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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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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9-06 08:38

심정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요사이 눈과 귀가 나 몰래 어두워만 간다. 늙어감의 증상이다. 그래도 내 나이 또래 평균 청력은 남아 있단다. 전문의의 말씀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불편하다. 회의할 때, 공개 강연을 들을 때, 여럿이 모여 두루 담소할 때 더욱 그렇다. 간혹 특별한 비유나 재미나는 농담 이야기 토막이 내 귀에 미처 와 담기지 못하고 지나칠라치면 아주 낭패스럽다. 모두 재미있어 웃는데 나만 혼자 조용하다. 웃음 포인트(Punch Line)를 놓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육감을 총동원해서 약한 청각을 도우려 애쓴다. 귀 뒤에 손바닥을 주걱처럼 펴서 지나가는 음향을 한데 모아 귀 안으로 잡아 넣는다. 그리고 정신 집중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 이렇게라도 내게 남은 소통의 묘를 찾아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한편으로는 주변으로부터 소외될까 걱정도 된다. 동문서답의 빈도가 자주일수록 더 걱정이 된다. 하지만 그 흔한 보청기 없이 한번 견뎌 보려는 고집을 부려 본다. 젊은 척하고 싶은가 보다.

다산(茶山)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귀한 가르침이 있다. 눈이 침침하면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필요하고 큰 것만 보란다. 귀가 잘 안 들리니 작은 말은 듣지 말고, 꼭 필요한 큰 말만 들으란다. 늙으면 걸음걸이도 느려지니 매사에 조심하고 혼자 멀리 가지 말란다. 정신이 흐려지고 깜박하면,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고 좋고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하란다. 그렇지! 정말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하다가도 좀 걱정이 된다. 가고픈 먼 곳 여행 계획은 어쩌란 말인가? 계획된 여정을 대폭 수정해야겠다.  그래도 포기는 하고 싶지 않다. 꼭 가 보아야 겠다. 나의 성지순례의 길이 아직 미완성이다. 십자가 형틀 메고 오르시던 가파른 골고다 좁은 길,  예수님의 발자국이 혹시나 내 것 될까 해서 예루살렘도 가 보았다. 잔해물로 남아 있는 일곱 교회 돌기둥 사이 어딘가에 있을 바울 사도의 발자국을 나도 밟아 볼까 싶어 마케도니아 문턱까지 가 보았다. 이제 남은 곳은 출애굽의 광야다.  뜨거운 모래밭 위에 아직도 남아 있을 것만 같은 모세의 발자국을  한번 밟아 보고 싶다.  하나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동쪽으로 산을 타고  험난한 텐산산맥을 넘어 정착했다는 욕단(Joktan)의 후예들의 터전,  바이칼 호수 파란 물에 온몸을 담구어 보고 싶다. 그것도 대륙 횡단 기차에 몸을 싣고 --- . 정말 멀고 긴 장정이 될 게다. 늙은이의 엉뚱한 욕심으로 끝나지 않길 기도한다.
 
늙음은 현재진행형이다. 아직 살아 보지 못한 깨끗한 새 날이 아침 눈 뜨기도 전에  벌써 내 앞에서 웃음 띠고 기다린다. 헌 날은 이미 어제로 흔적 없이 가 버렸다. 새 날은 새로 받은 생명이다. 오늘도 살아 있으니 기적이다. 새 날은 도전이요 축제다. 야호! 소리쳐 환호도 해 본다. 그러자 산울림이 되어 내 영혼을 파고 든다. 분명 하늘이 주는 축복이다. 지구가 자전하여 생겨난 시공의 분침이 보여 주는 틈새가 아니다. 나만을 위해 태초부터 마련된 천수의 날들이다. 이 천수의 날들이 모두 소진되는 날 나의 늙음도 멈춘다. 이제 나를 위해 숨겨둔 그 천수의 텔로미어(Telemere) 의 마디 수가 얼마나 더 남아 있을까? 궁금하다. 소상히 알고 계실 그분께 여쭈어 보고 싶지만 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그건 단지 그분의 소관이니까. 

 새로 주어지는 그 날 수만을 계수(計數)할 뿐이다. 이 계수하는 마음만 달라고 기도하던 모세에게서 나는 늙음의 지혜를 배운다 (시편 90:12). 그래도 정 힘겹고 외로울 땐 잠깐 멈추어 하늘을 쳐다 보자. 내 본향(本鄕), 저 높은 곳에 소박하나 아담한 내 집 한 채 정말 보이나 확인해 보자. 그리고 소망과 감사가 담긴 찬양의 향을 피워 올려 드리자. 이것이 늙으며 터득한 나의 “늙음의 미학(美學)” 이다. 이렇게 늙으면 비켜 가기 어려운 생로병사의 아픔도 훨씬 작아 보인다. 견딜 만하다. 그리고 평안해진다. “결국 늙는 것 별 것 아니더라.” 하루에도 수없이 나 홀로 되뇌이고 또 되뇌이는 말이 됐다. 
 
나는  정축(丁丑) 년 2월생 소띠다. 일하지 않고는 얻는 게 한 푼도 없단다. 노력 없이는 성공을 기대도 하지 말란다. 소띠들의 좌우명이다. 소처럼 참을성 있게 노력하면 늦게라도 꼭 성사시킨다는 듬직한 믿음의 소유자들이다. 내 어렸을 때 기억이다. 할머니께서 우리 5남매 손자 손녀들을 한데 모아 놓고 재미 삼아 사주(四柱) 풀이를 해 주신 적이 있다. 내 차례가 될라치면, 할머니는 한숨부터 내 쉬신다. “아이고, 우리 세째 참 신역이 고되겠구나.” 하신다. 소띠에 2월생이니 그렇단다. 이른 봄 농사철 논 갈이 하는 소가 오죽 신역이 고되겠냐며.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난날들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농사철 황소처럼 신역이 고되게 살아왔던 것 같다. 할머니 사주 풀이가 적중한 것 같다.

나이 미수(米壽)에 나는 은퇴를 했다. 반세기를 대학교수일만 하다 이제야 모두 내려 놓고 집에서 쉰다. 그날 사무사항을 다 파악할 필요도 없는 하루 하루의 삶이다. 신역이 마냥 편하기만 하다. 그런데 이건 아니다 싶다. 이제야 깨달음이 온다. 신역 고된  농우가 훨씬 부럽다. 멍에 메고 쟁기 끄는 고된 농우의 삶이 아름답게만  생각된다. 그때가 그리워지니  놀랍다. 이것을 자궁회귀 현상이라 하던가? 어쨌든 은퇴는 내 몸에 맞는 옷이 아니구나 싶다. 다시 멍에 메고 쟁기 끌고 밭 갈러 나가련다. 일하고 싶다. 천수의 텔로미어의 마지막 마디가 소진되는 그 날까지 일하며 늙고 싶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 모세는 120년 천수를 다하도록 출애굽을 했다. 내 사전에서 “은퇴” 라는 단어를 지워 내리라. 은퇴를 영어로 Re-Tire 라 하지 않는가? 신발만 갈아 신으면 되겠다.

“우리 세째, 너는  2월 소띠지?” 할머니의 말씀이 영음 되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가슴이 뛴다. 문득 할머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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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이 쌓여만 가던 낙엽이 차가운 바람에 흩어지며 천덕꾸러기마냥 길가에 나뒹굴어대던지난 늦가을, 나는 열 하루의 일정으로 중동지역을 다녀왔다.수학여행이나 졸업여행과 같은 학연의 연결고리가아닌 개인적으로 소속된 타이틀로 백 여명이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단체해외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도 가족도 아닌 친분이 그다지 두텁지 않은 남과 한 방을 사용해야 하는 부담감은 여행 전부터 스트레스로다가왔지만, 서로에 대한...
섬별 줄리아 헤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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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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