 불고기를 시키면 어머니 생각이 오롯이 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물론이고, 대학시절 내내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 누구의 이야기였던가! 멀리 떠나는 아들에게 싸준 도시락을 기차에서 열었는데 도시락 뚜껑에 매달린 수증기 방울이 어머니 눈물 같아서 울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처럼 나 역시 그 마음을 지금은 십분 이해할 듯싶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도 새 와이셔츠와 바지를 주름잡아 다려 주시던 어머니. 그 뒤 내가 여고 교사로 재직하던 어느 해 가을 운동회가 열리던 날 어머니를 학교로 모시고와서 학생들의 고전무용을 보여드리고 중국음식점에 식사를 하러 갔던 일. 결혼한 뒤에도 우리 부부가 맞벌이로 여유가 없어 손녀 딸 둘을 키워 주시던 어머니. 그렇게 나는 수없이 어머니께 은혜와 사랑을 받았다. 
 최근에 나는 손자를 돌보면서 예전에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그런 어머니를 모시고 캐나다에 왔는데 점점 나이가 더해가면서 그만 치매에 드셨다. 물론 내가 캐나다로 이주한 뒤 서울에서 조금씩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면서 치매가 오신 중에도 아들에게 밥을 해 주시겠다고 전기밥통에 바나나 껍질과 이것저것 넣어 그 밥통을 끓이신다고 전기 곤로에 올려놓으시기도 했다. 나는 일 때문에 치매 걸린 어머니를 집안에 혼자 모셔놓고 집을 나서야했는데, 우리 집 방향으로 앰뷸런스나 소방차가 경적을 울리고 달려가면 혹시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평생 공부한다고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해 드렸던 내가 캐나다에 와서 조금 보답한다고 밴쿠버 아일랜드의 뷰차드공원을 가서 휠체어를 빌려 구경시켜 드리고, 또 한식음식점에 모시고 가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식사도 함께 했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베푸신 사랑의 천만분의 일도 되지 못했는지 날로 치매가 심해지셨다. 이민 와서 좀 힘든 일도 있었지만 제일 힘든 시기가 어머니 치매 수발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서울 후암동 집에 사실 때에도 대문을 열면 마당에 분꽃, 사르비아, 채송화, 해바라기, 백합꽃 등이 심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에서 특히 백합을 좋아하셨다. 어느 날엔가 집을 나서서 배회하시다가 동네 이웃집에 닫혀있는 데크(Deck)의 문을 열고 들어가셔서 꽃들을 보시다가 집주인의 신고로 경찰이 모시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 뒤부터는 이름과 연락처가 새긴 팔찌를 손목에 차게 하셨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세든 집의 어머니 방에 벽장 거울 문에 분칠을 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집을 서둘러 나오려고 결정을 내리고 새 집을 구매하였다. 새로 이사할 집이 일찍 비워져 있어 월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이사 하면서 어머니를 차량(미니 밴)의 좌석을 눕혀서 새집을 향해 운전하고 있었다. 그 날이 치매로 한 4-5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시기 전날이었다. 어머니는 차안에서 느닷없이 “종구야 수고했다” 라는 말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아마 어머니께서 제정신이 잠시 돌아오신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처음 구입한 집에서 첫날을 주무시고 다음날 새벽에 운명하셨다. 그 며칠 전 자상한 영국 의사가 집에 왕진을 와서 얼마 못사실 것이라는 말을 하고 갔지만, 나는 주무시던 방이 약간 차가워서 돌아가셨나 하는 아쉬움과 회한을 가졌다.
 그러나 착하게 사신 어머님을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밴쿠버아일랜드의 빅토리아에서 장례예배를 드리고 나서 어머니 시신을 모시고 한국으로 갔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어머님 관을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좋은 상등품의 관을 구입하였다. 그런데 한국정부 규정에는 시신을 봉해야만 한다고 해서 내부 장식은 다 뜯어내고, 양철로 봉해서 나무 관만 싣고 떠났다. 서울행 비행기의 도착이 오후 늦게여서 그날 매장을 하지 못하고 S병원 영안실에서 밤을 보내셨다. 그 동안 친척들과 지인들의 조문을 받고, 다음날 10년 전 먼저 타계하신 아버님 산소가 있는 천안공원묘지로 갔다. 입관예절은 경건하게 진행되었다. 아마 오늘도 하늘나라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많은 꽃들이 있는 곳에서 지내실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먼 훗날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만날 것을 고대하고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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