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며칠 전 오랜 이웃으로부터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우리와 같은 해 이민 와 한동네에 살던 프레드락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휴가 이야기를 소상히 전해 주었다. 그 중 인상적인 것은 30년 전 헤어진 친구를 어렵게 찾은 일화였다. “내가 프라하에 머물 때, 나는 기억을 더듬어 1980년대 헤어진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친구는 오래전 이사를 해, 나는 그 건물 벽에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다행히 우리의 극적인 해후는, 내가 그 도시에 머무는 마지막 날 세입자의 친절로 이루어졌다. 그 친구와 함께한 저녁 식사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관계의 돈독함을 확인하고 유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술잔을 들어 ‘위하여!’를 외친다.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처음처럼’,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긴장이 이완된 사람들은 지지와 허용의 편안한 분위기에 젖어 자신의 기쁨과 고통을 주저 없이 드러낸다.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나누고 귀 기울이던 사람들은 이윽고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며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복잡해진 세상만큼이나 머릿속이 복잡해진 현대인들은 나름의 비교, 선별의 여과 과정을 거쳐 관계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때론 오랜 우정과 이웃 간의 친분도 생활방식의 단순함(minimal life)을 내세워 예고 없는 단절을 시도할 때도 있다.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1960년대부터 미국의 시각 예술과 음악을 중심으로 일어난 문화사조로 모든 기교를 지양하고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려 했다. 특히 문학의 미니멀리즘은 불필요한 언어를 제외해 최소한의 언어로 표현하고, 독자로부터 행간의 의미에 몰두하게 했다. 요즘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미니멀리즘(minimalism) 생활방식은 최소한의 소유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자기 일과 생활에 집중하고자 한다. 불필요한 소비와 일을 줄이고 경험을 소유의 개념보다 우위에 둔다. 이들은 “최소화된 삶(Minimal Life)의 완벽함이란 더는 버릴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는 기치 아래 불필요한 물건들을 정리해 버리기 시작한다. 때로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와 학벌, 사회적 지위가 그 사람의 실체라고 믿으며, 오랜 친구와 이웃마저 선별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다른 개성과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유기체처럼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헤아릴 여유와 신의 같은 것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세태에 대한 우려는, 자신의 논리만이 옳고, 스스로 특별하다는 틀 안에 갇혀, 다른 사람들에게 단절의 상실감을 안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연결된 프레드락의 우정에서 깊은 인간미를 느끼며, 피천득 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과거를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우리가 제한된 수명을 갖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반추하는데 있는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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