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마지막 돌 사탕

권은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1-23 16:46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어린 시절,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문방구에서는 온갖 종류의 불량식품을
팔았다. 그 불량식품을 사기 위해 아침마다 ‘엄마, 백 원만!’을 간절히 외치곤 했다.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이제부터는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반짝이는 은빛 동전
하나를 손에 넣었다. 책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불량식품은
절대 사 먹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문방구 앞에 서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순간이면
기분 좋은 설렘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오독오독 씹을수록 고소한 밭두렁, 빨아먹는
재미가 있는 아폴로, 연탄불에 구우면 말랑말랑해지던 쫀드기, 너무 딱딱해서 씹고 나면
턱이 아프던 숏 다리….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불량식품은 어린
우리에게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최고의 간식이었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면 원하던
불량식품 한두 개를 손에 넣고도 이십 원이나 십 원쯤 이 남곤 했으니 값도 무척 저렴했다.
거스름돈으로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받아 들면 바로 셈에 들어갔다. 십 원이면 돌사탕이
다섯 개, 이십 원이면 돌사탕이 열 개. 돌사탕은 돌처럼 볼품이 없고, 딱딱해서 깨물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가장 값싼 불량 식품이었다.

 
주머니를 불룩하게 채웠던 돌 사탕 중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면 학교 가는 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거칠고, 밍밍했던 맛은 사탕이라고 부르기에도 무색했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한 손 가득 잡히던 돌사탕은 그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큰 만족감을 주었다.
좁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친구들과 발걸음을 맞출 때면 인심 좋게 돌 사탕
하나씩을 나누어 주곤 했다. 어느새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우리는 학교에 이르렀다. 주머니

안에 있는 돌사탕이 마지막 남은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그것은 싸구려 불량식품이 아닌
귀중한 그 무엇처럼 생각되었다. 그래서 선뜻 입에 넣지 못하고, 하루 내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돌사탕이 주었던 기쁨을 다시 한번 붙잡으려 했다.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삶
곳곳에서 나는 마지막 남은 돌사탕의 의미를 쉽게 찾곤 한다. 비웠을 때 채워지는 것, 놓았을
때 얻게 되는 것, 많이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알게 되는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소중한 행복을
나는 매일 경험하며 산다.
 
냉장고가 텅 비었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닫으며
실망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가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얼굴을 깊숙이 넣었다. 아이의 입에서 우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냉장고 안에서
초콜릿 한 알을 발견한 것이었다. 언젠가 넣어두었던 초콜릿 상자에서 떨어져 나와 구석에
박혀 있던 빨간색 비닐에 싸인 초콜릿이었다. 아이는 초콜릿 한 알을 들고나오며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행복한 얼굴이었다. 동생의 손에 올려진 초콜릿을 보며 눈이 동그래진
큰아이는 입맛을 다셨다. 동생은 자신이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언니를 힐끗
내려다보고는 위풍당당하게 초콜릿의 비닐을 벗겼다. 동그란 초콜릿 한 알을 통째로 입안에
넣는가 싶었는데 앞니로 꽉 깨물어 반은 제가 먹고, 반은 언니에게 내밀었다. 언니는 웬
횡재냐는 얼굴로 초콜릿을 받아 들고는 연거푸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던
초콜릿 하나에 두 아이는 금세 천국의 아이들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초콜릿 한 알은 넉넉할
때 느낄 수 없었던 감사의 마음과 나눔의 기쁨을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내심 넘치지
않게 아이를 키우는 것이 마음 넉넉한 아이들을 만드는 비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는 이전에 비해 소박해진 일상을 즐기며 산다. 학교나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한 상
가득했던 엄마 표 밥상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달랑 국 하나에 김치 뿐인 밥상을 앞에
놓고 알게 되었다. 어쩌다 새로 한 반찬이 식탁에 두 개만 올라와도 오늘이 무슨 날이냐며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 간소하지만 따뜻한 밥상 앞에 모여 앉은 가족들은 참 복스럽게
음식을 먹고 미소를 내어놓는다. 넘치지 않는 단출한 생활은 언제나 작은 것에도 감격하고
감사하게 만든다. 비우려고 해도 비울 수 없던 욕심과 허영들…. 부모 형제 없는 먼 이국
땅에 살면서 마음이 가난해진 탓인지 움켜쥐고 있던 많은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게 된다.
비웠을 때 비로소 채울 수 있는 것들, 넘치게 소유해서가 아니라 딱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있을 때 찾아오는 행복은 생활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식구들과
마주하고 앉을 때의 편안함, 된장찌개 하나에 계란말이를 앞에 두고 느끼는 기분 좋은
포만감, 우리 말로 된 책 한 권을 받아 들었을 때의 감격, 언 발을 녹여주는 남편의 손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소박한 삶 속에 찾아 드는 잔잔한 기쁨은 주머니 속에 종일 굴러다니던
손 떼 묻은 마지막 돌사탕을 통해 느꼈던 충족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단한 삶의

순간순간마다 휑한 마음을 달래주는 건 일상에서 접하는 작은 것에 깃들어 있음을 마음에
되새겨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봄밤 2024.04.22 (월)
언제 와 닿았을까벚꽃잎 살랑이는 듯한 손짓어리여린 초록빛 말 한마디깡깡 얼었던 맘을 동그랗게 녹여내고눈 녹아 흐르는 개울물처럼속살대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마음이 간질거린다사랑이 왔구나
이인숙
곁에서 2024.04.22 (월)
첫 인터뷰를 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 쓸 수 있는 글과 써야 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했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한인 이민자를 찾아다니며 그들의 인생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범한 이민자인 부모님의 낡은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작업이다. 이민자는 모국에서 만큼 인정받을 기회가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는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휘발되기 전에 쓰고...
김한나
  머리가 허연 사내 하나가 털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와 동네 골목을 산책 중이다.산책하고 싶어 한 게 개였는지 사내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강아지가 앞장서고 사내가 뒤를 따른다. 강아지가 길모퉁이에 멈춰 서 있다. 아랫도리를 낮추고 볼일을 보는 개를 사내가 조용히 기다려준다. 꽁초 한 개비 마음 놓고 못 버리는 인간의 거리에 천연덕스럽게 응가를? 무슨 상관이냐고, 갈 길이나 가시라고, 녀석이 흘끔 위 아래로 훑는다. 녀석이 일어선다....
최민자
시와 종교 2024.04.22 (월)
고통과 시련으로 가슴에 든 멍을 씻어주는시는 훌륭한 마음의 의사무언가 될 듯 안 될 듯할 때의 괴로움이無 자의 깊은 화두가 되어참회의 순간으로 깨달음을 구하네꽃잎이 지고 말라도 봄 날봄바람은 다시 찾아와꽃을 다시 피우고나비로 다가와 시의 향기를 풍기네때론, 울긋 불긋 가을 바람에귀뚜리 소리가 눈물 짓게 하고하얀 눈 발이 날리는 겨울에는외로움에 시를 쓴다네보고 읽고 듣는 시마다시구는 생겨났다 사라져도생의 길잡이로깨달음이...
강애나
풍경 속 평온 2024.04.15 (월)
햇빛 가리개 구름은머리에 하이얀 솜털을뒤집어 쓴 산봉우리를살포시 허공을 헤엄친다하늘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바다의 모습은 그지없이 평온하다바다와 산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지만그냥 묵묵부답으로 본연의 자태를 취할뿐아무런 댓가를바라지 않는다하늘과 산과 바다를멀리서 지켜보는저 학동은 그지없이유유자적한데저 멀리서 뜬금없이먹구름 하나가비를 몰고오네 
구대호
영원한 이민 2024.04.15 (월)
  “권장로님, 아버지께서 오늘 아침 천국으로 아민을 떠나셨기에 환송 예배를 드립니다.” 친구 딸아이의 멧시지 였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주권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친구 문장로가 지난주 4월 1일 새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금의환향(錦衣還鄕)했다. 그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의 친구요 교회의 동료로 함께 해 왔다. 그는 과묵하면서도 유머가 많아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말이 별로...
권순욱
밟아라 2024.04.15 (월)
 서울에 사는 영적 동반자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영화 <사일런스>를 꼭 보라며 청주 상영관까지 알려줍니다.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영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래전에 그 영화의 원전인 『침묵』이라는 소설을 감명 깊게 읽고 가끔씩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충북 내 영화관이 똑같이 종영하는 날, 가까스로 진천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엔도 슈사쿠의 소설...
반숙자
셀카 증명 시대 2024.04.15 (월)
세상은 변했어기우뚱 거리다 기울어 지다 엎어졌어마음을 나타내려 해도 이제는환적의 경유지를 밝혀야 하고무게의 중량을 홀수선에 남겨야 하는"마음 속으로" 는 사라지고"보시다시피"로 증명 해야 하는 세상마음을 찍을 수 없는 셀카에 의존하는증명사진 유행의 시대, 증명사진 요구의 시대여보시게나자네들과 나 사이에는이심전심의 토양에서우정 이라는 길을 돋우고 다지며믿음을 넓히고 오해를 메우는, 마침내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큰 길모여...
조규남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집도의는 캐나다에서도 이름 있는 Doctor라 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남자가 7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다. 수술은 집도의와 보조의가 하겠지만 의대생들이 견학하는 걸 허락했던 것이다.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된듯하다. 수술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방광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아내고 양팔 혈관에 주사바늘을 고정시켜 줄이 달려있다코로 호수를 따라 식사대용 영양제가 들어간다. 또 수술한 부위에도 호스를 넣어...
박병준
 ▶지난 주에 이어 계속 암이 자리 잡은 곳, 그 위치가 어디인가. 그게 중요하다.폐라면 힘 든다. 췌장이라면 수술이 어렵다. 급성으로 여러 군데 전이가 되었다면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내게 온 곳은 목이다. 후두암이라고도 한다. 그 자리는 어떤 곳인가?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부분이다. 거기는 기도(Air way)와 식도가 만나는 곳인데 코와 입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고 또 입에서 식도로 넘어오는 음식이 지난다.또 허파에서 나오는 공기가...
늘산 박병준
늘산 본인이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하고 퇴원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에서 예방될 수 있는 일에 다소나마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암의 발견은 우연적일 수도 있고 필연적일 수도 있다.나는 우연적이라 생각하며 그나마 일찍 발견하였다는데 다행이라 생각한다.산에서 사람을...
늘산 박병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