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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7-04 12:36

서정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올해도 홀로 계시는 어머니 위안차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몇 차례 어머니 곁을 찾았지만, 많은 세월 탓에 야윈듯한 그모습이 살며시 마음에 그려지기도 하고. 한편, 93세임에도 건강한 모습도 엿보게 된다. 늘 머무시는 동네주변은 여전 초라함도 같이하는 서울근교 어느 변두리 동네에 도착하는 순간, 내 눈길에는 그집 모습이 초라할 뿐이다.
어느날, 어머니께 이사를 조용히 제의 해보았다. 단숨에 거절하시고, 그간 어머니 가슴에 담고 있었던 뜻밖의 숨은 얘기를 들려주시는 것이다. 잠시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그림속 묻혀있는 뒷 얘기에 펜을 들었다.
오늘도 출근하시듯 구석에 놓여진 의자에 몸을 의지하신다. 그리고 그 의자에 기대어 하루를 바라보신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하며 초등학생 남매가 등교길 “Good morning” 의 뜻을 할머니에게 전하고 있었다. 바로 답례하듯이 하며 할머니는 요즘 ‘공부 잘하지!’ 라며 표정이 밝아지신다. 이 아이들 엄마는 ‘사회복지사’ 로 취업하면서 얼마동안 이 ‘할머니’에게 아침을 챙겨주셨던 분이다. 남매는 외치듯 ‘학교 다녀오겠숩니다!’ 남기고 급한 걸음으로 할머니 곁을 떠나고 있었다. 곧바로 어머니 마음속에는 그 긴 세월속에 묻혀 있던 기쁨과 서글품이 교차하신다.
옆집에서 키우는 ‘진돗개’ 한마리는 어머니 인기척에 늘 꼬리를 흔들며 반기는 흰둥이다. 그는 정다운 친구이면서 또하나의 이웃사촌인 셈이다. 늘 대하는 무언의 순간이지만 서로를 반기듯 이리뛰고 저리뛰는 모습에 어머니는 의자에서 힘들게 일어나 그를 반긴다. 그러나, 흰둥이가 힘이 좋아서인지 어머니는 힘겨워 하시며 바로 의자를 챙기시는 모습이다. 흰둥이는 하얀색을 지니고 있어서 어머니가 늘 쉽게 불러대는 애칭이다. 그런데 간밤에 귀여운 새끼 3 마리를 낳았다는 소식에 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끊이신다. 그리고 혼자말로 ‘ 간밤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한마디에 힌둥이 한테 모성애와 대견한 마음을 전하는 듯도 하면서 느끼는 진정성이 마음에 담겨진 외마디인 듯 싶었다.
이제 얼마간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흰둥이와 함께 3마리 새끼 강아지는 한식구로 자리를 잡았고, 그 모습 제법 컸기에 이제는 어머니 발걸음에 같이 춤을 추듯 쫓아다니시는 것이 진정한 친구와 함께 하는 듯하다. 생각만해도 저절로 눈에 밟히는 그들 모습을 마음에 품고 또다시 어머니 곁을 떠나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참동안 자신을 질책하면서, 그간 30 년동안 사셨던 정든 집과 그 동네를 떠나지 않으시려는 의지에 또 한번 어머니의 깊은 뜻을 마음에 새겨본다. 다시 뵐 올가을 어느날을 기약하며 스쳐가는 저 하늘에 어머니에게 무언의 약속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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