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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2-07 17:03

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세상을 사신 분들의 삶이 결코 나만 못한
분이 없다는 생각이다.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서가 아니다. 그분들이 살아왔던 삶의 날들은
분명 오늘의 나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과 조건의 세상살이를 하셨다. 그런 속에서도 묵묵히
그 모든 어려움과 아픔을 감내하면서 자신의 몫을 아름답게 감당하셨던 것이다.  
요즘의 나나 오늘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그분들보다 어렵다고는 할 수 없겠고, 특히 그분들이
처해 있던 시대는 지금에 비교도 할 수 없이 열악한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대였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보다 좋은 세상을 바라면서 엄격하게 당신들 스스로를 절제하고
희생하셨다. 그분들의 어느 한 삶도 결코 오늘의 우리만 못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요즘 사람들은 저 잘났다는 표를 지나칠 만큼 서슴없이 해댄다. 향기도 지나치면
역겨움이 되지 않던가. 멋을 낸답시고 호화로운 옷에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녀도 그런
모습이 부럽고 아름답게 보이기보단 거스르고 거들먹대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명
적삼 내지 무명 두루마기에 흰 고무신을 신은, 어린 눈에도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던 앞 세대
어른들 모습은 지금에 생각해도 훨씬 더 아름답고 품위 있어 보이고 위엄 넘치게 느껴진다.
 언젠가 강원도 정선에 갔을 때다. 다들 냇가로 나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 나갔는데 그곳에서
수석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그저 돌일 뿐이었다. 다들 의미를 부여한
돌 한 두 개씩을 가져가는데도 나만 빈손이다가 문득 어린 날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께선 한 해에 한번쯤은 부러 냇가에 나가셔서 납작 동글 손바닥만한 돌멩이를 한 두

개씩 주워오셨다. 그걸 무얼 하시려느냐고 물으면 누름돌이라 했다. 누름돌, 나는 그때 그게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용도를 알게 되면서부터는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다가도 냇가에 들러 그런 돌을 주워다 드리면 할머니께선 매우 좋아하셨다.
그 어린 날이 생각나 뒤늦게 마음 급해져 누름돌로 쓸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어쩌면 그건
순전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겠지만 내 삶에 그런 누름돌이 필요하단 생각도 했을
것 같다.
 누름돌은 모나지 않게 반들반들 잘 깎인 돌이다. 그걸 정성 들여 씻어 김치 수북이
김칫독에 올려놓으면 그 무게로 내리누르며 숨을 죽여 김치 맛이 나게 해주는 돌이다.
그런가 하면 밭에서 돌아와 저녁을 지을 때 확에 담긴 보리쌀을 쓱쓱싹싹 갈아내는
확돌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확돌은 어두운 부엌에서도 금방 알아볼 만큼 빛이 났다. 밤낮
없는 할머니나 이모의 쓰임에 따라 더 닳고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해진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쩌다 나도 손에 쥐어보면 돌의 차가움이 아닌 왠지 모를 따스함이 감지되기도
했다.
 요즘에 내가 그런 누름돌 또는 확돌 하나쯤 필요하단 생각이 부쩍 든다. 뭔가 모를 것들에
그냥 마음이 들떠 있고 바람 부는 대로 휘둘리는 키 큰 풀잎처럼 좀처럼 내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렵다. 이런 때 그런 누름돌 하나 가져다 독 안의 김치 꾹 눌러주듯 내
마음도 눌러주고 싶다. 거칠어진 내 마음도 돌확에 넣고 확돌로 쉭쉭 갈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스쳐가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욕심내지 않아도 될 것에 주제넘은 욕심을
펴는 송곳같이 날카로워진 감정들도 지그시 눌러주고 갈아내 주었으면 싶다. 짜고 맵고
너무나 차가워 시리기까지 한 김장독 안에서 보아주는 이 없어도 자신을 희생하며 곰삭은
김치 맛을 만들어내는 누름돌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옛 어른들은 다 누름돌이거나 누름돌 하나씩 품고 사셨던 분들 같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자연스럽게 누름돌이 되었고,
또 상대를 자신의 누름돌로 인정도 해주었다. 내 뻗치는 기운도 억누르고, 남의 드센 기운도
아름답게 눌러주는 희생과 사랑의 마음들이 서로 나눔으로 이해로 살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어려운 삶의 현장, 차마 견디어낼 수 없던 시대의 질곡에서 아픔과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으리라.
 우리 집엔 내가 정선에서 가져온 누름돌이 단단히 몫을 하고 있다. 베란다의 항아리
안에서일 때도 있고, 오이지를 담글 때도 곧잘 사용된다. 요즘이야 보리쌀을 갈아 밥 짓는
일은 없어졌으니 확 돌이 될 일은 없겠지만 어쩌다 제 몫의 일이 없어 바닥에 놓여 있거나
항아리 뚜껑에 올라와 있으면 어린 날을 추억케 하면서 내 삶의 누름돌을 생각케 한다.
어쩌다 두 동강이 나버린 누름돌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시던 외할머니 모습도 생각난다.
단순히 못 쓰게 된 돌 하나가 아니었으리라. 웃자라는 욕심에도 성급한 마음에도,
서운함으로 파르르 떨리던 마음, 시집살이 고된 삶의 눈물도 누름돌 씻으며 삭이던 친구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 설운 마음 꾸욱 누르고 누르고 하셨던 그 마음이 담겨있었을
테니 깨진 그 돌을 보며 마음이 찢어지는 헤어짐의 슬픔을 느끼셨을 것이다.

 이젠 내 나이도 들만큼은 들었는데도 팔딱거리는 성미며 여기저기 불쑥불쑥 나서는
당돌함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꾹 눌러 놓을 수 있도록 누름돌 하나 잘 닦아
가슴에 품어야겠다. 어찌 나뿐이랴. 부부간에도 서로 누름돌이 되어주는 것도 좋겠고, 부모
자식간이나 친구지간에도 그렇게만 된다면 세상도 조금은 더 밝아지고 마음 편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김장을 처가에서 해 와서인지, 김치 냉장고 때문인지 지난겨울 내내 베란다
바닥에 누름돌이 하릴없이 놓여있다. 내일은 마침 집에 있게 되니 아내 몰래 저 두 개의 돌을
깨끗이 씻어 뚜껑 덮인 항아리 위에 올려놓아야겠다. 그걸 보며 왠지 모르게 들떠 있는 내
마음도 꾹 누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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