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언제부터인지 원하지도 기다리지도 안았지만 슬그머니 옆에 와서 내 인생에 한발 디밀고 길동무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도 때가되면 소리 없이 소멸하고 스치듯 왔다가 사라져가는 자연과 우주의 삼라만상과 더불어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 그중에서 우연처럼 만나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만남도 있지만 기억하기조차 힘든 그런 인연들도 많은 것 같다. 시작은 좋은 인연처럼 보이지만 끝에는 서로 상처만 주고 마는 그런 만남도 무수히 많다.
우리가 맺은 인연 중에는 하늘이 맺어준다는 부모와 자식 사이, 또 형제, 자매로 만나는 그런 사인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 생각된다. 그 필연도 가끔은 깨어지고 서로 상처내고 아픔으로 끝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사람은 그 인연 줄만은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 부부의 연은 정말 끈끈한 동아줄로 연결된 것 같다.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 했던가? 80, 90이 된 부부들도 이혼 하는 요즈음 시대를 돌이켜보면 부부가 만나서 끝까지 같이 산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만은 틀림없다. 권력을 가진 이들보다 돈이 많은 사람보다 더 성공한 경우는 한 가정을 끝까지 지키며 자식들 다 잘 키우고 백년해로 한 사람들이다. 백발이 성성하고 주름진 두 손을 마주잡고 저녁 노을 지는 해변을 걸어가는 노부부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운 인연을 본다.
세상을 살면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과 땅 삼라만상과의 인연도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내가 한국이란 땅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에서 모든 것 누리고 살다가 먼 이국땅 밴쿠버에 온 것도 이 땅과의 인연이 나를 불러온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소유한 모든 물건들도 나와의 인연이 끝나는 날 내 곁을 떠나고 눈에 익은 아름다운 자연도 언젠간 내가 떠남으로 또 다른 풍경을 내 앞에 펼쳐준다. 모든 생명체들도 나와의 연이 끝나면 내 곁을 떠난다. 하물며 내가 사는 집도 인연이 닿아야 그 집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소유한 소소한 모든 것들도 나와 인연이 끊어지면 어디 론지 사라진다.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에 익숙해지려고 발버둥 친다고 어찌 다가오는 이별을 거역할 수가 있겠는가?
살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우연히 몇 번 스쳐 지나다 인연이 된 아름다운 만남도 있다. 생각이 날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그리움은 마음속으론 보고 싶지만 만나지는 못 하는 애틋한 인연이다. 십 수 년이 지나서 우연히 다시 만난 인연은 아마 세상 끝날 때 까지도 간직하고픈 아름다운 기억일 될 것이다.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못 볼 지도 모르지만 간직하고픈 그런 인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마도 다시 못 만나서 더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즐거운 그런 만남이 있지만, 기억 속에 지워 버리고 싶은 그런 만남도 우린 지니고 살아간다. 우연히 평생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언젠간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날 거기서 볼 줄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순간 내 가슴은 죄인인 양 콩닥거리고 얼굴은 달아오르고 그 자릴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잘 못은 그쪽이었고 나쁜 짓을 한 것도 그 사람인데 내가 왜 이럴까 생각도 해 봤지만 내가 그렇게 야무진 사람이었다면 당하지도 않았겠지 하는 생각에 어서 벗어나 만나지 않는 게 났겠다 싶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 나에게도 있다는 게 새삼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잘못을 따지기 전에 그런 일에 휘말려 들었단 사실이 내가 인생을 잘 못 살았다는 생각에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애쓰고 노력해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줄을 놓지 못하고 애태우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몇 날밤 잠을 설쳤다.
좋고 아름다운 인연은 내가 힘들지도 않고 내가 그 줄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아도 모든 게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술술 풀리면서 좋은 결말을 가져다준다. 내가 살아온 길 또 앞으로 내가 살아내야 하는 많은 날에 우연히 만나는 그런 만남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요즈음 내 주위를 돌아보면 참 고맙고 좋은 인연들이 많다. 생각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귀한 사람들이다. 내 행동이나 마음이 좋은 향기를 풍긴다면 주위엔 좋은 인연들이 모이겠지만 내가 부정적인 생각과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면 좋지 않은 악연을 맺을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그 스친 인연을 내가 좋은 인연으로 잘 다듬어야 한다. 나에게 손 내민 그 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 하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잘 마무리 해야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은 많은 인연 중에 우리 기억에 남는 그런 이름다운 만남을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기 전에 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인연 들을 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한 치 앞도 안 보일 만큼 힘들고 아플 때 내 곁을 지켜주는 그 사람이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인생길에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련한 인연들은 불어오는 봄바람 꽃잎에 실어 보내고 내 옆에 남아있는 그 인연 보듬어 시작이 아닌 끝이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 그 인연이 끝나는 날 내 영혼은 영원한 여행길에 올라 더 이상 슬프지도 않고 마음 졸이지도 않는 천상의 인연을 만날 것이다.
“인연은 억지로도 안 되고 애가 타도 앞으로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 지금 너한테로 누가 먼 길을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는다.” 는 고 최명희 작가의 혼불에 나오는 그 구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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