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할로윈과 더부살이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11-02 16:35

김춘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우리는 1974년 첫 딸이 두 살 쯤 되어 캐나다 이민 바람을 타고 몬트리올로 훌적 떠나 왔다. 캐나다가 어떤 나라인지는 대충 알았지만 할로윈이라던가 하는 이 곳 풍속을 전연 알지 못했다. 어떤 교회에서 저렴한 가격에 유아 방에 아이를 맡겨도 된다기에 딸 아기를 잠시 맡긴 적이 있었다. 아이가 너무 집에만 있으니까 ‘엄마 심심해“ 하며 아기 식으로 불평을 간간히 해 오던 차라, 유아 방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놀다 오라고 보냈던 것이다. 아이가 3살이 채 되기 전이였다.

하루는 교회 유아 방에서 아이에게 코스튬을 입혀 오라는 통지를 보내 왔다. 갑자기 무슨 코스튬을 입히란 말인가? 의아 해 하면서 마침 한국에서 갖고 온 색동저고리 치마가 있어서 이거면 이 사람들이 예쁘다 하고 흥미 있게 한복을 봐 주리라 생각하고 색동 한복을 입히고 꽃 핀을 머리에 꽂아 예브게 단장을 하여 유아 방에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에서 아이 코스튬이 예뻤다는 이야기가 없어서 좀 시큰둥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 때가 할로윈 때라 할로윈 파티에 변장하는 코스튬을 입혀 보내라는 것이었는데 내가 그런 게 무언지 알 턱이 없었다. 아이가 어려서 기억도 못하길 다행 이였지만 엄마는 두고두고 창피스럽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아이가 자라면서는 현지 아이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하여 키웠다. 아이의 생일 파티도 학교 친구들을 불러 해 주고 추수 감사절(Thanksgiving)에는 반드시 터키를 구워 멕이고 할로윈에는 트릭 오아 트릿트(Trick or treat) 도 내 보내고... 이 곳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배려를 하여 아이가 학교에서 이질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며 키웠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던 나는 얼마 후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가 경주 최씨 집안의 3대 독자인지라,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기 짝이 없게도 꼭 한국 며느리를 보리라 생각하고 키웠다. 그래서 가끔 세뇌 교육을 한답시고 아들을 무릎에 앉혀 다독거리며 “우리 아들은 장가가면 반드시 한국여자하고 결혼해야 해!” 하곤 했다.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집중적으로 세 뇌 교육을 한답시고 한국음식을 해 먹였다. 입이 한국인이면 배우자도 한국인을 얻을 것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그렇게 어리석은 엄마였다. 아이가 성장하고 대학을 나오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 이미 아들은 내 품을 떠난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부모를 떠나 사는 아들은 제 맘대로 배우자를 혼자 정하더란 말이다. 눈이 파랗고 머리가 노랗고 키도 저보다 훌 쩍 큰 영국계 아가씨를 데리고 들어 왔다. 나는 내가 친 덫에 내가 걸려서 우리 아들은 캐나다 며느리와 살면서 입은 한국 입맛이라 지금도 며느리가 아닌 내가 때때로 한국 음식을 해 바친다. 음식으로 내 식대로 교육시킨 것은 완전 실패였다.

그러나 한 가지는 대충 성공 한 셈이다. 아들 녀석이 중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이렇게 또 교육했다. “너는 이 집안에 둘도 없는 아들이다. 누나는 여자니까 남의 집에 시집가면 부모와 못 살고 너는 아들이니까 엄마 아빠가 늙으면 아들이 함께 살면서 돌봐 주어야 해(care)! 한국어로는 ‘모신다’ 라고 하는거야. 그래서 한 집에 살아야 해!” 그러면 녀석은 펄쩍 뛰면서, “Oh no,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안살아! Maybe 옆에 아파트 얻어서 가까이 살아도 되지만 한 집에서는 안 살거야!” 그렇게 나는 아들에게 설득 교육을 하며 키웠다. 덕분에 아들은 제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난 후 혼자 몬트리올에 사는 엄마를 설득하여 자기 집에 모시고 와서 우리는 함께 산다.

자식만큼은 부모가 어떻게 못한다. 나는 운이 좋았던지 아니면 팔자가 과부 팔자였었기 때문인지 홀로 살게 되어 아들과 함께 살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할로윈이 가까이 오면 며느리는 바쁘다. 애들 할로윈 코스튬을 벌써부터 사놓고 애들보다 지가 더 들 떠 있다. 며느리가 처음 아들과 교제 할 때는 김치니 뭐니 다 먹더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부터는 김치도 된장도 안 먹는다. 그러나 물 흐르는 대로 살아야 집안이 편하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으면 따로 해 먹으면 되고 오히려 아이들 생활에 내가 흡수되어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어느 듯 며느리 닮아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할로윈 호박도 사와라 하고 할로윈 쿠키도 만들어 주고 아이들 입맛에 맞는 것들을 해 바친다.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아들 집 더부살이를 충실하게 하며 살고 있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굼뜬 어둠을 밀고 알버타 대 평원에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빛甲辰年 큰 희망으로 새 아침을 달군다매듭 달 지는 해에 아쉬움 실려 보낸오늘은 엄동설한 눈 속에 서기로운섬광이 꽃으로 피어 희망을 섞고 있다세상의 기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자연에 봉헌하는 서정과 순수만이고단한 삶의 이력에 발자취로 남는 것주님, 평소 소원한 이웃과 가족들에게옹졸했던 마음 모아 용서를 청하오니새해엔 달 뜬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모진 설한의...
이상목
God, where are you? 2024.01.02 (화)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4시 30분쯤. 출근길에 bus shelter를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meless guy인 것 같았다. 살펴보니 흐트러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누워있는데 그는 얇은 천으로 된 검정 상의와 파란색 하의 그리고 흰색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의 허리와 발목은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상체를 비틀다가...
愚步 김토마스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평생 현역 2024.01.02 (화)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내 곁을 떠난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라앉는 기분이지만 천운을 어찌하겠는가! 친하게 연락을 주고받던 대학 선배님이 최근에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 달여 전에도 카톡 통신을 주고받았는데, 그때 코비드 감염으로 몸이 몹시 아프다고 했지만 이렇게 급히 떠나실 줄은 생각 못 했다. 사인은 코비드 보다 갑작스러운 췌장암 진단에 의한 충격에 혈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하니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김진양
낙엽이 되어 2024.01.02 (화)
낙엽이 되어길을 떠나기로 했다내려앉은 하늘머리에 무겁게 이고혼자 걸어가는 길세상은 고요한데길 위에 놓인 시간은 늘천둥 번개가 몰아친다떠나기로 작정할 때어렴풋이 그려진 그림처럼뭇 발길에 밟히고이리저리 걷어 차이고자꾸 끌려 다닌다낙엽이 되어길을 떠난다는 것은한 몸 오롯이 던지고 던져형체도 없고 마음도 없는나를 마저 버리는 일낙엽이 되어길을 떠나기로 했다
강은소
달걀 2023.12.27 (수)
달걀에는 생명이 있었다어미 닭이 품으면 어김없이삐악삐악하며 뛰노는노란 병아리가 나왔다 닭은 이제 알을 품을 자유도 권리도 없다그저 달걀을 낳아야 할 뿐이고모이를 준 대가로 주인은달걀을 모조리 빼앗는다 품어도 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는 알을닭은 하루에 두 번 온 힘을 쏟아 빚어낸다닭은 자기가 낳은 그 많은 알이어디서 무엇이 되는지 모른다 새 둥지까지 기어올라 새알을 훔치는 뱀사뿐사뿐 다가가 새를 덮치는 고양이도...
송무석
10월 단상(斷想) 2023.12.27 (수)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특히 햇살 좋은 날 더없이 맑은 가을 하늘 아래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인가 이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중의 하나가 40여 년 전 내가 한국을 떠나올 무렵 한창 인기몰이하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다. 매년 10월이면 모든 방송 매체를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라서 한국에서는 ‘잊혀진 계절’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곡이다. 이용은, 이 노래로 MBC 10대 가수...
권순욱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