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아침 짓기가 괴로워서 굶는 일은 결코 없었다.
귀찮음 때문에 나 자신을 배곯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적당히 끼니를 때우는 일도 없었다.
그건 나에 대한 결례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데
누가 나를 귀하게 대해줄 것인가 (김남조)
옷장을 열어 보니 입지 않는 양복이 가득하다. 이민 올 때 가져온 것들이니 족히 이 십 년은
지난 옷들이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한국에서는 양복이 일상복이었다. 평일은 물론
휴일에도 외출할 때는 꼭 넥타이에 양복을 갖춰 입고 나갔다. 캐나다에 오니 양복 입을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이사할 때마다 한, 두 개씩 버리곤 했는데 아직도 옷장에는 십여 벌
이상이 쌓여 있다. 저마다 이런 저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옷들이다.
이민 초기에는 캐주얼이 적응이 안 되었다. 한국에서는 일 년에 몇 번 야유회나 등산 갈
때만 입었기 때문에 가져온 옷도 충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캐주얼을 추가로
장만하게 되었는데 내가 내 옷을 직접 산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구입은 주로 아내
몫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옷뿐이 아니고 내 물건을 내가 직접 구입한 적이 거의 없는
것이었다. 구두, 운동화, 모자, 휴대전화, 컴퓨터, 기타 등등...... 내가 먹고 싶은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즉, 정작 나를 위해 내가 직접 투자한 경험은 별로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래 전 한 친구가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 보았느냐고......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서 대답했다.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있느냐고.......
하지만 친구는 말했다. 지구처럼 큰 물체가 한 바퀴를 도는데 그 도는 소리가 없을 턱이
없다. 사람의 귀는, 아니 오관은 한정되어 있어서 너무 큰 소리, 너무 큰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한 해, 지금 생각해 보면 조그마한 일로 안절부절 못할 때도 있었고 온 세상이 멈춰
버린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뒤돌아보면 하잘것없는 일들이 태반이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을 위해 산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배려하고, 봉사도 조금씩 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에게 상 주는 일은
소홀히 한 것 같다. 평생 열심히 살고자 수고한 나에게 올 한 해는 혜민 스님의 말처럼 남의
눈치만 살피지 말고 자신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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