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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날마다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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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3-15 17:00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나의 앞집에는 노인 여자분이 한 분 사신다. 그분은 그 집의 주인이 아니다. 하지만 몇 년째 그 집에 산다. 그녀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그 딸 역시 그녀와 함께 산다. 두 모녀는 앞집의 세입자가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남의 집을 같이 사용하며 산다. 가정 공유(Home Sharing)라는 제도를 통해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남의 집에 사는 것이다.
 그녀의 딸은 남의 도움이 없이는 거동할 수 없는 분이다. 그녀의 딸은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는다.그래서, 그 젊은 여자분을 보는 일은 아주 드물다. 그녀는 병원이나 밖에 나가려면 집주인이나 타인의 도움을 받아 간다. 반면 노인 여자분은 회사에 출근하는 이들보다도 더 자주 외출을 한다. 딸처럼 본인도 휠체어를 타는 노인 여자분은 차가 없다. 하지만 그녀는 거의 날마다 어디론가 간다. 아침 10시 경이면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버스인 HandyDart가 와서 그녀를 태우고 어디론가 가버린다. 그리고, 오후 3~4시에는 마치 직장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사람처럼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만약 HandyDart 버스가 못 오면 이를 대신하는 택시가 온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이 택시도 못 올 경우 그녀는 혼자 휠체어를 밀고 어디론가 간다.
 나는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했다. 그녀는 자존심이 아주 센 듯하다. 수년 전 더운 여름날 힘겹게 휠체어를 굴리며 가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하도 힘들어하길래 “좀 밀어 드릴까요?” 제안했지만 단번에 거절했다. 그 후론 가끔 마주쳐도 일부러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를 집 근처 쇼핑몰에서 보게 되었다. 몇 차례 더 같은 쇼핑몰에서 그녀가 여유롭게 쇼핑몰을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녀가 아침이면 출근하듯이 가는 곳은 바로 그 쇼핑몰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쇼핑을 즐기는 것은 아닌 듯싶다. 여느 때나 오후 3~4시면 학교를 파하고 귀가하는 학생처럼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먼저 집 앞에 버스 기사가 차를 세운다. 그다음 그녀의 휠체어를 내려 집 안으로 밀어준다. 나는 창문에 서서 이 광경을 종종 쳐다본다. 그녀가 사 오는 것이라곤 그저 달러 가게 봉투가 어쩌다 눈에 뜨일 뿐이다. 그녀는 도대체 왜 매일 쇼핑몰로 출근하는 것일까? 요즈음 흔한 쇼핑 중독자도 아니고. 단순히 무료함을 달래려고 거기에 가는 것도 아닌 듯싶다. 매일 같은 몰에 가서 같은 행위를 하다 오는 것을 고려하면. 앞집 주인 남자는 그 노인분의 딸은 기본 생활이 어려워 낮에는 정부 지원을 받아 자기네가 돌본다고 하였다. 그러니, 저녁에는 그 노인분이 자기 딸을 직접 돌보아야 한다. 그런 딸을 혼자 놔두고 왜 그렇게 쇼핑몰에 등교라도 하듯이 가는 걸까? 
 그녀의 딸은 거동만이 아니라 의사소통도 불편하다고 한다. 그러니, 앞집 노인 여자분은 밤새 말도 잘 못 하는 딸을 돌보고 나서 한숨 돌리려 쇼핑몰로 가는 것이리라. 거기서 한 잔의 음료도 마시고 간단한 식사도 하고 한나절을 그렇게 보내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 쇼핑몰은 그녀에게 견디기 힘든 삶의 신선한 공기, 새로 출발할 활력소이다. 앞집 노인분이 차를 불러 타고 날마다 쇼핑몰에 시계처럼 오고 간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참 자원 낭비라는 인상을 받았다. 또, 전동 휠체어를 사면 될 것을 정부 예산 낭비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버린 쇼핑몰 방문과 버스 기사와의 대화가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일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 사람, 아니 그 노인분과 딸 두 사람의 삶이 조금이라도 생기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그들도 누릴 권리가 있지 않은가.

 병간호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직업이 아니고 자기 가족을 병간호한다면 정해진 쉬는 시간도 없다. 24 시간 365일이 일, 또 일이다. 거기다 응급 상황이라도 발생하는 환자라면 정말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그런 가슴 조이는 힘든 시간만이 계속된다면 환자보다 먼저 간병인이 쓰러질지도 모른다. 앞집 노인분은 당신 몸도 불편한데 더 몸이 아픈 딸을 돌보아야 하는 형편이다. 그러한 이들을 위해 주정부가 간병인이 쉴 수 있게 재정 지원을 해 주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가족 간병인도 쉬고 재충전할 기회는 필요하니까. 가족 수가 급속히 줄어든 현대의 우리는 갈수록 흔히 혼자 아니면 둘만이 산다. 그래서, 아프면 돌봐 줄 이도 없이 외롭고 혼자 괴로워하거나 아니면 남은 한 식구에게만 짐을 지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드니 이제는 나도 앞집 노인분의 의미 없는 듯 보이던 외출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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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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