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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의 씨앗이 나무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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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1-19 17:23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황 서방, 빗소리를 배경음으로 한 Stjepan Hauser의 첼로 연주와 뜨거운 커피 한잔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고 있는 아침이네. 어느새 잎새를 다 떨군 나무들이 빈 몸으로 묵언 수행을 시작하는 계절, 어제는 볕이 좋아 동네 호숫가를 한 바퀴 걸어 보았네. 건강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음을 감사하며, 벤치마다 새겨진 죽은 이들을 기리는 문장을 곰곰이 음미해 보았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이곳 사람들이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우주 섭리를 바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 모든 사물은 생겨나 머물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소멸한다는 자연현상을. 값 없이 받는 햇살만으로도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을 화두로 삼은 하루였다네. 
 
 자네가 전해 준 소식 하나하나 다 반가운 소식뿐이니, 그동안 애써 뿌린 씨앗들이 열매를 맺는 중이겠지. 회사에서 큰 실적을 이뤄 상을 받게 됐다고 소상히 알려주던 자네가 고맙고 또 믿음직했네. 올해도 잘 마무리될 것 같다는 자네의 낙관적 예감도 무척 신선하게 들렸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마음은 안될 일도 되게 하는 힘이 있다네.
 지난여름 다녀간 후 사진 속 세 식구 모습을 볼 때면, 같이 보낸 날들이 서로 오버랩되어 끝없이 펼쳐지곤 한다네. 그 장면 중에는 장인 장모 앞에서도 지안 이와 재롱을 보이며 호탕하게 웃던 자네 모습이 자주 등장하지. 지안 이의 해맑은 얼굴로 부르던 노래 메들리는 “자식은 세 살 때 재롱으로 효도를 다 한다.”는 옛말을 인정하게도 했다네. 황서방, 나는 자네가 우리 딸을 보다 좋은 사람으로 이끄는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 항상 고마운 마음이네. 가족 관계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이해하며, 서로가 든든한 연대감을 갖는 일이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물질이 최우선의 가치인 세상에 살며, 가족 관계 마저 경제적 관계로 왜소화된다 할지라도.  
 자네가 네이버의 옛날 신문에 기고한 파일은 아버님과 함께 감동으로 잘 받아 보았네. 대한 의군 참모 중장 안중근 편에서, 안중근 장군이 남기신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의 말씀은 그분의 큰 뜻을 다시 새겨볼 기회가 되었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던져라.” 
당시 30세의 대한 의용군 사령관 자격으로 군국주의 일본의 핵심 인물인 이토를 사살한 용기는 우리의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네. 1909년 하얼빈 거사는 대한의 독립 주권과 동양 평화를 뺏은 일본을 전 세계에 알린 전략적 평화 운동이라고 알고 있네. 우리가 굴곡진 지나간 역사를 돌이켜 보는 일은, 미래를 새롭게 계획하며 더 나은 세상을 기다리는 ‘석과불식(碩果不食,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의 실천이겠지. 신영복 선생님은 그의 저서 <담론>에서 한 알의 씨앗은 새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숲이 되는 장구한 여정으로 열려있는 것이라고 하셨지. 또한 사람을 키우는 일을 석과불식의 교훈이라고 하셨다네.
 “사람을 키우는 일은 그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다른 가치의 하위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이 ‘끝'입니다. 사람을 키워 내 사회의 절망과 역경을 극복하는 것, 이것이 ‘석과불식'의 교훈입니다.”
 
  늦가을 감나무 가지 끝에 달린 주홍빛 까치밥을 바라보던 옛 어른들의 지혜를 가늠해 보네. 아무쪼록 자네의 정신적 영역이 머리와 가슴에만 머물지 않기를, 두툼한 두 발로 열린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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