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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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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2-07 17:05

수필가 심현숙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한 해 한 해 나이가 더 들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가속이 붙어 달려만 간다. 올해도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한 해를 되돌아보는 시점에 서 있다. 작년에 비해 내게는 엄청난 변화가 왔다. 그 동안도 오뚜기처럼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살았지만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전 한 사건으로 인해 몸을 다치고 보니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매사에 희망 아닌 단념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지난여름 칠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었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자 남편 요양병원 바로 뒤에 렌트한 내 방은 찜질방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서향으로 창이 나 더 더웠다. 더위를 피할 요량으로 저녁이면 근처의 공원으로 종종 나갔는데 하루는 지인을 통하여 몇 번 안면이 있는 부부를 그곳에서 만났다. 그 남편 분은 연세도 있으신 데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했다. 워커에 앉아 계시던 그 분은 피곤한 모습으로 졸고 계셨다. 잠시 후 집으로 가기 위해 일어난 남편 분은 워커를 잡고 몇 발자국을 떼더니 갑자기 멈춰서 주저앉으려했다. 그 분 바로 뒤를 따라 걷던 아내는 남편 앞으로 가 “자지 마, 자지 마”를 연발하였고 나는 그 분의 허리를 순식간에 두 팔로 휘어잡았다. 점점 무너져 내리는 몸을 있는 힘을 다해 부축하면서 나도 함께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나의 작은 체구로는 지탱할 수가 없었다. “바닥에 앉혀야 되겠어요.” 쭈그려 앉은 체 그 분의 몸무게를 온 몸으로 받치고 있던 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다급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내는 “안 돼요, 안 돼요”라고 소리만 칠 뿐이었다. 만일 앉힌 후 일으킬 수 없다면 구급차를 부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그러던 중에 지나가던 인도 청년의 도움으로 그 분을 다시 워커에 앉혔다.

   그 후 내 몸은 걷지도 돌아눕지도 못할 정도로 완전히 망가졌다. 다리를 굽히고 있으면 펼 수가 없고, 펴고 있으면 굽힐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산고 와 같은 아픔을 겪어야했다. 지금 4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 침을 맞으며 지팡이에 의지하는 신세가 되었다. 엑스레이 결과 무릎관절에 손상이 와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한다. 스테로이드 주사로 버텨보려고 했으나 그 것도 내성이 생긴다하여 약으로 대치하다 보니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다 왼손 엄지손가락까지 이상이 와 생활하는데 여간 고통이 아니다. 요즈음 장애인들의 비통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날에 벌어졌던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 아내 분을 이해해보려 해도 이해가 안 된다. 나보다 훨씬 젊을 뿐 아니라 체구도 나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건장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큰 언니뻘 되는 왜소한 내게 자기 남편을 맡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얼떨결에 그 분을 부축했으나 나를 밀치고라도 자기 남편을 붙잡아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한 사람 살린 셈 치면 될 걸 왜 이리 속이 상하고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날마다 눈만 뜨면 한 생명의 수족이 되어 살아야하는 내가 손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 답답하고 슬프다. 14년간 남편을 간병하면서도 이런 큰 사고는 없었는데 기가 막힌다. 제 나이도 의식 못하고 남을 돕겠다고 나선 우매함이 부끄럽다. 오랜 시간을 환자와 살다보니 내 나이는 생각않고 행동이 늘 앞선다.

   얼마 전 담임목사님 설교 중에 노루웨이에 있는 ‘양의 교회’에 대하여 말씀이 있었다. 이 교회의 종탑 밑에는 양의 형상이 있다고 한다. 성전 건축 때 종탑을 만들기 위해 높이 올라갔던 인부가 부주의로 추락했던 사건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아래를 지내가던 양떼위로 떨어져 기적적으로 살았다. 인부가 일어난 그 자리에는 양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사람대신 죽은 양을 기념하기 위해 종탑 아래 양의 형상을 그려 넣었고 ‘양의 교회’라 명명했다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바로 그 남자분의 양이었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일 그 분의 방패막이가 되지 않았던들 그 분은 온전할 수 있었을까. 머리를 다쳤거나 고관절 손상을 입을 수도 있었고, 어쩜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이 일로 인해 남편을 요양병원에서 집으로 퇴원시키려는 계획을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남편이 집으로 오면 간호사나 간병인이 아무리 돕는다 해도 하루의 절반 이상은 가족이 돌봐야하는데 지금의 내 몸으로는 불가능하다. 일 년 이상을 정부 기관과 힘들게 조율하며 공들였던 일이었는데 억울하다. 다행히 남편도 포기를 했는지 아니면 혼자 사용하는 독방을 배정받아 지내기가 더 나은 건지 집에 대한 그리움이 예전 같지는 않다. 이제 남편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아야한다. 나 또한 멀쩡한 집을 두고 남편 가까이서 지내기 위해 두 평 남짓 되는 방 한 칸에서 살고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최선이라면 받아드려야지 어찌 하겠는가.
   난 요즈음 내가 믿는 신의 뜻을 알기 위해 많이 고심한다.
   “왜 그 남자 분의 희생양으로 저를 택하셨습니까?”
   “왜 저희 가족은 이리 살아야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얼마나 더 밑바닥으로 끌어내리시렵니까?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루는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하나님께 울면서 따졌다. 그때 섬광처럼 내 머리를 스치는 한마디 말씀이 있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한 줄 알라 (고린도후서 12:9)." 언제나 힘들 때 주시는 이 말씀, 나는 이 말씀이 떠오를 때마다 내 아버지께 섭섭해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또한 기뻐서 운다.
   하나님은 내 몸을 상하게 해서까지 남편이 집으로 퇴원하는 걸 막으신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설령 내 몸이 성하다 해도 인공호흡기까지 꽂은 사람을 가정에서 간호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어쨌든 밤에 잠이라도 편히 잘 수 있지 않은가. 남편이 요양병원에서 사는 것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면, 이 일을 결정하는데 계기가 된 그 사고까지도 감사하게 받아드려야 하지 않을까.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니 치열하게 나 자신과 싸웠던 한 해였다. 점점 약해져가는 내 체력과 싸워야했고, 포기를 모르는 내 의지와 싸워야했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아름답지만 석양을 바라보는 칠순이 넘은 여인의 투쟁은 애처롭다. 이제 모든 걸 내려놓고 순리대로 살아야할 때가 온 것 같다. 몸이 따라주지를 않으니 노력한다고 젊을 때와 같을 수 있겠는가. 모든 곳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여유를 갖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순응하며 산다면 황혼의 끝에 웃을 수 있겠지. 이런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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