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오, 스칼렛(Xcaret)

박오은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8-21 17:06

박오은 / 캐나다 한국문협
호텔에 짐을 풀고 옥외 풀장과 연결되는 바닷가로 한걸음에 나갔다.
결 고운 하얀 모래가 아기 볼처럼 보드랍다. 모래밭에 길게 누운 비치 의자, 짚으로 엮어
올린 파라솔, 설렁설렁한 바람에 키 큰 코코넛 나무가 흔들린다. 바람 한 점까지 투명하다.
비행기로 7시간도 채 안 되는 거리, 남미의 아름다운 바닷가에 어느새 내가 서 있다.

캔쿤 남부 해안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가면 자연 생태적인 테마 공원 세 군데가 있다.
엑스플로러(Xplor), 셀하(Xelha) 그리고 스칼렛(Xcaret)이다. 이름도 예쁜
스칼렛(Xcaret)은 고대 마야의 단어이고, 실제 발음은 ‘이시카렛’ 이다. 스노클링, 스킨
스쿠버, 씨 트랙, 래프팅…… 짜릿한 체험은 물론 그들의 역사와 문화까지도 즐길 수 있다.
오늘 하루는 스칼렛에서 보내기로 한다. 페소가 아닌 미 달러로 거한 입장료를 내고도
테마마다 비용을 또 내야 한다. 정글에 들어서면 앵무새 무리가 요란하게 반긴다. 오며 가며
'이구아나'도 만나지만 그도 나도 더는 놀라지 않는다. 좁고 푸른 계곡물에 몸을 담근다.
그늘진 바위틈을 지날 땐 차가워서 오싹 어두운 동굴을 지날 땐 으스스하다. 카메라도
아이폰도 모두 라커룸에 넣고 잠그는 바람에 남들은 사진 찍느라 법석을 떨 때 우린 그냥
유유히 떠다니며 물고기와 놀았다. 점심을 위해 호텔서 예약할 때 알려준 뷔페 레스토랑을
찾았다. 다양한 색깔로 맛난 향기로 육 해공 음식이 죄다 모였다. 파파야를 쪼아 먹는 새들과
함께 식사를 하니 소식을 하는 나도 어느새 새가 된 기분이다.

  내리쬐는 태양은 거침이 없고 그대로 반사되어 눈이 부시다. 천연 썬 블록 로션을 떡같이
바르고 긴 팔 티도 입었지만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른다. 해먹(hammock)에 몸을 누이고
무심한 눈빛의 노마드가 된다. 푸른색이 햇빛에 반사되어 일곱 가지로 보인다는 카리브해,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느긋하다. 구름을 타고 다닌들 이보다 더 유여裕餘하랴. 부대끼며

살더라도 하찮은 이해득실 같은 건 따지지 말자.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인가. 코발트 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고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저 뭉게구름, 무엇보다 재탕 삼 탕
읊어도 처음처럼 들어주는 그대와 함께 마시는 ‘피나 꼴라다’ 의 맛은 소소하지만 그윽하다.
신선놀음만 계속된다면 그건 휴식이 아니다. 일에만 치여도 견뎌내기 힘들다. 몸을
수고롭게만 한다면 삶이 너무나 팍팍하다. 인생이 고리타분하고 미진한 부분이 있더라도
기대감으로 채워가자. 그러면서 또 비우는 것이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게 아니다. 일체의 잡다한 상념을 버리고 무한한 조화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비운다는 것은 나를 꽉 채우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무심결에 저 바다가 또 나를
키우고 있다.
 주홍빛 노을이 선연하다. 디너 곁들인 다채로운 민속 쇼가 시작되었다. 삼면이 오픈된
공연장이었지만 후덥지근하다. 에피타이저로 나온 차가운 ‘셰리’ 한 잔을 단숨에 비웠다.
촛불을 밝힌 1인 식탁에 계속 날라다 주는 풀 코스 디너도 먹을 만 했다. 그들의 처절한
역사를 현란한 춤과 노래로 보여준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민속의상 중에 우리의 색동 옷도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도 우리와 한민족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전에는 6대
주가 하나로 붙어 있었다. 화산폭발, 지진, 대홍수 같은 자연현상으로 남북이 나뉘고 동서가
갈라지고 결국 6대 주로 나뉘어졌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함께 뒤섞여 살았을 수도
있겠다. 멕시코 사람들도 성격이 화끈하고 우리와 모습이 비슷하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니
그럴 법도 하다. 우리는 우리 말을 찾았지만 그들은 침략자의 말을 사용한다. 호텔 존에서는
영어가 가능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면 스페인어 외엔 의사소통이 어렵다. 내가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이유이다. 언젠가 멕시코 여행 중에 감기 기운이 있어 약국에 들렀다. 영어가
통하지 않아 애를 먹다가 약사가 주는 약을 일단 받아 왔다.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다시
가서 물으니 약사는 엉뚱한 약을 내게 준 것이다. 영어가 가능한 클리닉을 소개받고서야
제대로 된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스페인어라고 한다.
스페인이 잘 나가던 때는 120여 개국, 지금은 30여 개국에서 사용한다. 이스라엘 어느
도시에서는 변형된 스페인어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고대 마야문명을 일구어 냈고 아름다운 문화를 간직했지만 우울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스페인 침략으로 우리만큼이나 질곡의 세월을 견디어 왔다. 아직도 피폐해 보이는
그들의 삶이지만 표정만은 밝고 선해 보인다. 심성이 착한 그들에게 복이 있으라.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왕궁의 후예 2024.01.15 (월)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박혜경
새해의 기도 2024.01.15 (월)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게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정호승
새해 기도 2024.01.08 (월)
겸허하게 하소서.내게 없는 것에 불만 하지 않고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늘 감사하게 하소서나 여기에 존재하므로저기에 하늘 땅 바다가 존재하며나 여기에 고른 숨쉬고 있음에온 우주가 맥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봄 여름 가을 겨울내 작은 발로 헤쳐갈 삶의 여로에서건네는 눈길마다, 마주 잡는 손길마다꽃잎 줍는 가슴처럼 따뜻하게 하소서덧칠 안 된 언어로 기도하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 인연이여세월에도 녹슬지 않는 영혼으로심장엔...
안봉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굼뜬 어둠을 밀고 알버타 대 평원에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빛甲辰年 큰 희망으로 새 아침을 달군다매듭 달 지는 해에 아쉬움 실려 보낸오늘은 엄동설한 눈 속에 서기로운섬광이 꽃으로 피어 희망을 섞고 있다세상의 기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자연에 봉헌하는 서정과 순수만이고단한 삶의 이력에 발자취로 남는 것주님, 평소 소원한 이웃과 가족들에게옹졸했던 마음 모아 용서를 청하오니새해엔 달 뜬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모진 설한의...
이상목
God, where are you? 2024.01.02 (화)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4시 30분쯤. 출근길에 bus shelter를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meless guy인 것 같았다. 살펴보니 흐트러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누워있는데 그는 얇은 천으로 된 검정 상의와 파란색 하의 그리고 흰색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의 허리와 발목은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상체를 비틀다가...
愚步 김토마스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