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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im t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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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9-28 16:38

김근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캐나다 3000 전세 비행기는 단 한자리도 안 남기고 만원인 채 밴쿠버에서 출발하여 라스베이거스로 향하기 시작한다. 추운 날씨임에도 빨강 미니스커트로 성장하고 오랜만에 꺼내입은 검정 비로드 양복을 입은 멋쟁이 할아버지는 금연인 기내 사정을 아쉬워하며 빈 파이프를 문 채 소풍 가는 학생들처럼 즐겁기만 하다.

무려 9시간이나 걸리는 런던행에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앉아가는 서양 할아버지 할머니들인데 유독 라스베이거스행에는 언제나 기내가 좀 요란하고 즐겁다. 빈 호주머니로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같이 조용하지마는…. 2시간여의 끝에 마침내 네바다주의 상공에 이르니 화롯불을 뒤집어 놓은 듯한 불야성에 모두 탄성을 지른다. 캐나다에서 출발하는 베가스 행 관광 여객기는 십중팔구 밤 10시경 도착한다. Luxor Hotel의 거의 실물 크기만큼 지은 피라미드의 삼각 모서리 정상에서는 하늘로 한줄기 강렬한 광선을 발사하면서 베가스의 도착을 알린다. 부산한 가운데 슬쩍 들으니 근방의 한 아주머니가 이 광선이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나 ?! 주위의 사람들도 실없는 소리인데 믿는듯하다.

휘황찬란한 불바다를 헤집고 착륙하자 모두 원더풀하면서 손뼉을 친다. 전 세계를 누볐어도 착륙 시 무사함에 안도의 손뼉을 치는 민족은 이스라엘 항공인 EL-AL 외 처음 본다. 그러나 이번의 박수는 젯팟의 셀레임과 전혀 다른 색다른 세상으로의 진입을 기뻐하는 박수일 테다.

늦은 시간에 시작하는 샹송을 들으러 Paris Hotel에 들렀더니 출연료 관계인지 캐나다 Quebec 에서 온 가수들이라 약간 실망을 하게 했다. 그러나 Tropicana Hotel에 가면 프랑스에서 직 수입된 Folies Bergere 쑈를 공연하기 때문에 Edith Piaf, Yves Montand, Sylvie Vartan과 버금가는 가수들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나 위트와 유머 그 쎈스에 아내와 마주 보고 건너가는 육교에서 웃었다. 라스베이거스는 많은 엘비스 프레슬리가 여전히 살아있다. 큰 액수의 젝 팟이 터지면 엘비스의 노래가 터져 나온다. 공연장에 들어가니 입추의 여지 없이 들어차고 가짜 엘비스가 Love Him Tender를 부르며 등장하니 진짜와 다름없이 열광하고 순식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변한다. 진짜가 했듯이 목의 스카프를 관객을 향해 날리기도 한다. 나도 그 엘비스 때문에 라스베이거스를 좋아한다. 엘비스의 매력과 스타성이 영원히 생생하게 유지되고 살아있을 곳이다. 동시대에 나타난 비틀스와 엘비스를 흠모해서 장발을 따라 하고 다니다가 명동에서 몇 번이나 머리를 잘렸든가.

리베라 호텔에서 노래하는 엘비스는 살도 많이 찌고 땀도 많이 흘려서 엘비스의 마지막 공연 모습을 연상시킨다. 공연이 끝나고 가까이에서 보니 검정 구두지만 퇴색돼서 코빼기 색깔이 허옇다. 순간 화려한 네온 아래 남의 흉내로 온 힘을 다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모방 가수의 고독과 숨겨진 애환을 엿본듯해서 가슴이 아프다. 검정 구두약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었다.
 
젊은 시절 엘비스와 같이 열광하고 사랑하며 정열적으로 살았던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이제는 노부부가 돼서 수많은 그의 주옥같은 노래를 따라부르고 잠시나마 세월을 되돌려보고 열광하면서 그리고 일찍 사라져버린 진짜 엘비스를 아쉽고 그리워하면서 공연이 끝나자 서로 위로하듯이 팔짱을 끼고 촘촘히 사라져가던 그 Love Him Tender는 부드럽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그 여운에서 빨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맨 나중까지 앉아있다가 나온 사람은 우리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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