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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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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10-16 17:12

최원현 / 캐나다 한국문협
아이들과 함께 하다 보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아주 하찮은, 그리고 아주 작은 것들이지만
그것들에서 발견하는 소중한 진리가 빛 바랜 내 삶의 화폭에 신선한 충격의 색깔로 살아나곤
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 '그까짓 것쯤'으로 여겨 버릴 수 있는 사소한 것들, 그러나
그것들로 인해 참으로 소중한 것들을 얻곤 한다.
오늘도 밖에 나갔던 작은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자꾸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제 누나더러 발을 씻지 않았을 것이라는 둥 장난을 걸고 티걱대면서 연신 코를 벌름거리고는
분명히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결국, 일찍부터 아들 녀석 코의 성능을 인정하고
있었던 아이 엄마가 베란다로 나가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원인은 감자 상자에 있었다. 며칠 전, 가락시장에서 감자 한 상자를 사 왔었는데 날씨 탓인지
그만 맨 밑에 깔린 감자 하나가 썩기 시작했던가 보다. 하나가 썩기 시작하자 연이어 맞닿아
있는 감자들이 썩어 들기 직전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냄새를 맡지 못했고, 아니 맡았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심각하게 생각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나 본데 아이는 이상한 냄새가 나자
이내 알아 차렸고, 자꾸만 이것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하마터면 감자 모두를 썩힐 뻔했다.
나는 이 작은 사건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순수함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그래서 원래의 제 기능을 상실한 우리의 코는 썩은 냄새조차 분간 못하는가 하면 그런
냄새를 맡는다 해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버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주위는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썩음의 집합장이 되어 버렸고, 우리는 그것에도 만성이 되어 그걸
느끼지도 못하게 되어 버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참으로 쉽고 다정하게 깨우침을 주신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울리는 천둥소리와 같은 엄청나게 큰 소리로만
생각하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이처럼 아주 작은 주위의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고, 친구나 부모님, 심지어 집안에 심어 놓은 작은 꽃 한 송이를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오늘같이 썩어 가는 감자 하나를 통해서도 우리의 가슴 속 깊이까지
깨우침을 말씀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곧잘 우리는 그런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가 많고, 또 그것을 하찮게 여겨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많다. 오래 전 여린 박 덩굴을 통해 요나에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삶 중에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시는데도
우리는 그걸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썩어 가는 감자를 들고 살펴보았다. 아! 그런데 썩고 아직 남아 있는 부분의 눈에서
작은 싹이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순간, 이걸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관심 때문에 하마터면 전혀 제 구실을 못하고 그냥 버려질 뻔했던 이 감자를 꼭 살려내야
할 것만 같았다.
죽은 감자 살려내기! 꼭 무슨 제목 같지만 말 못하는 저 감자의 절망, 아픔, 슬픔이 내게로
전해져 왔고, 그걸 그냥 모른 체하면 내 가슴속에 감자 크기보다 더 큰 구멍이 생길 것만
같았다. 생명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때 비로소 생명다울 수 있는 것이고, 또 생명은 계속해서
살아 있게 해 줘야만 생명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릇에 흙을 채우고 거기에 감자를 심었다. 내가 심어 놓은 이 썩은 감자의 싹이
자라고, 줄기가 자라 어느 날 하얀색 감자 꽃이 예쁘게 피어 오르게 되면 나는 다시 한 번
썩은 감자에서 생명을 피워 내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오묘하신 창조의 뜻을 또 한 번
감격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엔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가 풍겨날 것 같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보면 볼수록 정갈하고
수수하게 아름다운 하얀색 감자 꽃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야말로 하나님의 향기가 아닐까?
거기에 나의 정성과 소망이 합해져서 피운 향기이니 나의 향기도 스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작은 꽃 한 송이로도 우리와 같이 하시고, 그런 꽃 향기로도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생각하며, 나는 문득 어떤 모습, 어떤 향기로 내 안에 하나님을 모시고 이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모든 꽃에는 저마다의 향기가 있듯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향기, 저마다의 빛깔이
있기 마련이리라. 자기도 모르게 썩은 감자처럼 되어 버리는 사람은 그런 썩은 냄새, 그런

썩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나 그런 속에서도 그런 절망과 아픔을 가사로 승화시켜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을 때는 더욱 귀하고 고운 향기, 가장 아름다운 꽃의 생명을 지니게 될
것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 너무 좋은 향기!
나는 어느 날엔가 분명 활짝 피어 오를 하얀 감자 꽃을 소망한다. 그 날까지 그의 생명을
붙들고 함께 함으로써 단순한 풋내만이 아닌 참으로 아름다운 향기를 피워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삶도 향기를 발하는 아름다운 꽃의 삶이 될 것만 같다. 작은 꽃
하나를 통해서 이뤄지는 향기 자욱한 축복,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내가 너무 큰 기대를 지운 것인지 감자의 가녀린 노오란 싹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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