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삼 겹줄 인생

권순욱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2-27 17:21

권순욱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50여 년이 스쳐 간 아득한 옛이야기다. 1960년대 초엽 내가 섬기던 군인교회는 군악대와 헌병대와 함께 영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군악대의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또래 중에는 서울대 작곡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 병장을 비롯하여 나름대로 학교에서 중창단으로 활동하던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하루는 외출에서 돌아온 이 병장이 소식 하나를 들고 왔다. 의정부 시민단체에서 주최하는 노래자랑에 대한 안내문이었다. 우리 남성 중창단이 참가해 보자는 한 친구의 제안에 따라, 약 2주간을 남겨 놓고 바삐 준비에 들어갔다. 그 당시 젊은이들이 즐겨 부르던 “만리포 사랑”이란 곡을 선정하여 편곡에 들어갔다. 지금도 기억에 새로운 것은 노랫말 중에 “청춘의 삼색 깃발”이란 것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삼색(三色)이 과연 무슨 색깔이냐는 것이었다. 의견을 수렴한 결과 우리는 미술에서 말하는 삼원색(三原色)을 사용하기로 했다. 빨강은 사랑을, 파랑은 젊음을, 그리고 노랑은 청춘의 조화를 표현하는 것으로 편곡을 하여 연습에 들어갔고, 노래자랑 당일에는 6인조 군악대가 동원되어 실력을 발휘한 결과 드디어 그날의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위의 가사에 나오는 삼색 깃발 외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말 가운데는 삼자(三字)가 들어가는 것들이 있다.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외치는 만세삼창(萬歲三唱)이나, 단오절에 벌어지는 씨름대회나 정초에 벌어지는 편 윷놀이에도 삼판양승(三判兩勝)이라는 것이 사용된다.
 
지금은 공원이나 어린이 놀이터엘 가보면 그넷줄을 플라스틱을 사용하여 아주 견고하게 만들어 놓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그넷줄을 장만할 때면 아마(亞麻-삼 종류)와 짚을 섞어서 삼 겹줄로 만들곤 하였다 그렇게 만든 그넷줄은 한 계절을 거뜬히 넘길 수 있는 아주 견고하고 질긴 것이었다. 그리고 낚싯줄을 만들 때도 명주실을 사용하여 겹줄이 아닌 꼭 삼
 겹줄로 만들어서 잉어용 낚싯줄로 사용하였다. 이는 삼 겹줄이 외줄이나 겹줄보다 튼튼함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속해서 성장하는 은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과 순종(적용)을 필수조건으로 들고 있다.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물질과 권력과 명예를 출세의 삼 겹줄로 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의 위치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기도와 말씀과 순종을 통한 지속적인 삶의 훈련이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삼 겹줄로 규정하고 싶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마감하는 이 시각에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오늘도 이 은총의 삼 겹줄에 잇대어 살아왔음을 확인할 때 비로써 승리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의 남은 삶 가운데 지속해서 되풀이되어야 할 기도의 끈 이기도 하다.
“주여, 이 은혜의 삼 겹줄을 내일도 붙들게 하옵소서.”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리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전도서 4:2)”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나의 문학 수업기 2024.01.22 (월)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다. 1960 년대 중, 고교생들의 인기 잡지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년, 소녀 문사들의 문학 등용문 역할을 했다. 참으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에 실린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들처럼 멋지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고는 했다.  필자가 다녔던 대전 중학교 도서관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동, 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현대물, 교양 서적 등 만 여권의 장서가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이현재
끝끝내 매달리려마침내 매운 바람 끝흘러 내리는 눈물처럼마지막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내가 지르고 싶은폐 깊이 눌렀던 고함을 걷어가을 나무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작은 가지에 모든 얘기 걸어 놓고마지막 잎 새는떨어져 나갔다연 고등 새싹 피어 오르던 봄나는 네 앞에 서서새 출발의 새 다짐을갈증의 한 모금 찬물처럼입에 물었다견디다 보니 견디어도 무너지는세월의 회초리는고통에 웃으라고 윽박 지르더라그래도 봄이 오면겨울 견딘 나무에 새...
조규남
설화 2024.01.15 (월)
따사로운 햇살에들력을 풍요롭게 익히었던가을 바람도록키 넘어온 북서풍에 미련이 남아있는 사연들눈 속에 모두다 묻었다겨우내 창 두두리고흰 머리 날리며정이 많아 속 눈물 흘리는 너는살을에는 칼 바람 부는날별이 좋아 밤새워앙상한 가지에 피어낸 꽃 향기없이 피어난설화뒤 돌아볼 시간 없이 사라질 운명명일 햇님이 찿아오시면차거운 세상에 힘겨웠던 마음도함께 반짝이겠지또 시린 가슴 호호 부는날다시 피어나는 숭고함에옷 깃을...
리차드양
 언젠가 고국에서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였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졌던 대중가요이다. 그 당시 방송에서 흘려나오는 노랫가락은 내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올 정도로 잘 알려졌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는 이렇게 희망을 주는 노래와 꿈을 갖게하는 설교는 듣는이들에게 희망을 갖게하거나 꿈을 꾸게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김유훈
왕궁의 후예 2024.01.15 (월)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박혜경
새해의 기도 2024.01.15 (월)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게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정호승
새해 기도 2024.01.08 (월)
겸허하게 하소서.내게 없는 것에 불만 하지 않고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늘 감사하게 하소서나 여기에 존재하므로저기에 하늘 땅 바다가 존재하며나 여기에 고른 숨쉬고 있음에온 우주가 맥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봄 여름 가을 겨울내 작은 발로 헤쳐갈 삶의 여로에서건네는 눈길마다, 마주 잡는 손길마다꽃잎 줍는 가슴처럼 따뜻하게 하소서덧칠 안 된 언어로 기도하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 인연이여세월에도 녹슬지 않는 영혼으로심장엔...
안봉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