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단골 이발사

이현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8-27 17:04

이현재 / 캐나다 한국문협
이민 와서 골치 거리 중의 하나가 머리를 깎는 일이었다. 주변에 이발소가 거의 없었고 몇
개 있던 미용실은 익숙지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미용실을 간 적이 없다. 이민 와서
처음 머리를 깎은 곳은 동네 타운 홈의 거실이었다. 거실 한쪽에 커튼을 치고 달랑 의자
하나와 거울 하나를 놓고 한국에서 미용 경력이 있는 아줌마가 알음알음 찾아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머리를 깎아 주곤 하던 곳이었다. 몇 년이 지나 이곳 저곳 한인이 운영
하는 미용실이 늘어 나서 선택의 폭이 넓어 졌지만 혼자 미용실을 찾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젊은 친구들은 이 말을 듣고 웃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중년 이상의
남자들에게는 그러 했다. 그래서 아내가 머리를 하러 가는 날에 맞추어 뒤를 졸랑졸랑 쫓아
가고는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용실 분위기는 낯설었다. 여기 저기 헬멧 같은 것을 뒤집어

쓴 채 수다 떠는 아줌마들 사이에서 갓 시집온 새색시 같이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는 했다.
 나는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옆 머리는 귀를 삼 분의 일쯤
덮어야 하고 뒤 머리도 약간 길어야 한다. 소위 바리깡이라는 것을 절대 사용 하지 않고
가위로만 머리를 자른다. 얼굴이 남들에 비해 작은 편이라 귀를 내놓을 정도로 짧게
자르면 볼품이 없고 얼굴이 더욱 작아 보인다. 아내와 딸들은 짧게 깎은 내 모습이 더 젊어
보이고 세련 되어 보인 다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요즘은 남자든 여자든 작은 얼굴을 선호
하지만 젊은 시절 한때는 친구들에 비해 작은 얼굴이 컴플렉스 이기도 했다. 아내와 딸들은
나와 사진을 찍을 때는 나를 앞으로 밀어 낸다. 나 때문에 본인들 얼굴이 크게 나온대나,
어짼다나......그래서 나는 가족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앞자리에 자리 잡는다.
 십여 년 전 코퀴틀람 석세스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나오는데 입구 쪽에 이발소 간판이
보였다. 마침 이발을 할 때가 되어 무작정 들어 갔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건장한 중년의
중국 아저씨가 이발을 하고 부인으로 보이는 아담한 중국 아줌마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그도 영어가 서툴고 나도 영어가 서툴렀다. 서로 투박한 영어로 소통한 후 너무 짧게 자르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습관처럼 바리깡을 집어 들길래 가위로만 손질 해 달라고 말했다. 나
같은 손님이 많지 않아 서인지 그의 손 놀림이 그다지 매끄럽지 않아 보였다. 조심 조심 머리
손질을 끝낸 후 소형 거울을 집어 내 뒤 모습을 비추며 어떠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
보다는 모양이 잘 나왔다. 가격도 13불로 저렴했다. 2 불을 팁으로 주고 나왔다.
 두 번째 찾아 갔을 때 그는 나를 기억 했다. 그리고 묻지도 않고 알아서 잘 깎아 주었다.
쇼핑 몰의 주인이 홍콩 사람이라 입주 업체는 중국인이 대부분이었고 드나드는 손님들도
거의 중국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에 나를 특별히 기억 했던 것 같았다. 이발소를 찾아
다니는 걱정을 덜은 나는 십 년 째 그 집 단골이 되었다. 사람 좋은 그는 항상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영어와 한자를 섞어 쓰며 대략적인 의사 소통도 했다. 그는 중국 본토에서 왔고,
아는 사람 소개로 이 몰에 들어와서 10년째 이발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무뚝뚝한 편이며 내가 아는 척 하기 전에는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무례하기 보다는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았다.
 며칠 전 두 달 만에 이발소에 들렸다. 유리문 뒤로 낯선 아줌마 둘 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익숙했던 두 부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순간 잘못 찾아 왔나 하고 착각을 했다. 멈칫거리며
들어 서서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어 보자 한 달 전쯤 자기들이 인수를 했고 전 주인은 연금을
탈 나이가 되어 리타이어 했다고 한다. 아무런 언질도 없이 떠난 그가 다소 야속했고 십 여
년 동안 이곳에 오면 붙박이처럼 있었던 두 부부의 모습을 앞으로는 볼 수 없다고 생각 하니
생소한 마음이 들었다. 어째 이곳에 오면 당연히 그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을까? 사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서운한 마음과 함께 또다시 머리 손질을 설명 할 일이
걱정이 되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1.23세. 대학을 마치고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들어간 나의 첫 직장은 강북구 미아동 소재 S여중이었다. 첫 출근 날 아직 군대도 미필인 시절, 솜털이 뽀얀 홍안의 청년이 여중생의 수업을 들어간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 교감선생님은 나를 따로 불러 세워 다짐을 하신다.“민 선생, 오늘 수업을 들어가게 되면 무조건 민 선생은 딸이 하나 있는 애 아빠라고 자기 소개를 하시고, 학생들이 딸 이름을 혹시 묻거든 ‘들레’라고 하세요.”라며...
민완기
삼겹살 2024.04.08 (월)
아들이 군대 간다고 둥지를 떠나고문 선생은 중첩된 설움을 곰 삭이며외롭다는 말 대신삼겹살 한 절음 불판에 그슬렸다사방에 튀는 기름 파편을 손등이 접수하며그렇게, 모르는 듯 타들어가고 있다 나무젓가락 사이 낑긴 고기가숨이 붙어 더 살아갈 날을 깨우고 있다참기름장에 발라 입에 넣고떠난 가족을 씹어 그렇게 삼켜 버렸다외로움은 콧날에 상큼하다는 말겨자 한입 넣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혼미한 푸념을 담배 연기처럼 뱉어버리고앉았던...
김경래
팔자를 생각하다 2024.04.08 (월)
 가져가야 할 짐들을 거실 가득히 늘어놓은 채, 남편은 가방에짐을 챙겨 넣고 있다. 그가 짐 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다시 떠난다는 게 실감 난다. 가방의 지퍼가 고장 났는지 닫히지 않는다고 남편이 말한다. 그를 붙잡고 싶은 내 마음이 염력을부린 듯하다.남편은 파도 치는 바다로 고생하러 가면서도 아내의 눈치를 본다. 뭘 사다 주면 좋겠느냐고 자꾸 묻는다. 대답 대신 고개를 흔드는데 눈물이 또 주책을 부린다. 냉장고 문을 열고...
정성화
봄밤 2024.04.08 (월)
부활절 날 밤겸손히 무릎을 꿇고사람의 발보다개미의 발을 씻긴다연탄재가 버려진달빛 아래저 골목길개미가 걸어간 길이사람이 걸어간 길보다더 아름답다
정호승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