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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녘의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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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9-10 10:02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스마트 폰이 부르르 떤다. 딸애의 호출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니 아기를 잠깐 맡아 달라
한다. '기본임무 수행을 제한 받고 명령에 의해 지정된 지역으로 즉각 출동 행하는
'비상사태, 이쯤 되면 내겐 '진돗개 하나'다. 읽던 책을 던져두고 부리나케 일어선다.
 생후 6개월, 쌀 한말 무게도 안 되는 아기는 진작부터 힘이 천하장사다. 삼십 년 가까이 한
동네 붙박이로 살던 나를 제 집 옆으로 끌어다 붙일 만큼 태어나기 전부터 괴력을 과시했다.
임신 후반, 예후가 좋지 않아 절대안정을 요하는 산모 때문에 왔다 갔다 하다가 이사까지
해버렸다. 사시장철 싸매 다니던 제 어미 젖가슴을 손 하나 까딱 않고 풀어헤치더니
멀쩡했던 내 팔목 인대마저 눈 한번 흘기지 않고 늘어뜨려 놓아 한의원 신세를 지게 했다.
한때는 분명 여성전용이었을, 늙도 젊도 않은 사내 하나를 얼렁뚱땅 유아용으로 전락
시켜놓고 시시때때 헤벌쭉 웃게 만드는 녀석도 이 연약한 네발짐승이다.
 
 이제 한창 뒤집기에 재미를 붙인 녀석은 한시도 가만히 누워있지 않는다. 꾀부리지 않고
연습에 전념하는 운동선수처럼 내려놓자마자 고개를 외로 틀고 뒤집기 한판을 단숨에
시도한다. 기지도 못하면서 날기부터 하려는지 팔다리를 위로 치켜 올리고 끙끙거리는
모습이 젖은 날개 털어 말리는 햇잠자리 같기도 하고 이륙을 꿈꾸는 비행물체 같기도 하다.

부릉부릉, 부르릉. 애써 용을 쓰며 기어를 넣어 봐도 바닥에 붙은 배가 떨어지지 않는지
머리를 짓찧고 칭얼거린다. 아기는 울고 나는 웃는다.
 
 얼핏 보기엔 노는 일 같아 보여도 아기 보는 일만큼 힘든 노역도 없다. 해맑은 동심이니
천사 같다느니 하는 말은 과장된 오해이고 상투적 편견일 뿐, 아기들은 지독한
이기주의자다. 저에게만 집중하고 저만 바라봐 달라고 한다.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는 일껏
봐준 공은 고사하고 죄인이라도 된 듯 쩔쩔맬 일도 생긴다.
 아기가 장착한 최강의 무기는 무능력이다. 침묵이 때로 웅변보다 세듯, 무저항이 최고의
저항일 수 있듯, 철저하게 의존적일 밖에 없는 아기는 타고난 무능력으로 온갖 권능을
제압한다. 공격은커녕 방어 능력 하나 갖추지 못한 벌거숭이아기가 사지를 버둥거리며
울어재낄 때, 해맑은 웃음 사이로 유리알 모음들을 옹알거릴 때, 어떤 간 큰 냉혈한이 모든
척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무능력의 초능력, 무위이무불위無爲而 無不爲다.
 
 아기를 안고 가만가만 어른다.  잠투정을 하듯 칭얼대던 아기가 거실을 몇 바퀴 맴도는
사이 제풀에 지쳤는지 그예 눈을 감는다. 바닥에 눕히려 내려놓으니 화들짝 놀란 팔이
허공을 휘젓는다. 꼬물거리는 손안에 내 손가락을 가만히 밀어 넣고 잠든 아기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하얗고 따스하고 여릿여릿한 손가락들과 투박한 내 손가락의 접지接指.
뭉클하다. 아니 짜릿하다. 내 안에 축적된 시간의 입자들이 미세한 전하電荷로 활성화되어
아이의 몸 속으로 흘러 드는 느낌이다. 알 것 같다. 시간을 왜 흐른다고 하는지, 시간이 흘러
어디로 가는지.
 아기는 우유로 크는 게 아니다. 하루 대여섯 번 빨아 삼키는 허여멀건 소젖 몇 병이,
여물이나 배합사료를 되새김해 걸러낸 밍밍하고 슴슴한 송아지용 먹거리가 인간의 얼굴에
햇살 같은 웃음을 피워내고 태양을 향해 꼿꼿하게 마주서게 할 리 없다. 출하된 지 오랜
생명캡슐 안, 미토콘드리아인지 원형질 어디에 용해된 채 스며있는 장구한 시간의
침전물들이 안고 업고 재우고 다독이는 몸과 몸의 잇닿음을 통해 새 캡슐 안으로 흘러 드는
걸 거다. 눈에서 눈으로,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이되는 열정과 욕망의 쿼크입자들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사람의 꼴을 갖추게 하는 거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타고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이.

 싹트고 자라 꽃피우고 열매 맺기, 사는 일이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가지에 달린 열매가
나무에게는 최종소출이지만 땅에 떨어지면 그 또한 씨앗이 된다는 사실을 오불관언
간과하며 살았다. 씨앗 속에 열매가 있고 열매 안에 씨앗이 있다. 씨앗과 열매의 몸 바꿈
속에 시간이 흐르고 지구가 돌아간다. 살아 숨 쉬는 존재들 사이를 관통하는 이 내밀한
시간의 낙차落差, 마법이다. 신의 한 수다.
 종이 책이 생겨나기 전부터 인간들은 태양과 달의 운행을 읽고 별자리와 바람 냄새와
계절의 변화를 읽었다. 생각에 깊이와 폭을 더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방편으로 책
읽기는 여전히, 영원히 유효하다. 약해진 시력과 체력 때문에 책상 앞에 자주 앉지는
못하지만 크게 마음 쓰진 않으려 한다. 안으로의 깊이와 밖으로의 소통을 모색하는
인식이 활자들의 숲에만 있을 리 없다. 자연과 우주의 순환이치를 존재 자체로 각성시키는,
아기는 무자서無字書다. 숨 쉬는 경전經典이다. 돋보기 없이 읽히는 황혼의 그림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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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이 순식간에 흰 꽃망울을 터뜨린 어느 아침이었습니다. 전날 밤 제법 큰 줄기의 빗물에도 먼지 땟국이 깨끗이 지워지지 않은 창가에 누워 잠꾸러기 필립이 늦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나팔꽃의 어서 일어나라는 속삭임이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실려 왔습니다. 초여름 햇살 아래서 잠이 깬 필립이 눈을 비비며 자연 선생님인 아빠를 찾았습니다. “아빠 선생님! 오늘 유칼립투스 위 코알라 보러 가자고 했지요?”  비온뒤 죽순처럼 키가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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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은 아름답다세상의 모든 꽃들은 아름답다큰 놈, 작은 놈, 쬐그만 놈, 아아주 쬐그만 놈노랑 빨강 하양 보라 분홍생긴 모양이나 빛깔 모두 달라도저마다의 향기를 지닌 꽃그들은빛나는 지상의 보석호박꽃이면 어떻고 장미꽃이면 어떠리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아카시아 냉이 꽃 꽃 마리 별 꽃씀바귀 꽃 ...세상의 모든 꽃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걸예전엔 미처 몰랐다.  참으로 몰랐었다오늘도 교실 문을 열면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진지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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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행복은 늘 함께하는 연결고리이다. 하늘은 이 땅에 아름다운 계절을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거기에 걸맞은 옷을 갈아입히신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 때문에 행복에 겨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듣는다. 이것들은 모두 그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이다.올해 봄은 지구온난화 현상으로 예년보다 빨리 찾아왔다. 봄은 계절 중에 가장 역동적인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래서 시인은 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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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게 한 죄罪 2019.07.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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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瑛강애나
소설이건 동화이건, 심지어 때로는짧은 시의 경우까지도 작가들은 보통 자기를 숨긴 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narrator)를 작품 전면에 등장시킨다. 이 점은 참으로 문학의묘미가 아닐까 싶다. 삶을 꼭 자신의 육성으로만 이야기하여야 한다면 때로 얼마나 부담스럽고 때로 얼마나부끄러운 일이 많을까? 그러나 전지전능한 神과도 같이 작가는 한 인물을 가공하여(혹은 창조하여) 그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꼬집고 타이르고 때로는목놓아 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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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2019.07.02 (화)
털석 누운 돼지새끼 열두마리가 부리나케 달려온다내가 먼저야 비켜 내가 먼저야...서로 아우성 친다돼지 우리가 시끌벅쩍 새끼들이 '왜 이래!' 하며 서로 앞다툰다어미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한마리는 자리를 빼앗겨요기도 한 번 끼어보고조기도 한 번 비벼보고돼지 아기가젖꼭지에 조롱조롱가지처럼 매달린다한쪽에 젖물고 자는 아기돼지도 있다꿈나라 여행인지 밀쳐도 훔쩍도 안한다 평화로운 12마리 아기돼지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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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음악 2019.07.02 (화)
싱그러웠던 봄이 지나면 온통 꽃을 구경하기 어려우리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요즘이꽃을 구경하고 鑑賞감상하기가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닐까 생각한다. 막연히 요즘이라고 이야기하면 계절에 대한 感覺감각이 둔한 분들은 잘 모를 것 같아분명하게 밝히면 바로 6월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만히 화단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참으로 풍요하기 말할 수 없는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꿀벌이 잉잉거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느적이며 날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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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내 주었고세상은빛 속에 한 줄기 어둠을 만들었다어둠 속의 빛은수없이 많은 건배에 취해 있고세상 속의 어둠은찢긴 상처를 숨기고 있다희고 검은무늬를 짜면서신의 베틀이냉정하게 채워지는 동안얼룩진 술잔을 부여잡고휘청대는 인간에겐목소리가곡조가눈물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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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지팡이 2019.06.25 (화)
벼르고 벼르던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떠나던 6월 2일 전 날.아이들은 늙은 엄마가 먼 길을 나서는 게 영 불안들 한 모양이었다. 출발 전 날 며느리는 여행 동안 꼭 쓰라고 지팡이를 사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난 아무 말 못하고 아이들에게 순종해야 했다. 순례를 앞 둔 5월 1일 아침 산책길에서 발을 헛디뎌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얼굴을 긁어 잎술도 터지고 뺨도 긁혀 꼴사나운 얼굴로 순례를 간다니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내가 봐도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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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장엄 미사 2019.06.25 (화)
잘난 자도 못난 자도숲에서는 아무 자랑 할게 없다키 큰자는 큰데로 작은 자는 작은 데로시샘 다툼 할게 없다.예쁜 꽃도 덜한 꽃도 오직 그 향기로만 진가를 가름 할 뿐 ------ ,숲 길로 난 오솔 길은 위로 또 위로 하늘 향해 어디로  사라졌는지 수사(修士)도 종적도 보이질 않고나무도 숲도 저 허잡스런 엉겅퀴들 까지도두 손 치켜들고 드 높이 하늘 우럴어오직 영원을 향한 목마름의경건의 속죄제로 진종일 마다 않는 거룩한 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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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며 2019.06.25 (화)
아차 시간이 늦었다.강의 시간에 맞추려면 많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지하철도 두 번을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오늘따라 왜 이리도계단이 많은 지 모르겠다. 하기야 어찌 오늘 갑자기 계단이 많아졌겠는가 만 마음이 급하다보니 예전에 전혀문제가 되지도 않았던 것까지 거슬리고 부담이 됨이리라. 천천히 오르면 전혀 힘들지않았던 계단들조차 바삐발을 옮기려다 보니 몇 개 오르자 이내 숨이 턱에 닿는다.이 날까지 내 삶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계단...
최원현
풀피리 2019.06.25 (화)
봄이 오며는아버지 불던 보리피리 생각이 나요여름이 오며는어머니 불던 생각이 풀피리 생각이 나요마당 가 졸졸졸 흐르던도랑 가에 앉아맑은 소리에 귀 씻던호드기 생각이 나서텅 빈 고향에 홀로 앉아아카시아 이파리 부노라면산새들 덩달아 지저귑니다
김영희
미심이 2019.06.18 (화)
천당에서 하나 모자라는 곳,구백 구십 구당이라는 밴쿠버. 여름이면 브로드웨이 남쪽, 캠비 거리에선 먼 산 바라기가 참 좋았다. 끝 모를, 파란 하늘과 환한 햇살, 하얀 구름 몇 점에 가벼이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 좋았다. 이런 여름, 가게 문을 열고 나가면 다운타운 너머 웨스트 밴쿠버와 노스 밴쿠버를 병풍처럼 두른, 사이프러스 산(Mt. Cypress)과 그라우스 산(Mt.Gruose.)산, 시모어 산(Mt. Seymour)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머리에 시리도록 하얀 눈(雪)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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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2019.06.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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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생명의 빛이 온 세상을 따스하게 비추는 초여름이다. 풀과 나무는 그 어느 때보다 푸르게물들고, 꽃들은 알록달록 사방으로 퍼져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고 있다. 눈을 들어 보는 모든것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인 것처럼 힘찬 기운을 뿜어낸다. 마치 슬픔을 알지 못하는어린아이와 같이 그렇게 말간 얼굴로 계절은 다가왔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 죽음이란 말이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날에 고모는 죽음을 맞았다. 하나뿐인 아빠의 동생이면서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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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별 줄리아 헤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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