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바람이 휘 집고 지나가는 거리에 나뭇잎이 우수수 머리위로 떨어진다. 무수히 쌓인 나뭇잎을 보니 가을도 떠날 차비를 하는가보다. 하늘을 쳐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청자 빛 하늘이 왠지 낯설다. 고국의 이런 하늘을 바라본지 얼마만인지 가슴이 뭉클하도록 사무쳐온다. 가을이 떠나려고 마지막으로 온 몸을 내어맡긴 나무는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무심하게 흘러가는 구름과 파란 하늘을 친구삼아 의연히 서있다. 나무에서 떠나버린 나뭇잎들은 사람들의 발밑에 밟히며 바람에 쓸려 다니며 아무런 저항도 의지도 없이 모든 걸 내려놓는다. 가을이 지나간 흔적만 남겨놓고 겨울에게 자릴 내놓고 슬그머니 물러난다. 노을빛을 닮은 듯 피를 토하는 듯 고운 나뭇잎들은 그들의 눈물과 고통의 산물이건만 인간들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예쁘다 아름답다만 외치면서 한 번도 나무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떠나가 버린다. 남겨진 나무는 외롭고 허허로운 긴 겨울을 다가올 봄에 안겨질 새 생명을 기다리면서 모든 고난을 인내한다.
인간사 또한 자연의 이치와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본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이 세상엔 없다. 오직 영혼과 영혼의 교감이 있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언젠간 헤어지고 한 사람은 떠나고 또 한 사람은 남겨진다. 누구의 생각도 아니고 누구의 뜻도 아니지만 영원히 이별한다. 언젠간 만날 수 있는 짧은 이별도 있지만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긴 이별은 그 누구도 상상 할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의 인내를 요구한다. 시간이 흘러야만 치유되는 과정을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 겪어야한다. 연습이 필요 없고 누구와도 나눠가질 수 없는 괴로움의 시간들이다. 나무에서 떠나버린 잎들은 훨훨 날아서 쉽게 나무를 잊을 수 있을 것 같고 남겨진 사람이 아닌 먼저 떠나버린 사람은 남겨진 사람의 고통은 외면 한 것처럼 긴 여정에 들어간다.
거리엔 수북이 쌓인 낙엽이 이리저리 휘날리면서 제 갈 길을 찾아 헤맨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헤매는 인간들의 모양을 보는듯하다. 먼저 떠나는 사람이라고 어찌 마음이 편하기만 할까 ……. 이 세상의 미련과 나름 데로의 상상 못할 고통이 따르겠지만 남겨진 사람은 더 아픈 남은 시간들을 혼자서 감당 하면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야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 잎들이 경쟁을 하듯 땅으로 내려앉는다. 이름 모를 큰 나뭇잎 하나가 툭 하고 떨어진다.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려서 코끝이 찡한다. 이름 없이 살다가 지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 마음이 공연히 슬퍼진다. 아무런 미련도 없고 아쉬움도 없이 던져진 그 잎처럼 나도 그렇게 어느 낙엽 지는 가을날 떠나고 싶다. 남겨진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이 마음은 남겨지면 견딜 수 없는 그 잔인한 시간들을 어찌 보내야 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별은 연습이 필요치 않다. 어떤 연습을해도 헤어진다는 건 슬프고 가슴이 아리다. 오히려 그리움을 더 쌓아가서 더 힘든 이별이 있을 뿐이다. 이별이 닥치면 그저 닥치는 대로 당하고 시간만이 그 괴로움에 덧칠을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은 인생의 묘약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슬픔과 괴로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모든 문제를 해결 해준다. 이리저리 더해서 칠해진 시간은 가슴의 상처도 조금은 앗아가리라 생각한다.
그 날은 비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은 청자 빛 가을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점 나와 친구 해서 먼 길 떠나고 싶다. 늧 가을비도 추적거리고 비에 젖은 나뭇잎들이 갈 곳도 없이 발밑에서 눈물 흘리는 이런 가을은 가슴이 아프다. 아름다운 단풍과 내 마음에 기쁨과 슬픔을 주고 떠나는 가을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을은 나에겐 풀지 못한 내 인생의 지나간 한 순간인 듯 진하게 밀려오는 그리움과 더불어 떠나고 또 남겨져야만 하는 인생살이인 듯하다. 나의 이별은 의연한 나무처럼 속으로 삼키는 눈물이 진액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듯 영원한 영혼의 만남을 기대하는 그런 아름다운 순간으로 승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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