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선생님, 선생님, 그리운 나의 선생님

송무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9-01-04 16:00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삶의 속도에 눌려 살다 보면 그리운 이도 잊고 살게 되는 법이지만 그래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보고 싶은 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그러한 이를 향한 그리움이 쌓이는 만큼 그이는 점점 더 아름답게 가슴에 새겨지는 법이다. 나에게도 갈수록 아름답게 떠오르는 그런 분이 있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자리 잡아 그리워하게 된 이는 나의 국민학교 1학년과 2학년 담임 선생님이시다. 인천 교대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내가 다닌 화수 국민학교에 오셨던 분이었다. 요즘에야 아이들이 유치원 시절에 이미 초등학교 일 학년 과정을 다 공부하지만, 그 시절에는 한글로 제 이름 쓰는 것도 모르고 학교에 입학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글 자모부터 아라비아 숫자까지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가르쳐 주셨다.

  나는 이 선생님과 기억에 남을 특별한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입학하는 날부터 나는 상냥하고 다정한 큰 누님 같은 선생님이 좋아서 학교에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리가 아파서 여러 날을 계속해서 면 소재지에 있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했다. 아버지께서 동네에서 처음으로 사신 경운기를 마치 멋진 자가용 승용차라도 된 듯이 타고 집에서 병원으로 다시 학교로 갔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학교 건물 출입문까지 나오셔서 나를 당신 등에 업으시고는 교실까지 데려가셨는데 나는 그게 너무 뿌듯하고 행복해 다리가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아름다운 젊은 선생님의 외모만이 아니라 예쁜 마음씨에도 반해 있었다. 일 학년 때 우리 반에는 유난히 작고 힘이 약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의붓어머니 밑에서 끼니도 제대로 못 먹는 아이였다. 우리나라가 가난해 미국 구호물자로 나오는 옥수수빵을 점심에 배급받던 때였는데 선생님께서는 매번 특별히 그 아이에게는 빵을 더 주셨고 나는 그런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이 천사처럼 생각되어 더욱 선생님이 좋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 선생님 때문에 학교에서 처음으로 운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니 이는 당신이 잘못 가르친 까닭이라고 하시면서 반 아이 모두에게 한 대씩 당신을 때리라고 하셨다.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을 못 이기고 모두 지시대로 하였지만, 나는 도저히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께 그럴 수가 없어서 울기만 하며 끝내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

또 선생님은 아이들이 선생님이란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시절에도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 주시는 분이었다. 2학년 때 하루는 학교에서 아이들 지능 검사를 하였다. 나는 무슨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께 검사 문제를 안 풀어도 되는지 여쭙고 검사를 받지 않았는데 선생님께서는 내 의사를 존중해 그냥 놔두셨다.

  나는 항상 선생님을 잘 따르고 말 잘 듣는 학생이었지만 한 번은 선생님을 곤란하게 해 드린 적이 있다. 장학 지도가 있었는데 워낙 발표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줄기차게 혼자만 대답하겠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시는 선생님을 수업 시간 내내 계속 손을 들고 퉁퉁거리며 괴롭혔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전혀 꾸지람을 안 하셨고 나중에 부모님께 들어 내가 한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을 따르고 선생님과 함께 수업이 끝나고도 남아서 시험지 등사도 하고 채점을 돕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지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행복은 2학년이 끝나가던 2월 초 갑자기 선생님께서 전근을 가시면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돌연히 포근한 어미 품을 잃어버린 어린 새끼처럼 충격에 빠져 반장이라는 것도 잊은 채 선생님께서 안 계신 반에 남아있기 싫다고 생떼를 써서 학년 말이 한 달도 채 안 남았지만, 옆 반으로 반을 바꾸고 말았다.

  전근 후에도 선생님께서는 나를 생각하시고 내게 자주 편지를 보내 주시고 나도 답장을 쓰며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 1년여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따스한 봄날 선생님께서 나를 보시러 일부러 우리 집까지 오셔서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다음 나를 데리고 사진관에 가셔서 함께 사진을 찍으시면서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담임을 맡으셨던 때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긴 머리에 다른 선생님들처럼 한복을 입고 다니셨는데 이번에는 짧은 단발머리에 붉은색 계통의 투피스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오셨다. 중고등학교 학생이었다면 그 모습이 훨씬 더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을 테이지만 국민학교 3학년 시골 아이였던 나는 선생님의 그런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아 갑자기 선생님이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고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 후에도 선생님과 몇 번의 서신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여자분들이 한복만 있던 시골 동네의 촌뜨기였던 나는 그 낯선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얼마 뒤부터 답신을 보내지 않아 결국 선생님과의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귀여워하셨던 나의 돌연한 행동의 변화를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시고 섭섭해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선생님 마음에 잊지 못할 배신감을 안겨 드리지 않았나 새삼 죄송스러울 뿐이다.

  5학년이 되면서 서울로 유학을 오게 되고 숙녀들이 흔히 선생님처럼 양장하고 다니는 게 하나도 신기하지 않고 도리어 한복 입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선생님을 다시 그리워하게 된 것은 중학 시절 시골 집에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내가 졸업도 안 하고 떠난 그 국민학교 교정에 간 때이다. 여느 학교처럼 이승복 동상이 서 있는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나는 마치 선생님이 예전에 하신 것처럼 나오셔서 나를 반겨주지 않으실까 자꾸 교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서 건물 주위와 복도를 걸으면서 선생님 생각을 하고는 했다. 또 선생님께 연락을 취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는 했지만, 연락처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교육청을 찾아가던지 방법이 있었겠지만 내가 한 행동이 부끄러워 선생님께 차마 연락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피천득 선생은 그의 수필 '인연'에서 아사코를 세 번 만났는데 세 번째는 안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했다. 나의 그 선생님은 내 기억 속에서 변함없이 아름답게 살아 계신다. 지금도 가끔 선생님을 꼭 다시 만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나를 그렇게도 큰 누나가 친동생 돌보듯이 귀여워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던 그분께 건방진 촌뜨기 꼬마의 무례에 대한 잘못을 빌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 이미 정년 퇴임을 하신 그분을 다시 만난다 하여도 서로 알아볼 수 없을 것이고 나의 기억 속 아름다운 그분의 모습을 상하게 할 뿐일 것이다. 때로는 지난 일은 기억으로만 묻어 두는 게 나을 수 있다, 비록 아쉽더라도.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