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광고문의
연락처: 604-877-1178

골반이 틀어진 여인(하)

박병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3-06 09:09

박병호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배가 두 번 연거푸 급충돌하는 순간 여인의 상·하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며 사춘기 무렵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혔다. 여인은 욕지도 주민 숙원이었던 공중목욕탕 사업을 해결한 통영 시장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자기 의지 없이 죽음의 바다에 내던져진 사람들에게 마음이 쏠려 오래가지 않았다. 서서히 생명들이 죽어가는 바다에는 사람들의 아우성이 사라지고 폐허와 같은 정적만이 떠돌았다. 무관심이라는 죽음의 정적도 이보다 허탈하지는 않았다.
기대했던 구조선이 오지 않은 바다 위 하늘은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존재들만이 꿈틀거렸다.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물이 차오르면 순식간에 침몰하는 상황임에도 인간을 증오하는 괴물이 구원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햇빛에 노출되면 죽는 괴물이 빠른 속도로 태양을 집어삼키며 거짓을 고했다. “주변 어선들에 의해 모두 구조되었다!”라는 소식이 정보 통신국에 전해지고 있었다. 희소식의 옷을 입은 거짓은 빠르게 전해졌다. ‘인간은 듣고 싶은 소식을 접하면 거짓을 밝히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여인은 구조선이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때야 여인도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그러지는 태양이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며 바다는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 해 불꽃을 밝혀 놓았지만 죽어가는 생명을 밝히지는 못했다. 그래도 여인은 짙은 어둠이 만든 검푸른 풍랑이 흰 확성기를 단 어업 지도선이라도 보내올 것 같은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억지로라도 붙들지 않으면 끝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신이여 검은 풍랑을 일으켜 주옵소서.” 여인이 기도를 시작했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저편 바다에서 하얀 바람이 불었다.
혼신을 다해 아들을 지키느라 기진맥진해진 아빠는 벽에 기댄 채 아들을 안고 잠들어 있었다. 검게 변한 바다에 흰 물거품을 일으키며 한 고깃배가 파랑새 호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지나쳐 갔다.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거친 풍랑에 굴하지 않고 살아온 여인도 자연 풍랑앞 에서는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보통의 한 인간이었다. 검은 구름 뒤로 떠오르는 한줄기 흰 달빛에 마음을 두는 보통의 한 여인이었다.
기도 소리에 깨어난 남편이 여인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먹구름이 파도를 몰아 배를 덮칠 것이니 아들을 기둥에 묶어 둡시다.” 잠시 생각하던 여인이, “그럴 수 없어요. 모든 먹구름이 큰 파도를 동반하지도 않고요, 아마 거대한 파도가 구조선을 보내줄지도 몰라요.”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파도가 덮치지 않는다고 해도 좀 묶어 둔다고 그리 해가 될 것은 없지 않소?” “최소한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지배당하지 않아야 할 아들이 서글픈 상황에 처한 모습은 상상하기 싫어요. 잠시도 자유를 억압받는 게 싫다고요. 차라리 기도해요. 태풍을 이길 구조선을 보내 달라고.”
남편은 여인을 이길 수 없었다. 그녀는 바다 경험이 풍부해서 험난한 파도의 공격에 겁낼 사람도 아니었다. 풍랑을 겁내서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여인이었다. “여보, 나도 정의롭고 진실한 독립국 왕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남편이 말했다. “그러는 양반이 그까짓 먹구름을 보고 아들에게 겁을 심어줬어요?” 여인이 큰소리쳤다. 아빠는 “아가, 듣거라! 사내대장부는 돌풍이든 강풍이든 올 테면 오라고 두 팔 들어 소리쳐야 한다. 미래는 과감한 자의 것이다. 용감해야 의지를 잃지 않는다. 배에 물이 들어오면 구조대원도 함께 들어오게 되어 있단다. 떨지 말아라!” 라며 어린 아들에게 열을 내는 여인이 무섭지는 않았다.
일상 속에서는 작은 행복도 잘도 찾아내며 부드러운 여성으로 변하는 여인이 자신의 아내라는 것이 싫지 않았다. 여인의 태연함이 모두를 태평하게 했다. 파도가 넘실거리며 배 갑판을 내리쳤다. 물이 차오르며 아래 선실 두 생존자도 갑판 위로 올라왔다. 피를 흘리는 남자는 속 옷을 찢어 머리를 감쌌고 팔이 부러진 여자는 스타킹을 벗어 팔을 감쌌다. 그때야 여인도 자신의 살구색 스타킹을 벗어 남편의 턱을 머리에 단단히 고정했다.
선장 없는 파랑새 호는 파도따라 끝없이 표류했다. 여인은 어두워지는 바다에서 흰 옷을 벗어 흔들었다. 희망을 안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호루라기를 절박함이 아닌 노랫가락처럼 늘어지게 불었다.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어업 지도선이라도 올 때가 되었으나 배가 표류할 때까지 오지 않았다. 암초에 선미가 파손되고 물이 갑판에 서 있던 사람들의 발목까지 차오를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광풍에 휘말려 배는 통제력을 잃고 떠밀렸다. 세찬 바람 앞에 대문짝만한 벽체도 소용이 없었다. 남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침착을 유도했지만, 소용없었다.
같은 남성으로서 남편은 마지막 배를 타자고 우긴 여인을 원망할 뻔했다. 그러나 “이봐요 형씨, 조금만 참아요, 곧 구조대가 올 거요.”라며 시선을 남자한테 돌렸다. 바람 따라 떠밀려가던 배가 이름 없는 돌섬에 닿았다. 작은 섬이 바람막이가 되었다. 가랑잎처럼 흔들리던 배가 암초 사이에 걸려 꼼짝하지 않았다. 아들의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여인의 가슴은 침몰해갔다. 다급한 나머지 배 뒤편에 달린 두 타이어를 떼어내면 배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을 지지대 삼으면 다섯 명이 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여인은 남편에게 아들을 안겨주고 남자와 함께 필사적으로 타이어를 묶은 밧줄을 풀었다.
두 타이어가 묶였고 사람들의 몸통도 타이어에 묶였다.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타이어가 빠진 배는 급격히 가라앉고 다섯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타이어를 안고 돌부리에 몸을 던졌다. 돌풍의 위협에 바다에 빠질 뻔한 순간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모두가 섬에 오르자 배는 최후의 요동을 치며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3월 밤의 돌 섬은 한 겨울만큼 추웠다. 여인은 마지막 배를 탄 후회 대신 아들의 미래를 위해 이렇게 멋진 경험이 어디 있냐며 변신을 위안으로 삼는 허세를 떨쳤다.
“이 돌섬을 탈출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룻밤만 견디면 날이 밝아오고 태양이 찾아오지요.”라고 소리치며 대장질했다. 어둠의 갯바위에 앉아 크지도 작지도 뚱뚱하지도 호리호리하지도 않지만, 골반이 틀어졌던 여인을 생각하며 남편이 동화 읽듯 아들의 귀에 속삭였다. “세상은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하지만 네 엄마에게는 아니야. 여자라도 봇짐을 이고 아이를 업고 남편을 데리고 오는 장사꾼을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하지만 섬 처녀와 엄마들은 네 엄마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한기가 엄습했지만 남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돌섬 무인도에는 바람에 맞서는 푹 꺼진 곳이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 펭귄처럼 아이를 가운데 두고 네 명의 어른이 감싸 안았다. 승객이 꽉 차 있던 배 안에서처럼 다섯이 또 한 몸이 되었다. 아들을 향한 남편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른 봄에 직접 만든 혼숫감들을 가져와 결혼을 준비하는 섬 처녀 들에게 외상을 주고는 가을에 물건 값을 받아가는 사업 수완을 처음 선보인 사람이 네 엄마란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면 못하지, 시집가고 싶은 처녀들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지.”  
몇몇 단어가 어렵긴 해도 아들이 재미있어했지만 여인이 가로막으며 말했다.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 피웁시다.” 여인과 여자와 남자는 불쏘시개로 쓸 나뭇가지와 통나무와 주먹만한 부싯돌을 모았다. 습기 없는 마른 돌을 여인이 돌섬 꼭대기까지 더듬어 기어 올라가 찾아왔다. 세 사람의 불 찾기가 계속되었고 남편은 빠진 턱이 건들거리지 않게 입을 작게 벌리며 결혼 적령기에 이르려면 앞으로도 수많은 밤을 세워야할 아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야만 용감한 것은 아니란다. 네 엄마는 시집올 때 몸종이 두 명이나 따라왔지. 밥도 해보지 않고 누구한테 배워본 적도 없지만, 뜨개질도, 양장도, 이불과 베개, 결혼 예복과 모기장도 주저없이 직접 만들지.”
쉴 틈도 없이 남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심지어 죽어가는 꽃도 네 엄마만 보면 살아난단다. 아들아, 넌 최고의 엄마를 두었고 난 최고의 아내를 두었다. 우리는 매우 행복한 남자들이었다는 사실을 난 할아버지가 되고 넌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말자.” 불을 시급히 붙여야 할 상황에 부닥친 후에야 이야기를 그친 아빠가 여인에게 말했다. “바람이 잠잠해졌으니 이제 자네가 아들을 안고 내가 불을 붙이겠소.” “턱 괜찮아요?” 여인이 답했다. “골반보다는 턱이 더 견디기 쉽지 않겠소?” “아니요, 내 골반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참 잘 되었소, 그렇지 않아도 정형외과 의사가 되지 못한 나를 후회한 적이 있었소.” 기쁨에 들뜬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나무가 습해서인지 불이 쉬 붙지 않았다. “잔풀과 잔가지가 타서 없어지기 전에 불이 붙어야 하는데, 세상에 쉬운 일은 없어요.”라고 말하는 여인에게 아들이 또 이야기해달라고 보챘다. “세상에 인간이 못 할 일은 없지. 겁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나쁜 일들은 다 겁 때문에 일어난다. 이 세상에 겁쟁이가 없다면 죄 없는 사람을 옥에 가두는 일은 없을 거야.” 여인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아들이 재촉했다. “엄마, 지난번 할아버지 이야기 언제 해줄 거예요?” “응, 고조할아버지가 독립정신 고취 죄로 무기수로 갇혀 있을 때도 미국과 캐나다 선교사님들이 석방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자신의 목숨은 자기 힘으로 구해야 한다며 거절하셨지.”
“독립정신 고~?”아들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야호! 함성과 함께 드디어 통나무에 불이 붙었다.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이제야 여인의 이야기는 끝났고 아들의 관심도 어둠을 밝히는 불로 옮겨붙었다. 불이 불을 낳아 제법 큰불이 되었다. 그리고 한 참 후 구조선이 왔다. 사람들은 함성을 질렀다. 하지만 여인은 기쁨 대신 역정을 냈다. “조용히 좀 해요, 자기 의지로 살아 남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바다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는데도 그렇게 기뻐요?”
여인에게는 이번 3월 첫 장날 밤바다 여행을 통해 자신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이 틀어진 골반이 바로잡힌 것이 아니었다. 골반을 감추기 위해 더는 굵은 옷감으로 통치마 바지를 만들 필요가 없게 된 것도 아니었다. “아들이 극과 극을 넘나든 체험을 부모와 함께한 것보다 더 큰 선물은 없겠지요, 여보?” 구조선에 오르며 여인이 말했다. “겁 없이 스스로 껍데기를 깨고 나온 왕의 후손임을 잊지 말아라. 자기 힘으로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몫까지 남한테 기대지 않고 30 배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양쪽 어깨가 수평선처럼 반듯해진 여인이 구조선 갑판에 당당히 서서 아들에게 말했다. “밤바다를 막차로 떠나는 배가 있으면 밝은 해와 함께 떠나는 아침 첫배가 있다. 잠시 삶이 비틀어졌다고 실망하지 마라. 그런데 아빠의 턱이 의사의 도움없이 달라붙을 수 있을까?” 여인이 아수라장 배에서 튕겨 나가지 않은 것이 아들 때문이었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 순간 밤바다 하늘은 먹구름이 가시고 별빛, 달빛, 그리고 바다에서 오른 희고 노란 불빛의 융합으로 신비로운 색상을 자아내고 있었다. (joel.park@investorsgroup.com)



한인 사회의 중요한 소식을 캐나다 서부 독자에게 전달합니다.
제보 이메일: news@vanchosun.com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 투고안내
밴쿠버 조선일보에 투고는 편집부 이메일(news@vanchosun.com)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투고 시에는 본인 사진과 간단한 소개, 연락처를 첨부해 주십시오.
나팔꽃이 순식간에 흰 꽃망울을 터뜨린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밤 제법 큰 줄기의 빗물에도 먼지 땟국이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창가에 누워 잠꾸러기 필립이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나팔꽃의 어서 일어나라는 속삭임이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초여름 햇살 아래서 잠이 깬 필립이 눈을 비비며 자연 선생님인 아빠를 찾았습니다. “아빠 선생님! 오늘 유칼립투스 위 코알라 보러 가자고 했지요?”  비온뒤 죽순처럼 키가 쑥쑥...
박병호
멀리 가는 물 2019.07.15 (월)
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가 강에서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망초꽃이 핀 강둑에 앉아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다 심심하면 도시락을쌌던 종이로 작은 배를 접어 강물에 띄웠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종이배는 신이 난 듯제 몸을 흔들며 강 아래쪽으로 흘러갔다. 강은 스스로 멀리 가는 물이면서 멀리 데려다 주는물이었다.  문학 또한 멀리 가는 물이다. 여러 장르의 작품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며...
정성화
꽃들은 아름답다 2019.07.15 (월)
꽃들은 아름답다세상의 모든 꽃들은 아름답다큰 놈, 작은 놈, 쬐그만 놈, 아아주 쬐그만 놈노랑 빨강 하양 보라 분홍생긴 모양이나 빛깔 모두 달라도저마다의 향기를 지닌 꽃그들은빛나는 지상의 보석호박꽃이면 어떻고 장미꽃이면 어떠리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아카시아 냉이 꽃 꽃 마리 별 꽃씀바귀 꽃 ...세상의 모든 꽃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예전엔 미처 몰랐다.  참으로 몰랐었다오늘도 교실 문을 열면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진지한 얼굴,...
임완숙
감사와 행복은 늘 함께하는 연결고리이다. 하늘은 이 땅에 아름다운 계절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거기에 걸맞은 옷을 갈아입히신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행복에 겨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듣는다. 이것들은 모두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이다.올해 봄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봄은 계절 중에 가장 역동적인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땅속에서...
권순욱
터널 2019.07.09 (화)
멈출 수 없는 곳이기에 그저 달려왔을 뿐이다눈뜬장님매연으로 충전된 발정 난 박쥐들삶은 그렇게 눈물 없이도 흘러갔었다한 때는목련 떨어지는 소리가 지축을 울렸고발아래 짓밟힌 꽃잎들이 아프다 진물 흘렸다또 한 때는  밤으로 달려온 열차이마엔 화인처럼 허연 서릿발눈물처럼 흘러내려라다시는 썩지 않을 소금기 머금은눈물로 흘러내려라시내를 이루고호수를 만들고그 위에 띄워 본 뭉게구름나도 꿈처럼 푸른 땀 닦으며 당신의칠월을...
백철현
외롭게 한 죄罪 2019.07.09 (화)
오늘로 어머니 가신지 일주일이다. 땅거미 내리는 시각, 식탁에 수저를 세벌 놓고 “진지드세요…”하다가 멍하니 선다. 어머니의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96년동안 깨끗하고 따뜻하게 사셨다. 임종 하루 전날까지 혼자서 화장실을 가셨다. 장롱이며서랍장이며 정갈하게 정리해 놓고 새 양말 두 칼레만 있어도 한 칼레를 나에게 주셨다. 이런 며느리는새벽이면 제일 먼저 어머니의 문안을 받았다. 연세가 높아지면서 아기 상태로 되돌아가는지...
반숙자
사랑한 뒤 자욱 2019.07.09 (화)
바람이여 흩고 가거라 꽃잎이여 흩 뿌려라 활짝 피었던 복사꽃이 빗줄기가 되어도 슬프더냐 피는 꽃 피는 대로 지는 꽃 지는 대로 억울하더라 고 새가 울더냐!바람에 쏠려서 머물지도 않을 꽃잎잡을 수 없음에 가슴 아려 애통해 할거냐봄 까치는 우는데 꽃잎이 피우기까지의 절절한 사연 알려 하지 마라.나풀나풀 이유도 모르고 떨어지는 꽃잎엔바람이 새겨 놓은 약속도 없더라 한번 피운 꽃 다음 같은 꽃잎이 아니 듯 바람이...
書瑛강애나
소설이건 동화이건, 심지어 때로는짧은 시의 경우까지도 작가들은 보통 자기를 숨긴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narrator)를 작품 전면에 등장시킨다. 이 점은 참으로 문학의묘미가 아닐까 싶다. 삶을 꼭 자신의 육성으로만 이야기하여야 한다면 때로 얼마나 부담스럽고 때로 얼마나부끄러운 일이 많을까? 그러나 전지전능한 神과도 같이 작가는 한 인물을 가공하여(혹은 창조하여) 그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꼬집고 타이르고 때로는목놓아 울 수도...
민완기
아기 돼지 2019.07.02 (화)
털석 누운 돼지새끼 열두마리가 부리나케 달려온다내가 먼저야 비켜 내가 먼저야...서로 아우성 친다돼지 우리가 시끌벅쩍 새끼들이 '왜 이래!' 하며 서로 앞다툰다어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한마리는 자리를 빼앗겨요기도 한 번 끼어보고조기도 한 번 비벼보고돼지 아기가젖꼭지에 조롱조롱가지처럼 매달린다한쪽에 젖물고 자는 아기돼지도 있다꿈나라 여행인지 밀쳐도 훔쩍도 안한다 평화로운 12마리 아기돼지 울타리.
오정 이봉란
꽃과 음악 2019.07.02 (화)
싱그러웠던 봄이 지나면 온통 꽃을 구경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요즘이꽃을 구경하고 鑑賞감상하기가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막연히 요즘이라고 이야기하면 계절에 대한 感覺감각이 둔한 분들은 잘 모를 것 같아분명하게 밝히면 바로 6월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화단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풍요하기 말할 수 없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꿀벌이 잉잉거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느적이며 날으는...
성기조
모자이크 2019.07.02 (화)
신은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내 주었고세상은빛 속에 한 줄기 어둠을 만들었다어둠 속의 빛은수없이 많은 건배에 취해 있고세상 속의 어둠은찢긴 상처를 숨기고 있다희고 검은무늬를 짜면서신의 베틀이냉정하게 채워지는 동안얼룩진 술잔을 부여잡고휘청대는 인간에겐목소리가곡조가눈물이 만들어졌다
김귀희
순례 지팡이 2019.06.25 (화)
벼르고 벼르던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떠나던 6월 2일 전 날.아이들은 늙은 엄마가 먼 길을 나서는 게 영 불안들 한 모양이었다. 출발 전 날 며느리는 여행 동안 꼭 쓰라고 지팡이를 사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난 아무 말 못하고 아이들에게 순종해야 했다. 순례를 앞 둔 5월 1일 아침 산책길에서 발을 헛디뎌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얼굴을 긁어 잎술도 터지고 뺨도 긁혀 꼴사나운 얼굴로 순례를 간다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내가 봐도 이건 좀...
김춘희
숲의 장엄 미사 2019.06.25 (화)
잘난 자도 못난 자도숲에서는 아무 자랑 할게 없다키 큰자는 큰데로 작은 자는 작은 데로시샘 다툼 할게 없다.예쁜 꽃도 덜한 꽃도 오직 그 향기로만 진가를 가름 할 뿐 ------ ,숲 길로 난 오솔 길은 위로 또 위로 하늘 향해 어디로  사라졌는지 수사(修士)도 종적도 보이질 않고나무도 숲도 저 허잡스런 엉겅퀴들 까지도두 손 치켜들고 드 높이 하늘 우럴어오직 영원을 향한 목마름의경건의 속죄제로 진종일 마다 않는 거룩한 숲의...
남윤성
계단을 오르며 2019.06.25 (화)
아차 시간이 늦었다.강의 시간에 맞추려면 많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지하철도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오늘따라 왜 이리도계단이 많은 지 모르겠다. 하기야 어찌 오늘 갑자기 계단이 많아졌겠는가 만 마음이 급하다보니 예전에 전혀문제가 되지도 않았던 것까지 거슬리고 부담이 됨이리라. 천천히 오르면 전혀 힘들지않았던 계단들조차 바삐발을 옮기려다 보니 몇 개 오르자 이내 숨이 턱에 닿는다.이 날까지 내 삶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단...
최원현
풀피리 2019.06.25 (화)
봄이 오며는아버지 불던 보리피리 생각이 나요여름이 오며는어머니 불던 생각이 풀피리 생각이 나요마당 가 졸졸졸 흐르던도랑 가에 앉아맑은 소리에 귀 씻던호드기 생각이 나서텅 빈 고향에 홀로 앉아아카시아 이파리 부노라면산새들 덩달아 지저귑니다
김영희
미심이 2019.06.18 (화)
천당에서 하나 모자라는 곳,구백 구십 구당이라는 밴쿠버. 여름이면 브로드웨이 남쪽, 캠비 거리에선 먼 산 바라기가 참 좋았다. 끝 모를, 파란 하늘과 환한 햇살, 하얀 구름 몇 점에 가벼이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 좋았다. 이런 여름, 가게 문을 열고 나가면 다운타운 너머 웨스트 밴쿠버와 노스 밴쿠버를 병풍처럼 두른, 사이프러스 산(Mt. Cypress)과 그라우스 산(Mt.Gruose.)산, 시모어 산(Mt. Seymour)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머리에 시리도록 하얀 눈(雪)이...
문철봉
안부 2019.06.18 (화)
그대 있는 곳 소식은 모른다 지나는 바람도 그대 체온 전하지 못한다꽃이 피고 새가 우니그저 잘 있겠거니 한다우린 그렇잖아보지 않아도 만나지 않아도보고 만나는 그깟 일쯤꿈에서면 그대 옆에 쉬 있는데그리워도나는 너를 그리워하지 않는다그대 있는 곳 소식은 난 정말 모른다.
김경래
생명의 빛이 온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는 초여름이다. 풀과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푸르게물들고, 꽃들은 알록달록 사방으로 퍼져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고 있다. 눈을 들어 보는 모든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인 것처럼 힘찬 기운을 뿜어낸다. 마치 슬픔을 알지 못하는어린아이와 같이 그렇게 말간 얼굴로 계절은 다가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죽음이란 말이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날에 고모는 죽음을 맞았다. 하나뿐인 아빠의 동생이면서 세상에...
권은경
바람의 방정식 2019.06.18 (화)
방방곡곡 폭탄을 심어 둔 그가 오고 있다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나타난 그 겨울다리가 후들거리고 어지럽던 시국을 청산하고전신이 피투성이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오고 있다숨바꼭질만 일삼던 그의 머리 위로후광이 빛나고 배꼽엔 별을 매단 채한 걸음 두 걸음 그가 오고 있다모래알같이 수많은 역풍에 빼앗긴 시간을 두고하얀 알약 같은 목숨 붙들고 사랑의 지쳐버린 그가 오고 있다꺽, 울음을 토하던 세월도 함께 오고 있다
김지현
선선한 바람이 가을 공기를 뱉아 내며 계절변화가 시작되던 지난해 9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나는 가까운 병원에서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일주일이 지나 갈 무렵 병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좀 더 정확한 검사가 필요하다며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검사예약을 하라는 친절한 전화였다. 그 다음 날에는 암 3기에서도 볼 수 있는 세포를 지난번 조직검사에서 발견했다는 결과 지를 가정의로부터 전해 받았다. 병원건물...
섬별 줄리아 헤븐 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