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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는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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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9-01-04 15:58

박오은 / 캐나다 한국문협 기획
주말에 손자가 다녀갔다.
내가 감기를 앓아 거의 한 달 만이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옹알거리더니
요즘은 저만의 즐겨 쓰는 단어 몇 개가 있다. 하지만 손자와 나 사이엔 말이 필요 없다.
“어, 또는 응?” 하면서 말꼬리를 올리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녀석의
가녀린 손끝이 가리키는 대로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
소리 나는 책도 가져다 주고 장난감 상자도 알아서 대령한다. 피아노를 바라보며
“어…”하면 냉큼 피아노 앞으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 우유가 마시고 싶은 거고, 뭔가
먹고 싶으면 단풍잎 같은 손을 입에 대고 계속 톡톡 두드린다. 반 가까이 흘리지만
먹여주는 건 질색이고 스스로 먹는 게 신통 방통하다.

기저귀를 바꿀 때, 고 귀여운 것(?)을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까꿍을 하며
놀잰다. 까꿍도 어찌나 크게 하는지 발레리나 강수진 폼이다. 기저귀만 두른 채 소파에
털썩 눕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고 좀 놀아줘야 바지 입기가 허용된다.
팔다리를 추켜 올리고 끙끙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걸음마를 자랑하며 의기양양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분주 다망하다. 서랍을 열고 집어넣고 꺼내기를 반복하다가, 다른
흥미거리가 생기면 미련 없이 옮겨간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간 숨겨놓은 위험한 연장
가방까지 꺼낼 판이다. 가고 나면 서랍이나 구석에 안경, 자, 볼펜
등이 수두룩하다.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 같아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데. 녀석도 맹렬하게 몸을 일으켜, 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더니, 혼자 걷기를
삽시간에 해치웠다. 스스로 균형을 잡고 일어서는 것부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인생이란
복잡 다단한 길에 들어섰다. 햇살은 나무를 부풀게 하고 지식과 배움은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 행동하는 것이 인생이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긴 삶을 산다고 한다. 문일지십(聞一知
十)하기 바라며 올곧고 현명하게 자라길 빌어 본다. 

  하루의 반을 갈랐다. 이제 낮잠 잘 시간, 잠투정이 심해 몸을 뒤로 젖히며 울어 재낄
때는 힘에 부쳐 내가 넘어갈 정도다. 아기 띠로 안아 재우려는데 내려놓으면 화들짝
깨고 또 깨고 ... 그대로 안은 채 거실을 두어 바퀴 돈다. 발그레한 얼굴을 갸웃하고 포옥
안겨 도리 없이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든다. 눈도 찡긋하고 가끔 입술을 오물거리면
젖내가 폴폴 ...  내려놓지도 못하고 한 시간 넘게 재우다 보니, 내 어깨,
허리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른다. 어쩔 수 없이 나이 먹음에 포섭당하고 실꾸러미에 꿰어
가는 이 무정한 세월이여.

  새근새근 잠든 모습이 천사가 따로 없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초롱한 눈 속에
호수가 있고 하늘이 있고 온 우주가 들어 있다. 어느 별에서 뚝 떨어져 내게로 와 이렇듯
꼼짝 못하게 하니.’ 작년 가을 어느 날, 아들이 화상 전화로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보여
주며 이 세상에 손자의 탄생을 알렸다. 눈도 못 뜨고 고사리 손을 꼭 쥔 채 입술을
오물거리며 잠든 모습이, 아들을 빼 닮았는가 했더니 얼핏 남편의 모습이 보인다.
경이롭다. 이렇게 대를 잇는 것인가. 이른 새벽에 태어났거늘 엄마 잠 깨우지 않겠다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은근히 알리는 아들. 기쁘고 가슴 벅찬 그 순간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한나절을 놀고 이젠 작별의 시간. 차에 태우고 유아용 의자의 안전 벨트를 채우면
방글거리던 표정이 슬그머니 바뀐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환호하고 손뼉
쳐주고 절대적 팬인 나와 작별하는 게 저도 서운하다는 것을
...  하지만 포기도 빨라 방긋 웃으며 고사리 손을 흔든다.
그 조그만 몸으로 온 집안을 흔들어 놓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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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짓기가 괴로워서 굶는 일은 결코 없었다.귀찮음 때문에 나 자신을 배곯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또한 적당히 끼니를 때우는 일도 없었다.그건 나에 대한 결례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데 누가 나를 귀하게 대해줄 것인가 (김남조)  옷장을 열어 보니 입지 않는 양복이 가득하다. 이민 올 때 가져온 것들이니 족히 이 십 년은지난 옷들이다.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한국에서는 양복이 일상복이었다. 평일은...
이현재
선물 2019.01.29 (화)
들끓는 세상 속으로 아기천사가하얀 눈가루 선물을 뿌리신다어린 시절 새벽송이 어렴풋이 들려올 때면문 앞에 선물이 걸려 있곤 했다금방울 은방울 흔드는 구세군누군가의 선물을 건네고 싶은 오늘늘 내 곁에 오시는 당신을 생각하면서날리는 눈 한점 손바닥 위 받는다
유우영
설에 얽힌 추억 2019.01.29 (화)
먼동도 트기 전 미처 눈곱도 닦아내지 못한 아이가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따라나선 읍내 방앗간엔 이미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시루에서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겨온다. 함지를 머리에 이고 온 어머니는 진작부터 길게 늘어선 줄 끝에 함지를 내려놓으신다. 그리고 아이에게 씽긋 눈짓 한번 주자마자 잰걸음으로 난전에 나가시면 아이는 당연히 제집에서 가져온 함지 곁을 지켜 선다. 한참 동안 차례를 놓치지 않고...
바들뫼 문철봉
사랑의 그리운 비 2019.01.29 (화)
사랑은 어디서 산들바람 타고 오려나그리움은 사랑이어라사랑은 안개비여라오랜 방황 속 마주하고다른 곳, 같은 길을 걸었던늘 의로운 사랑이었구나내 사랑이여!그대는내 마음속 들꽃 향기여라내 사랑은 눈물비였네시간이 아쉬운 큐피드의 나의 천사여!천국 가면 그 눈동자 볼 수 있으려나 그립고, 그리운 내 사랑은사랑의 그리운 비눈물비였어라.
혜성 이봉희
내가 사는 집은 26층짜리 콘도, 이 건물의 십층으로 옮겨와 산 지 3년째 접어든다. 이백오십 가구가 모여 한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일 층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누구나 엘리베이터로 오르락내리락하며 출입을 한다. 반 평 남짓한 엘리베이터 좁은 공간에서 이웃과 마주하는 시간이 때로는 아주 무료하고 지루하다. 서로 말없이 바닥만 응시하다가 헤어질 때에는 유난히 엘리베이터 속도가 느리게 느껴진다. 때로는 엘리베이터 방안이 화기애애한...
심정석
들꽃처럼(2) 2019.01.23 (수)
청초한 색깔과은은한 향기 하나로오롯이 사는들꽃처럼 홀로 있거나무리지어 함께 있어도늘 아름다운들꽃처럼 기꺼이제 것을 내주어뭇 생물의 삶을 돕는들꽃처럼 ... 선한 숨결로자연과 교감하며우주를 품안은들꽃처럼
愚步 김토마스
마지막 돌 사탕 2019.01.23 (수)
어린 시절, 초등학교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문방구에서는 온갖 종류의 불량식품을팔았다. 그 불량식품을 사기 위해 아침마다 ‘엄마, 백 원만!’을 간절히 외치곤 했다. 최대한불쌍한 얼굴로 이제부터는 정말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다짐을 거듭하며 반짝이는 은빛 동전하나를 손에 넣었다. 책가방을 메고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아이를 보며 엄마는 불량식품은절대 사 먹지 말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문방구 앞에 서서 무엇을 살지 고민하는...
권은경
늦기 전에 2019.01.23 (수)
시간의 세월이어제의 기억을 다듬어 가고내일의 기대를 만들어 가며소리없이 흐른다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는 동안힘있던 어른들의길어진 하품이 외롭고지키지 못한 많은 맹세는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동안돌고 돌아 우리를 유혹한다핑계의 가면은후회라는 베일을 씌워 놓고작심삼일의 신기루로 아른거리면버리지 못하는각 지고 모난 사고들은울어야 할 날들을 적어간다철들자 망령 난다고들어서 각인된 뼈아픈 충고가시작의 문을 열고...
장의순
고독한 날갯짓 2019.01.14 (월)
삐르릉 삐르릉 새벽의 전령이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뒷산 숲에서 잠을 잔 멧새들이무리 지어 날아와 노래를 한다. 숨어서 몰래 바라보니 어쩌면 저리도 가벼운 몸짓인가.조망만한 잿빛 새는 편편한 가지는 제쳐 두고 동곳한 가지 끝에 떨어질 듯 앉아서 꽁지를까불러 대며 무언가 궁리하는 눈치다. 먹이를 찾는 걸까, 아니면 친구를 부르는 걸까,설마하니 저렇게 높은 가지에 둥지를 틀려고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들깨 알 보다 더 작은눈에 무엇이...
반숙자
바람과 나무 2019.01.14 (월)
바람이나뭇가지에 걸려돌아가지 못하고 있다웅웅웅 울어대는 소리바람이 우는지나무가 우는지나뭇가지 심하게 휘어대면서여전히 둘은 실랑이를 한다보낼 것은 보내야나무가 살지떠날 것은 떠나야바람이 살지
김귀희
기가 죽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면그 시선 앞에 놓인 당신의 발을 보라보잘것 없는 당신을낮은 곳에서 지탱해주는 그 발을 지치고 고된 삶 속에서 잠시 앉아 쉬고 있다면퀘퀘한 신발속에서 숨죽여 갖혀 있는 당신의 발을 보라열심히 뛰어다닌 당신을 위해여태껏 쉬지 않았던 그 발을 그대와 함께 묵묵히그 무게를 견뎌주는 존재 그리고우리 모두는 또 언젠간 그렇게 누군가의 발이 되어 살아간다. 
전종하
2019년 새해가 밝아왔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꿈과 희망을 갖고 금년에는 지난 해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게된다. 우리가  살고있는 카나다 밴쿠버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 뿐만 아니라 삶의 질에서도 세계적으로 최상위권 안에 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살고있는 나는 감사해야 하지만 요즈음은 오히려 잠을 쉽게 잘 수 없다. 그 이유는 고국인 대한민국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닭도록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김유훈
한오백년 더 걸으면 길을 찾으려나.네발로 두발로, 세발로 걷는 것이 인생이라면나는 아직 한 세기가 남았는가. 희망으로 펄럭이던 무술년도 속절없이 떠가고365일 알알이 또 다시 새로운 희망이길 기대하는가난한 섬돌 밑으로 기해년 꿀꿀이가 찾아들다. “꿀꿀아 꿀꿀아,내 꿈 하나 이루어주면 안 잡아먹지” 두 주먹 불끈 쥐고 뛰어 볼 일이다.언제나 새해 첫 달은 늘 비전이고높이 솟는 태양이다. 아가는 어서 자라서 어른이 되고...
추정 강숙려
어른의 길 2019.01.08 (화)
‘어른 다 되었구나. 우리 아들.’ 중학교에 들어가서 그 동안 부르던 ‘아부지’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했을 때 내 아버지로부터 들은 칭찬이다. 아들이 사춘기가 지나면서 ‘아빠’라는 호칭 대신 ‘아버지’라고 했을 때 내가 아들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국어사전에는 어른의 정의를 ‘다 자란 사람’이라고 해 놓았다.다 자란다는 것은 무엇인가? 육체적 성장인가,정신적 성장인가? 몸만 자랐다고 우리는 어른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원배
새해인사 2019.01.08 (화)
새해에는 평범함의 은덕을 알게 해 주소서 사소함의 기쁨을 알게 해 주소서 그 동안 못 만났던 사람들의 손을 잡게 해 주소서 보통의 즐거움을 갖게 해 주소서 풀꽃들과 대화하게 해 주소서일상의 발견과 이 순간의 깨달음을 얻게 하소서 떠오르는 해돋이처럼 경건하게 하루를 맞이하고 지는 해넘이처럼 장엄하게 하루를 장식하게 하소서 나무처럼 하루하루를 살게 하소서
정목일
삶의 속도에 눌려 살다 보면 그리운 이도 잊고 살게 되는 법이지만 그래도 새록새록 떠오르고 보고 싶은 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그러한 이를 향한 그리움이 쌓이는 만큼 그이는 점점 더 아름답게 가슴에 새겨지는 법이다. 나에게도 갈수록 아름답게 떠오르는 그런 분이 있다.   내 마음에 아름답게 자리 잡아 그리워하게 된 이는 나의 국민학교 1학년과 2학년 담임 선생님이시다. 인천 교대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내가 다닌 화수...
송무석
굳 바이, 12월이여 2019.01.04 (금)
눈처럼                희고 죄 없는 세상 살지 못했습니다               그리움 하나 가지고               어딜 헤매고 다닌건지               죽도록 그리운 시만 써댔습니다               당신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어디 계시는지요         ...
김영주
말 없는 소통 2019.01.04 (금)
주말에 손자가 다녀갔다.내가 감기를 앓아 거의 한 달 만이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옹알거리더니요즘은 저만의 즐겨 쓰는 단어 몇 개가 있다. 하지만 손자와 나 사이엔 말이 필요 없다.“어, 또는 응?” 하면서 말꼬리를 올리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녀석의가녀린 손끝이 가리키는 대로 몸을 낮추고 귀를 기울이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다.소리 나는 책도 가져다 주고 장난감 상자도 알아서 대령한다. 피아노를 바라보며“어…”하면 냉큼 피아노...
박오은
겨울 편지 2019.01.04 (금)
흔들리는 바람의 가지 끝에서셀로판지처럼 팔딱이는 가슴으로 편지를 쓴다만국기 같은 수만 장의 편지를 쓰던 그 거리에서다시 편지를 쓴다그대와 나 골목 어귀에서 돌아서기 아쉬워손가락 끝 온기가 다 식을 때까지한 쪽으로 한 쪽으로만 기울던 어깨와 어깨 사이그림자와 그림자 사이그림자처럼 길게 구부러지던 길모퉁이에서뜨겁고 긴 겨울 편지를 쓴다오늘은 폭설이 내리고 대문 밖에서 누군가 비질하는 소리그 소리에 묻혀 아득히 멀어지다가...
이영춘
위키백과 사전에서 일상(日常)의 의미를찾아보면,“날마다 순환 반복되는 평상시의 생활”이라고나와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패턴의 생활을 얘기한다. 나의 하루를 보더라도 크게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아침 먹고, 출근하고,일 마치고 돌아와서 잠시 쉬다가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지극히 평범하고, 변화 없이 되풀이되는 생활 일과이다.특별한 약속이나 이벤트가 없는 한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매일...
정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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