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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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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8-21 17:09

김춘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어렸을 때 나는 아주 내성적이고 용기가 없어서 동네에서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 오빠와 언니를 졸졸 따라 다니다가 놀이에 끼어줘야 놀았다. 그러나 한번 놀이에 끼어 한판하면 난 열심히 뛰고 숨고 신나게 놀았다. 엊그제 같은 옛날 이야기다.

 나는 이제 무슨 놀이를 하고 살고 있지? 가끔 내가 뭘하고 노는지를 살핀다. 놀이라기보다는 자투리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아들 식구들이 모두 주말 캠핑을 떠나면 나는 홈얼론(영화 제목)으로 신난다. 영화의 어린 아이는 도독 잡느라 신나게 놀았는데, 나는 매일 산책을 함께 다니던 강아지 까지 캠핑 행을 했으니 정말 혼자다. 사교성이 많은 것 같지만 정작 나는 이런 시간에 차 한잔 먹자고 불러 낼 친구가 없다. 아마도 내가 너무 오래 산 탓인가! 더러는 세상을 떠났고 또 오랜 세월 살던 고향같은 몬트리올을 떠나 BC에 이사 와 사는 탓인지 딱히 차 한잔 하자고 허믈 없이 불러 낼 또래 친구가 없다. 오랜 만에 홈 얼론 하는 외로운 시간을 즐겨야 한다.

 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노라면 제일 먼저 나를 반기는 것은 고요함이다. 콤푸터 테이블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묵상을 하면 공기의 움직임을 듣는다. 또 전기가 흘러 전구에 빛을 주는 소리까지 듣는다.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끼지만 내 주위는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음악이라던가 TV 소리 상자도 나에게 큰 매력이 없다. 뒷뜰로 나간다. 아직 어둠이 찾아오기 전, 뒷마당 의자에 앉아 시간과 공간을 잊고 그저 하늘을 본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가지 사이로 휙 휙 벌새들이 왔다 갔다 신나게 논다. 벌새도 나처럼 주변의 소란함을 피하여 고요한 정적을 즐기나보다. 요 앙증스러운 벌새를 보려면 정말 고요 속에 잠심하고 가만히 앉아 하늘을 응시하며 어쩌면 내가 여기 앉아 있다는 사실 마저도 잊은 듯 그렇게 잠심해야만 볼 수 있다. 아이들하고 있으면 아이들의 삶 속에 어울려 나는 이런 고요의 바다 속에 들어 갈 재간이 없다.

 고독을 즐긴다고 하면 청승스럽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날 이렇게 많은 소리 속에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 폰도 아니고 유튜브의 잡다한 이야기들도 아니며 더욱이 소리로 가득한 쇼핑몰 도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다시 나를 찾게 해 주는 고요함일 것이다. 바쁘게 살면서 아니면 소음 속에 살면서 내 안에 갇혀버린 아무도 닮지 않은 아무도 소유 할 수 없는 나의 귀한 자아를 찾아내는 작업이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자연과 어우러지면 그동안 숨 막히게 살고 있었던 진정한 나는 암울한 테넬을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벌 새 보다 아름다운 날개 짓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 죽겠다고 한다. 외롭다고 말 할 정도면 병도 아닐 것이다. 대개 큰 사건, 에를 들면 총기 사건을 비롯한 큰 사건의 주인공들은 외로움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외롭다며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돌파구를 찾지 못하여 급기야는 사고를 치는 것이다. 죽기 전에 세상에 자기를 한 번 드러내 보고 알아 봐 달라는 겪이다. 어제는 미국에서 젊은이가 활주로에 정착한 소형 비행기를 타고 비행하다가 작은 섬에 곤두박질하여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세상을 경악케 했다. 외로움 안에 갇혀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세상을 향하여 자기를 들어내는 수단으로 자살 비행을 한 것이다. 또 얼마 전에는 전 세계를 돌며 각국 희한한 토속 음식 소개를 하던 요리 비평가인 안토니 부르댕(Anthony Bourdain)이 호텔방에서 자살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내도 있고 딸까지 있는 아버지요 남편이며 TV 음식 탐방을 휩쓸며 인기를 끌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삶에서 더 이상의 위로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벌새들의 날개 짓을 보며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어둠이 내려오는 밤하늘을 보며 고요함이 내 영혼에게 얼마나 유익한 약이 되는지를 알게 된다. 자살한 이들에게 그리고 특별히 안토니 부르댕에게 오늘 밤 이렇게 묻고 싶다. 진정 당신들은 삶을 사랑한 적이 있었는가? 저 벌새들이 날아다니는 하늘을 바라보며 정적을 즐긴 적이 있었던가? 밤하늘의 별똥 노래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사랑의 노래를 불러 당신의 영혼을 위로 해 줄 수는 없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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