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내 마음 줄까요?

윤의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2-12 14:56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는 아마도 짜증이 몹시도 났나 보다. 육아에 지쳐서, 타지 생활이 버거워서 나도 모르게 날이 선
상태의 나날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별거 아닌, 아주 작은 일에 바르르 화가 나서 목청을
높였다.

“조용히 해!”

아들 둘이 함께 욕조에 들어가 까르르 대며 노는 모습이 정겨워야 하는데, 무척이나 신경에 거슬리고,
답답하고, 불쾌하기까지 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가슴속에서 자꾸 고요한 평화 따위를 바라는, 설명할
수 없는, 불 같은 마음이 일었다.
수 차례 조용하기를 종용하는 나의 마음과 행동, 그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점점 더 소리는 커져갔다. ‘하하 호호, 끼야’ 가라앉아가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하늘
어딘가를 떠다니는 듯 흥겹기만 했다. 그럴수록 통제할 수 없는 기분이 되어가던 나는 애꿎은
접시들에 화를 내 듯 수세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박박 문질러 댔다. 첨벙첨벙 구정물들이 앞치마에,
소매에 튀었다.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 마음에 다시금 고개를 화장실 방향으로 휙 돌려 못된
마음을 토해냈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

다시 한번 소리를 높였다. 가슴 아래서 끌어낸 숨을 내뱉으며 아주 크고 길게 호흡을 모아썼다. 이번엔
들리겠지. 이제는 조용해지겠지. 그런 마음에 소리를 질러 댔다. 어찌 보면 아이들보다도 더 큰 소음을
만들며 기어이 집 안에 평화를 만들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저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이 공간을
어떻게 든 조용히 만들리라’ 나는 그런 의도였나 보다.
그러나 아이들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인지,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에 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는
것인지 아랑곳하지 않고 더 더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아무런 소용도 없이, 애써 힘을 들인 것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가슴에서 질러댄 소리 때문에 작은 통증만 남아, 짜증에 고통이 더해졌을 뿐. 기분만
나빠질 뿐. 점점 고조되는 흥과, 점점 짙어 지는 패배감만 대비되어 갈 뿐. 설거지를 하는 나 자신
스스로에게까지 화가 미칠 정도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쿵쾅쿵쾅. 아이들을 향해 일부러 발바닥에 힘을 실어 위협적인 걸음을 뗐다. 화장실로 향하는 동안
웅얼대던 소음들이 언어가 되어 귓가에 들린다.

“이번엔 내 차례야!”
“이야! 재미있지?”

무엇이 그리도 재미있는지, 신이 났다. 욕조로 다가가 샤워 커튼을 걷었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은
아이들이 서로 등을 밀어주며 재잘대고 있었다. 거품을 만들어 이리저리 묻히며, 웃음을 터트리더라.
비눗방울이 하나 터지면, 그와 함께 웃음이 하나 터지며 아이들은 행복하더라.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문득 내가 왜 그리도 성이 났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는지 예기치 않은
허무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대체 왜? 나는 그렇게?’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더라. 그리고 욕조 안에
물기를 머금은 작은 아이들이 무척 부럽더라. 도대체 아이들은 어찌 저리 행복하기만 할까? 어찌 저리
기쁘기만 할까? 커다란 나는 이다지도 메말랐는데.

“뭐가 그리 즐겁니? 엄마도 좀 같이 즐겁고 싶다.”

몇 초 전 전쟁이라도 치를 듯, 발을 구르며 다가갔던 것과는 달리, 의식하지도 못한 채 부드럽게
누그러진 말이 나갔다. 정말로 부러움을 실어 아이에게 진심을 전했다.

“엄마도 즐겁고 싶어요? 엄마에게 내 마음 좀 줄까요? 자, 여기요!”

5살짜리 막내 아이가 맑게 웃으며 자신의 가슴에서 작은 손가락으로 마음을 꺼내 내 손바닥에 전한다.
고맙더라. 그리고 한편으로 부끄럽고 또 슬펐다.

“고마워.”

목이 살짝 메었는지도 모르겠다. 수증기가 눈에 함께 어려 아이가 웃는 얼굴이 뿌옇게 비치더라.
참으로 못난 엄마다. 참으로 성질머리 고약한 엄마다. 아이들이 행복한 꼴이 눈에 시렸는지, 아니면
무엇에 그리도 화가 났었는지. 부족함에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을 삼켰다.
아이들은 나보다 더 크고 더 넓더라. 어른이지 못해 미안하다. 아이들의 마음을 나눠가진 나는 그날
누구보다 따뜻한 밤을 보냈다. 다음엔 내가 이 마음을 키워 아이들과 나누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아이가 나눈 마음의 씨앗을 가슴에 꾹꾹 심어 두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개똥 통장 2024.02.21 (수)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계좌가 하나 있다. 이 계좌 잔고의 정확한 액수는 사실 계좌주인 나도 잘 모른다. 그 액수를 도통 모르는 점이 실은 매력적인데, 그 이유는 글을 다 읽고 나면 알게 되실 것이다. 수시로 적립이 되는 것만은 확실하며, 이 계좌를 개설한 지는 대략 삼년 정도가 되었다. 오늘부로 만천하에 공개하는 이 비밀 통장은 이름하여 ‘개똥 통장’이라 한다. 누구든지 손쉽게 계좌를 열 수 있다. 그동안 나만 알고(최측근 언니들 몇...
김보배아이
  우리 부부는 아들 하나를 키웠고 손주가 3명 있다. 손주로는 쌍둥이 손녀에게 3년 아래로 손자가 하나 있다. 쌍둥이 손녀는 올해 14살이 되었고 손자는 6월이 되면 11살이 된다. 손녀들은 7학년까지는 학교 공부를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게 지내더니 8학년에 올라가니 심각해진 모습이 보인다. 손자 녀석은 여전히 학교 공부하는 눈치가 전혀 안 보인다. 주간 동안 하루는 방과 후에 아이들을 픽업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픽업하면서 손자에게...
김의원
대관령 양 떼 목장에 눈이 내린다영하 13도의 추위 속목장 언덕에 눈이 쌓이고돌풍 바람은 눈보라를 일으키며뿌연 안개를 뿌린다뺨을 때리는 눈보라로 얼굴이 얼얼하다뒤로 돌아서서 바람을 막아보지만앞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전날 내린 비로 나뭇가지마다물방울이 얼어서 유리 구슬이 트리처럼 달리고세찬 바람에 꺾어진 가지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닌다아래를 보나 위를 보나멀리 보나 가까이 보나 하얀 눈의 세계몸이 휘청 거리게 흔들어 대는...
조순배
  늙은 개와 70 이 넘은 늙은이는 그 성질을 바꾸지 못한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들의 사고나 생활 습관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그걸 고치기가 매우 힘들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필자의 경우도 새벽 2시 경이 되어야 겨우 잠자리에 드는 나쁜 습관을 옆에서 바꾸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마이동풍이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웬만하면 그냥 접고 만다. 특히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가 나오면 아무 소리...
정관일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