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음악은 흐르는데

강은소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7-30 14:30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아바(ABBA)가 35년 만에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우리는 나이가 들었을지 모르지만, 노래는 새로운 거다.”
요즘 기분이 좋다는 근황도 전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갈래머리 여학생 때, 아바의 호주 순회공연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보았다. 그 당시 유행하던 춤인 디스코 풍에 어울리는 경쾌한 리듬과 귀에 꽂히는 가사는 스웨덴 팝 뮤지션을 세계적으로 널리 이끌었다. 교복 차림으로 도심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라이브 공연과 음악인생이 담긴 다큐의 여운에 발걸음이 둥둥 떠다니던 기억이 난다. 
 ‘I Have a Dream’, 그들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옛날은 가고 없다. 
아바의 소식에 오래 전 십 대 소녀와 더불어 살던 노래를 떠올려 본다.
그녀의 귀를 처음 적신 팝 음악은 ‘The Music Played’다. 
턴테이블이 있는 큰 전축에 유일한 팝 레코드로 아다모의 LP판과 매트 먼로의 EP판이 있었는데, 작고 앙증맞은 EP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무척 감미로웠다. 탁성을 튕기면서 부르는 아다모의 ‘Tombe La Neige’보다는 혀를 굴리는 먼로의 부드러움이 그녀의 마음을 더 많이 감싸주었던 것일까. ‘The Music Played’와 함께할 땐 언제나 먼 미래의 어느 낯선 골목을 서성거렸다.
또 하나의 노래 ‘What is a Youth’를 빼놓을 수 없다.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속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 흐르던 아름다운 선율을 어떻게 잊겠는가. 가사를 달리한 여러 버전의 ‘A Time for Us’가 있지만, 모두 원곡만큼 깊이 있는 감동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녀는 원곡 가수 글렌 웨스턴의 가슴을 할퀴며 파고드는 슬프고 애틋한 목소리를 오래도록 많이 사랑했다. 
음악이 흐르듯 삶도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고. 다가오는 시간은 물처럼 막힘 없이 굴곡진 곳은 굴곡진 대로 돌아가면서 마냥 흘러가는 줄 알았다. 밤 깊도록 소녀의 감상을 긁적이며 먼 훗날 작가가 되리라, 때로는 손 닿지 않는 별을 따고 싶어 천체 물리학자가 되리라 꿈을 꾸기도 했다. 위대한 작가가 그려낸 러브 스토리 주인공처럼 지독한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죽어버릴 수도 있겠다. 간절한 소망인지, 엉뚱한 망상인지, 아니면 막연한 그리움인지, 절박한 기다림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잊지 못할 노래로 적셨다. 
십 대는 조용하면서 천천히 흘렀다. 그러나 이삼십과 사십 대는 이리저리 부딪히면서 빠르게 지나갔고, 어느새 오십 대마저 달아나는 중이다. 세월은 가도 음악은 그대로 살아 흐르는데 미지의 세계를 꿈꾸던 소녀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희끗희끗 흰 머리카락 쓰다듬으며 뿌리 자라지 않는 먼 나라 남의 땅에 사는 중늙은이다. 하루하루가 단조롭고 메말라가는 감성으로 점점, 무미건조해지는 일상이다. 
학창시절 클래식 기타와 짧게나마 연을 맺었던 남편이다. 멋지고 곱게 늙어 보자 부채질했더니 요즘 기타로 자투리 시간을 채우는 그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눈높이에 못 미치는 연주실력이지만 그래도 몇 곡은 들을 만하다. 
한동안 영화 「13 Jours en France」의 주제곡이 집안 가득 울렸다. 우리에겐 ‘하얀 연인들’로 알려진 귀에 익었으나 잊힌 음악인데 오랜만이라 새삼 반갑게 들었다. 얼마 전부터 남편은 코타로 오시오의 대표곡 ‘Twilight’으로 독립해 나가버린 아들의 빈방 구석진 먼지를 아침저녁 혼자 훔치고 다닌다.
  코타로 오시오는 유명한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자다. 핑거스타일은 음악을 구성하는 멜로디, 리듬, 화음을 한 대의 기타로 모두 표현해내는 주법을 말하는데, 그의 ‘Twilight’ 연주는 그 주법이 잘 드러난다. 힘이 충만한 손가락 터치는 황혼이 몰고 오는 진한 쓸쓸함을 살려내 가슴 먹먹해지도록 만든다. 한번 들은 뒤로 계속 돌려 듣게 되는 그의 연주다. 같은 음악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남편의 연주는 강하지 않은 대신 섬세하고 부드러워, 깊이 젖은 쓸쓸함보다는 아련히 물드는 황혼이다. 자신의 개성대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에 편안하고 듣기도 좋다.
오늘은 남편의 연주 동영상을 유 튜브에 올리느라 몇 시간 작업하고 영상을 열어보았는데, 첫 업로드라 연주자와 촬영자 모두 어설프다. 그는 마악 벗겨지기 시작한 정수리 주변과 주름 얽힌 얼굴이 밉다고 영상을 내리자 말하고, 그녀는 손이 자꾸 떨려서 영상이 흔들린다며 한 번 더 찍자고 몇 번이나 다시 부추겼다. 이래저래 하루가 저물고 둘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동영상을 보며 가슴 뿌듯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녀와 남편, 동병상련의 두 중년에게 오래 기억될 음악이 달금하게 흐른다.
  소확행 -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실현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우엉을 먹으며 2023.10.04 (수)
  남편이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다. 배에서 가족 생각이 날 때 나를 어떤 모습으로 떠올리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던 모습’이라고 했다. 실망스러우면서 민망했다. 그만큼 내가 삼겹살을 자주 구워 먹었다는 얘기다.입맛도 연어처럼 제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걸까. 근래 들어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저녁별이 하나 둘 돋아나는 초저녁에 평상에...
정성화
양파 2023.10.04 (수)
한 마리 새가 되려 고성에 앉았는가한 마리 나비 되려 천상에 올랐는가반복된 구심 원 마다 저 완만한 곡률 껍질도 내어주고 육신도 내어주고차분한 아름다움 정점에 서기까지문 여니 완벽한 비례 눈물조차 덤이다 억겁의 마음속에 치켜든 비늘줄기흰 속살 베어 물면 불타는 성이 된다어쩌면 햇살이 세운 성일지도 모른다
이상목
달빛 호수 2023.09.25 (월)
가을밤호수는 조용히 흐르고달빛 건너온 물결 속에는잠시 머문  작은 별빛그리움 하나살포시 부는 바람은내 님의  숨결인양밤 하늘 저 별빛은내 님의 눈빛인양달빛 호수 위로은파(銀波)는 흔들리고바람소리 물결소리내 맘을 적시우나님 실은 조각배는언제쯤 오시려나기다려도 기다려도그리움만 흐르네
늘샘 임윤빈
칠월 초에 접어드니 서서히 무더위가 다가오고 있다. 특히 더위를 몹시 타고 땀을 많이 흘리는 아내는 여름만 되면 걱정이다. 밖으로 나가면 바람이 시원하니 집 근방의 디어레이크 세볼트 센터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저녁 무렵이라 아예 맛있는 하와이안 피자를 작은 것으로 한 판 사서 들고 갔다.아스라이 멀리 호수물이 보이는 언덕바지 위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물가의 수련들이 매년 늘어나는 것 같다. 오후 늦게 저녁에는 꽃잎을 접고...
심현섭
구월 2023.09.25 (월)
구월은 뜨거운 땡볕이 물러가고 하늘이 창을 열고 얼굴을 내 보이는 계절…….  하늘은 맑은 표정을 보이고 비로소 마음을 연다. 어느새 선선 해진 바람도 들국화나 코스모스꽃향기를 실어 오고, 열린 하늘을 향해 피리를 불면 가장 멀리까지 퍼져 나갈 듯싶다.  구월은 그리움의 심연에 조약돌이 풍덩 날아들어 잔잔히 물이랑을 이루며 마음 언저리에밀려오는 듯하다. 맑은 하늘을 보고, 햇볕을 편안하게 맞아들이며 가을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정목일
머리를 톡 쳐 기절 시키고돌려 깎기로 한 바퀴 드러나는 속살 눈이 부시다바람과 태양으로 부풀어 오르고  한기가 스며야 생동하는 환희주름살 하나 없이 달큰한 향만 담아한입 베어 물면 이내 사랑에 빠진다 오늘이 지나면 스러질 어제의 추억내일이면 다시 살아날 오늘의 향기뜨겁고도 도도한 그의 찰 진 삶이다 이 몸은 맨 살의 단단함으로 영글기 위해점에서 시작되는 얼룩 같은 시간일지라도현현顯現한 삶을 얼마만큼 참아냈을까단...
박오은
노송 반닫이 2023.09.18 (월)
머언 사대부 여인의 혼불우리 집 거실 콘솔우쭐대는 서양식 가구 사이홀로 소박한 예스러움뼛속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나비경첩문양 백동장식화려한 얼굴로 복(福)과 수(壽)를날마다 염원한다복되거라건강하여라물고기 문양 무쇠 열쇠로바닷속 동굴 그녀의 가슴을 열면수초처럼 가득 자리한 한문물결치며 쏟아져 내린다먼 길 달려온 그녀의 시간은 누우런 한지로 얼룩져 있고숱한 시간 가슴아린 사랑이야기 귀퉁이 한문이 흐릿하다철컥 열리는...
김계옥
어떤 만남 2023.09.18 (월)
  지난 7월 말, 나는 비씨주 내륙 Cranbrook에 있는 Home Depot에 물건을 배달하러 갔다.그러나 한 여름 무더운 날씨에 이곳저곳에는 산불들이 나무들을 태우고 있는 광경을안타까운 마음으로 보며 운전을 하였다. NO.3번 도로는 관광코스로도 손색이 없는도로이다. 높은 산세에 울창하게 퍼져있는 나무들은 마치 푸르른 자연을 화폭 위에그려놓은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깨끗하고 맑은 강과 호수들이 곳곳에 있고, 그 강이미국의 오레곤주 포틀랜드까지...
김유훈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