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신불구무병(身不求無病)’

조정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7-30 14:33

조정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어릴 적 엄마는 흔들리는 젖니를 실로 묶은 후 갑자기 잡아당기셨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엄마가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며 주문을 외우실 때, 나는 폴짝폴짝 마당을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오늘 치과에서 작은 어금니를 뽑았다. 그동안 잇몸 통증으로 음식을 씹을 수 없어 결국 임플란트 시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음악이 흐르는 치료실 분위기와 의사 선생님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마취 주삿바늘의 날카로움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30여 분이 지난 뒤, 나는 뽑혀 나온 어금니를 볼 수 있었다.

“혹시 딱딱한 것을 드신 일이 있으세요? 이 뿌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나는 엷은 핏빛을 띤 어금니를 원망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 입가 근육에 신경을 곤두세운 나는 잠시 후, 생각 없이 병원문을 나섰다.

저녁 무렵, 뽑힌 어금니 자리에 살며시 혀를 갖다 대보았다. 놀랍게도 그 자리엔 깊은 골과 높은 산이 솟아나고 작은 분화구 하나가 들어앉은 것 같았다. 작은 어금니 하나 뽑힌 자리가 이렇게 크게 느껴지다니, 오랜 세월 내 몸의 일부였던 두고 온 어금니가 눈앞에 어른댔다.

‘12살 무렵부터 음식을 작게 자르고 씹어 내 몸을 지탱시켜 준 너를 용도 폐기하다니! 마당에 흙을 파고 묻어주어야 너에 대한 도리였는데---. 내일 치과에 전화해볼까.’

노년의 시기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대부분 몸의 장애를 안고 살게 된다. 눈은 침침해지고 귀는 어두워지며 기억력과 기력이 떨어져 쉽게 피곤해진다. 또한 고혈압과 당뇨,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며 백내장과 관절염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몸의 노화는 유한한 삶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해, 자연의 혜택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 의지해 살고 있음을 일깨운다. 흙 먼지가 이는 땅 밑에 맑은 물이 흐르듯, 몸의 노화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고요한 즐거움을 찾아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존재의 무상함(항상 하지 않음)을 깨달아, 신록의 싱그러움과 지는 노을의 황홀함에 두 손을 모으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순간을 경험하는 시기이다.

“신불구무병(身不求無病), 신무병즉탐욕이생(身無病則貪欲易生).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붓다의 가르침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노인은 몸의 질병을 갖고도 정신의 탄력을 유지하려 애쓰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바램을 갖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니스에서 3박 4일 2024.03.18 (월)
프롤로그쓰레기와 개똥이 널려 있는 지저분한 도시, 니스Nice의 첫 인상이다.트램 역에서 예약한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한다. 역 주변엔 노숙자와 개가 퍼 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 개똥과 쓰레기 투성이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심각해 발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주의가 필요하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도착한 숙소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종업원은 친절하다.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는...
강은소
3월의 일기장 2024.03.18 (월)
펼쳐보니뒤척였던 적보다 구겨졌던 적이 더 많았군요먼지 투성이로 처박혔던 것보다 나았다고혼자 위로도 해보지만눈 보라 쳤던 겨울밤에 웅크리던 낱말 들다시 덮을까요?여전히 봄은 멀어 보였죠나무 밑 다람쥐가 조심스레 도토리를 오물거리네요가난한 위장을찌그러졌던 속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듬더군요햇살이푸른 햇살이돌돌 말려 올라간 꼬리에 머무네요잔잔하게 바라봅니다조용히 덮었어요그리고 너덜거리는 일기장을 햇살에...
유장원
오래된 마음 2024.03.15 (금)
1‘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서두에 놓인 기사였다. 퇴근을 앞둔 마지막 교정이었지만, 이미 야근이 계속된 터라 피곤이 몰려왔다. 고골이 푸시킨을 200년에 한번 나올법한 작가라고 치켜세운 부분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교정지 위에 빨간 펜으로 기다란 선을 긋고 말았다. 그러다 나의 관심을 끈 건 뜻밖에도 푸시킨의 아내였다. 푸시킨은 러시아 상류층 사이에서 미인으로 소문났던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고현진
추억 (안녕) 2024.03.08 (금)
  김회자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창가에 앉아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비 소리에 섞여 흘러가는지    그리움이 강이 되어  가슴을 흔들어 놓고 한 줄기 빛처럼 비추는  지난날의 추억들이 퐁당퐁당 떨어진다   나를 과거로 이끄는  그리고 나를 현재로 되돌린 비의 속삭임이여 안녕.
김회자
낙타 세 마리 2024.03.08 (금)
박정은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복권이 윷놀이 상품으로 걸렸다. 구정을 맞아 주유소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과 모여 윷놀이를 하는데, 남편이 복권을 상품으로 건 거였다. 주유소에서 복권을 팔기만 했지, 난 한 번도 복권을 사본 적이 없었다. 딱히 복권에 욕심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왕에 하는 윷놀이 열심히 해보지 싶었다. 열성껏 윷을 던진 결과 결국 몇 장의 복권이 손에 들어왔고, 난 그걸...
박정은
그리움 2024.03.08 (금)
최민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전지를 갈아 끼워도 가지 않는 손목시계처럼 그는 그렇게 그녀라는 길 위에 멈추어 있다.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이 그에게는 여전히 아프고 쓰리다. 이별의 모서리는 언제나 날카로워 돌아볼 때마다 마음이 베이지만 그녀라는 모퉁이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하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진한 눈썹, 둥근 이마, 상큼하면서도 허스키한 탄산수 음색이 생각나 아직도 심장이 쿵, 떨어져 내린다 하였다....
최민자
밤의 날개 2024.03.08 (금)
이영춘 / 캐나다 한국문협 수석고문고요가 조용히 날개를 펼칩니다팔랑이는 이파리처럼, 이파리의 날개처럼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산비둘기들이 마을로 내려옵니다내려와 잠드는 내 집 처마 끝에달빛을 비춰줍니다고요의 숨소리가 들립니다달빛도 긴 그림자의 그늘을 접고나뭇가지에 어깨를 걸치고 앉아고요가 잠든 집을 지켜줍니다 고요가 조용히 일어나 잠들려는 나를살짝 깨웁니다눈뜬 별들의 바다가 깊습니다나도 살짝...
이영춘
송년엽서 2024.03.04 (월)
1년의 폭은 365미터비껴 간 10년, 또 10년 우리 까마득히 멀어져보이지도 들리지도 눈을 감아요깊숙이 자목련 한 그루씩 심어요 먼 날자색 빛 노을 물드는 저녁 바다 이편에서바다 저편에서 목련 꽃비만후두둑 후두둑
백철현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