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사랑의 조각보

권은영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7-23 08:59

권은경/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부산의 한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촉망 받는 의사가 되었지만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신부의 길을 선택한 젊은 청년, 이태석!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수단의 톤즈에서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았다. 아픈 사람들을 진료하며 한센병이나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보살폈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의 소박하고 진솔한 모습은 지금도 톤즈의 꽃으로 기억되며 한 사람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전 세계에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태석 신부님을 통해 비로소 수단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에 위치한 나라, 수단. 수단의 종족은 부유한 북쪽 아랍계 백인과 가난한 남쪽 흑인 원주민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의 원주민들은 북쪽의 아랍계 주민들로부터 오랫동안 노예처럼 취급되었고, 이로 인한 불만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단 내전은 반백 년이 넘게 지속하며 이백만 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긴 전쟁은 땅도 사람도 무참히 파괴하며 수많은 사람을 지옥과 같은 참담한 생활로 밀어 넣었다. 거리는 삶의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는 병들고 배고픈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렇게 수단이라는 나라는 내게 이태석이라는 이름표를 단 슬픈 얼굴의 아이처럼 기억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며 세계 여러 인종이 모여 산다는 모자이크의 나라, 캐나다에서 나는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푸른 빛을 띤 슬픈 나라, 수단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었다. 캐나다에 살게 되면서 영어 공부를 위해 찾았던 어느 학교에서였다. 한 교실에 모인 학생은 스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학생들이 나고 자란 나라가 모두 제 각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내가 사는 곳이 세상 전부인 줄 알았던 나로서는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탈리아, 콩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몽골, 우크라이나, 중국, 레바논, 멕시코, 한국…. 왜 캐나다를 모자이크의 나라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낯선 곳에서 느끼는 불편함에 내 얼굴은 어색하게 굳어있었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빛나는 검은 피부의 친구가 첫눈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나 또한 겸연쩍게 웃으며 마지못해 인사를 나눴다. 친구는 아프리카의 수단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나보다 무려 열 살이나 어렸다. 나도 모르게 마음에 기쁨이 차 올랐다. 이태석 신부님의 나라 수단이라니….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국 땅에서 잊고 있던 친척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수단의 딩카족과 옆자리의 친구, 마야는 똑 닮아있었다. 
 
 딩카족은 얼마나 용맹한지 가족과 자신의 가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마야의 맑은 눈망울 너머로 딩카족의 강인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야가 내 친구로 옆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졌다. 마야는 나보다 오 년이나 앞서 캐나다에 왔다. 알파벳도 모르고 캐나다에 왔다던 마야는 영어로 유창하게 자신의 꿈을 말했다. 우리는 나라와 언어, 문화를 초월해 쉽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이민 생활의 어려움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태석 신부님이 일깨워준 인간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과 사랑의 가치가 아니었다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이민자의 나라에서 나는 모자이크를 대신해 오목조목 맞춰 이은 우리나라의 조각보를 그려본다. 그리고 이태석 신부님이 남긴 빛깔 고운 작은 헝겊 조각 하나를 마음에 기워 붙인다. 이 사랑의 헝겊은 각 사람의 마음으로 조각조각 이어져 더 넓고, 예쁜 조각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조각보는 외로운 이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더하는 이불이 되고, 슬픈 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의 손수건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위대한 사랑 앞에 숙연한 마음으로 선다. 그리고 사랑의 조각보 위에 나와 마야를 친구로 이어준 이태석이라는 이름을 써넣는다. 감사하게도 지금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수단을 생각하면 만리타국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게 한 사랑의 조각보와 딩카족의 후예인 마야를 떠올리게 된다. 이 소중한 경험을 통해 내 마음의 조각보도 더 곱게 이어져 넓게 펼쳐지길 소망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가로등 2024.04.02 (화)
어둡고 긴긴 밤을그대 왜 서 있는가 길고 긴 세월 동안지칠 법도 하건만은 가신 님 오시려나행여 떨며 기다리나 어두워 못 오실까 눈 밝혀 길 비추나 이 밤도 아니 오면이제 그만 쉬소서
늘샘 임윤빈
떠도는 섬 2024.04.02 (화)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는 지역을 우리는 섬이라 말한다. 어느 곳은 썰물이면 육지와 맞닿아 있다가 밀물 때면 수면위에 떠 있는 섬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망망대해에 고고히 떠 있는 섬을 외로움과 고독에 비유하는가 하면 인고를 견디는 삶을 대변하기도 한다. 물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는 섬처럼 떠 있고 고립된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된다.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고 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금방 외롭다하는 모습이 그렇고, 사과밭 한가운데...
자명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안에 은은한 향기가 감돌고 있다. 무슨 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싫지 않은 냄새, 내 앞서 누군가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흔적일 것 같다.나는 향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강렬한 향은 더욱 그렇다. 화장품도 향이 짙은 것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수수한 것을 선호한다. 사실 냄새란 무엇이건 그 자체만으로도 나기 마련이다. 미미한 것은 미미한 대로, 짙은 것은 짙은 대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스치기만...
최원현
사순절의 약속 2024.04.02 (화)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 언약의 증거이니라만물이 소생 하는 봄의 문턱에서텅 빈 가지마다 약속이나 한 듯꽃망울이 송알 송알 맺히게 하는 일그 또한 언약의 증거일 터몸과 마음이 움츠려 들 무렵사순절을 맞이하여 고난을 당하신주님을 잠시 생각해봅니다40일 광야에서 금식하시며십자가를 짊어지고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담장 너머 새 한 마리한동안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다가봄 소식이라도 가져오려는...
유우영
<홍안에서 노안으로>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 난처했던 적도 꽤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비교적 젊게 보니 마음이 흡족할 때도 있었다.20대 초반 제대 후 복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경기도 안양시 어느 변두리를 걷고 있었는데, 불량하게 보이는 학생 세 명이 나에게 다가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 명은 체격이 작았지만 뒤에 2명은 보통 체격...
이형만 외 2인
<고귀한 분실>  해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꽃이 필 때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이 고마운 손님은 산란기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인 모천까지 무사히 회귀하는 연어들이다.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먼 바다에서부터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하천 상류 얕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연어에게 주어진 태생적 생존 본능이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양현석 외 2인
  팔루스는 사진 모임에서 매년 세 네 차례 출사를 가는 곳이다. 팔루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서부 맞닿은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한 밀밭 곡창지대이다. 구릉과 평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싹이 돋는 봄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갓 태어난 푸른 밀들이 춤을 추고, 여름이 다가오면 노란 유채꽃들과 푸른 밀들이 축제를 벌이고, 가을엔 밀들이 베어진 대지가 마치 전라의 여인처럼 본래 대지의 아름다운...
박광일
그래도 봄은 온다 2024.03.25 (월)
경칩 지나 춘분으로가는 길모롱이 언덕 바지에불현듯 반짝이는보라 빛 고운 웃음소리긴 긴 겨울 잔인한 혹한 속에서그래도 봄은 온다고옹기 종기눈 녹은 양지녘에 모여 앉은여리고 작은 제비꽃 가족반짝이는 보라 빛 비단 실 입에 물고대지 위에 점점이희망이란 단어를 환하게 수 놓고 있다
임완숙
사람이 사람을 피한다. 오고 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던 정다운 인사는 사라졌다. 맞은 편에서 사람이 오면 ‘누가 먼저 비껴서나’ 기 싸움을 한다. 대부분 옹고집으로 뭉친 의지(?)의 한국인이 이긴다. 그러나 덩치가 검은 곰만한 사람이 전방 1미터까지 접근하면서도 비껴 설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도리 없이 내가 양보한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이것 봐라. 젊은 놈이 예의도...
이원배
아프리카 대자연의 푸른 초원과 그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온갖 야생 동물들과 그들의 사냥 장면을 지프를 타고 관찰하는 사파리 여행은 아프리카의 상징이다. 아프리카에는 남아공의 크루그, 나미비아의 에토샤, 오카방고 델타,...
정해영
푸른 달빛이 앞마당에 내려앉은 추운 겨울이에요. 턱밑에 앞발을 모은 프린스는 은별이 누나와 헤어지던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비행기를 타기 전 누나는 나를 꼭 껴안고 약속했었지, 우린 다시 만날 거라고.’프린스는 며칠 전부터 시골 은별이 누나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됐어요. 오래된 한옥 마루 밑에서 살아야 하는 믿지 못할 일이 시작됐지요. 함께 살게 된 바우는...
조정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