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최종수정 : 2018-06-11 10:05



강은소 / 캐나다 한국문협 자문위원


어허~ 달구야~’선소리 꾼의 뒤를 따르는 달구 소리 후렴구다

망자의 집터를 다지던 구성진 소리는 갈잎 갈피마다 파고들더니 이제 잠이 들었다아버지의 맏아들이면서 다섯 아이의 아버지로, 더불어 한 여인의 지아비로 쌓아온 삶의 무게를 마침내 툴툴 털어내고, 편히 누운 그를 두고 산에서 내려온다잔걸음을 치던 어린 그의 증손자가 격의 없이 팔을 잡아당겨 낯선 등을 더듬을 때참나무 마른 가지 끝에서 물빛이 반짝인다새로운 계절의 움이 트고 있다

 

시아버지의 상사를 남들은 호상이라 한다

아흔 살을 넘기고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고 ‘급성 심정지 명을 다하였으니 모두가 큰 복이라 위로한다발인하는 아침에는 유달리 차가웠던 날씨가 푹해지고살짝 흩뿌리는 눈발까지 춤을 추니 그 어른 좋은 데 가셨음이 틀림없단다아무리 더 없는 호상이라 한들 문상객의 담담한 조문이 준비도 없이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이한 유족의 비통한 심사를 다 헤아릴 수는 없을 것이다그러나 상주와 상제를 위로하며 함께 애쓰는 조문객의 넉넉한 품앗이다오랜 우리 장례문화의 정겨운 풍경이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서성이는 생각의 갈피를 잡는다시아버지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를 더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겁다. 시부모를 보낸 며느리의 텅 빈 마음이 부모를 잃은 아들이 느끼는 슬픔의 넓이를 뛰어넘기는 힘들겠지만, 며느리도 아들과 하나같은 상제가 아니던가어느새 마음 한 자리에 바람이 일고 그리움이 스멀거린다허전하고 헛헛한 가슴은 아들이나 며느리누구든 가족이면 당연히 맞닥뜨리는 정서로 누구든지 그러해야 마땅하다

언젠가겉보기에 가족이 아닌 것 같은 어느 집 며느리가 눈에 들어온 적이 있다그녀는 시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는커녕 허리를 굽히지도묵례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기만 했다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삼우제에서도 온 가족이 절을 하는데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그녀를 보며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그 며느리가 자꾸 생각난다결혼하고 난 한참 뒤그녀가 하나님에 의지한 세월이 그리 길지 않은데, 신심이 얼마나 크고 깊으면 집안 어른의 상례에 반기를 들고 혼자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걸까아니면 종교적으로 초심자라 앞뒤 사려분별을 떠나 맹목적으로 되는지과연 친부모의 상례라 해도 친정 식구들과 달리 멀뚱히 막대기처럼 버티고 서 있을 것인지. 그날, 상제가 아니라 문상을 온 조문객보다 못한 행동으로 그녀는 주위를 황당하게 했다.

요즘도 그녀는 자기 시댁에서 손님처럼 행동한다종교적인 문제와는 별다른 차원의 사고방식 하나가 그녀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나 보다시집이 그녀의 집이고 시집 식구는 한 가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없으니 자신이 시집의 중심이 되지 못하고 주인이 되지 못한다시집이라는 큰 우주를 껴안지 못하고 단지 자기 남편과 자식만이 자기의 중심이고 우주일 뿐인 그녀는 시댁에서 영원히 손님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고 답답하다종교적 신념이나 법을 우리의 전통 관례나 예법과 동등하게 놓지 못한 그녀의 천칭 저울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 있다뿔뚝 고집으로 자신의 의지를 쓸데없이 세우는 그녀다분명 자기 식구뿐인 그녀의 작은 우주 또한 확장된 식구와 가족 전체를 아우르는 일은 역부족일 터다현명한 며느리는 어긋난 아집을 버리고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력을 가진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조정하고 알맞은 선택을 하는 여유와 조율의 과정이며조율을 위한 타협은 자신을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조율은 격의 없는 속마음을 먼저 열어 보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부한다나는 남을 위한 배려와 양보에 익숙하고 조율을 위한 타협뿐 아니라 타협을 위한 조율에도 능하다고집 안팎의 다양한 세상살이에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에게 그녀가 똑똑히 말할지도 모른다

  “왜 당당하지 못하고, 그렇게 눈치를 보고 사느냐?

우리는 눈앞 저울의 눈금을 서로 다르게 읽고 새로운 해석을 낳는다오랫동안 길든 습성의 차이와 거쳐온 삶의 거리 때문이다조율은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길을 밝혀주는 하나의 등불 같은 방편이 될 수 있고, 비굴한 타협의 뒷골목에 굴러다니다 말라버린 밥풀때기가 될 수도 있다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간격은 각각 살아온 시간만큼 멀고 아득하다조율과 눈치 사이의 격은 계절이 변하는 자연의 이치처럼 굳건하다우리의 격은 오고 가는 삶과 죽음처럼 단단하다나무에 싹이 터지는 소리 들린다봄이다.  

우리의 격의隔意 허물어질 수 있을까.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왕궁의 후예 2024.01.15 (월)
   나이 어린 새 각시 수줍어 반 쯤 내민 빼꼼한 얼굴처럼 신비로움 품은 비밀의 정원, 비원이었던가? 그동안 키워준 친 어미 품이 식상했다고 성급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입양 부모 품으로 황급히 달려가는 꼴이 되어 버렸던게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무지한 채 새로운 미래에 대한 설렘으로 채워진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어쩌면 대열에서 쳐지고 지쳐 버렸기에 무언가 새로운 인생의 달콤한 변화를 꿈꾸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
박혜경
새해의 기도 2024.01.15 (월)
올해도 저를 고통의 방법으로 사랑해주세요저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고통의 방법이라는 것을결코 잊지 않도록 해주세요그렇지만 올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은 허락하지 마소서올해도 저를 쓰러뜨려주세요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쓰러뜨리신다는 것을 이제 아오니올해도 저를 거침없이 쓰러뜨려주세요그렇지만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쓰러뜨리지는 말아주소서올해도 저를 분노에 떨지 않게 해주세요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두 주먹을 불끈...
정호승
새해 기도 2024.01.08 (월)
겸허하게 하소서.내게 없는 것에 불만 하지 않고내가 이미 가진 것들에늘 감사하게 하소서나 여기에 존재하므로저기에 하늘 땅 바다가 존재하며나 여기에 고른 숨쉬고 있음에온 우주가 맥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봄 여름 가을 겨울내 작은 발로 헤쳐갈 삶의 여로에서건네는 눈길마다, 마주 잡는 손길마다꽃잎 줍는 가슴처럼 따뜻하게 하소서덧칠 안 된 언어로 기도하게 하소서허락하신다면, 인연이여세월에도 녹슬지 않는 영혼으로심장엔...
안봉자
  2024년은 나에게는 특별한 해다. 정확히 말하자면  1994년 11월 23일  우리가  독립 이민자로 캐나다 퀘벡주에 있는 몬트리올 공항에 발을 디딘 지  50년을 맞는 해다. 반세기를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1974년 육군본부에서 공병 장교로 일 잘하던 남편을 설득하여 아직  두 살이 채 안 되는 딸아기를 안고 아무도 우리를 반겨주지 않았던 낯선 캐나다 땅에 랜딩 했다. 남편의 본적은 함경북도, 하얼빈 출생이다. 러시아계와...
김춘희
서울 나들이 2024.01.08 (월)
   충청도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끔씩 서울 나들이를 한다. 서울에서 생활하고 계시는 부모님을 뵙고 또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모처럼 가는 길이니 으레 올망 졸망 보따리를 거느리고 가야 하기 때문에 싸움터에 나가는 비장한 각오로 서울 행 직행 버스에 오른다.  며칠 전부터 들기름 참기름을 짜고 콩이며 팥이며 골고루 챙겨 들다 보면 보따리는 서 너 개가 넘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이 가까워 오면...
반숙자
굼뜬 어둠을 밀고 알버타 대 평원에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빛甲辰年 큰 희망으로 새 아침을 달군다매듭 달 지는 해에 아쉬움 실려 보낸오늘은 엄동설한 눈 속에 서기로운섬광이 꽃으로 피어 희망을 섞고 있다세상의 기준 속에 자신을 가두지 마라자연에 봉헌하는 서정과 순수만이고단한 삶의 이력에 발자취로 남는 것주님, 평소 소원한 이웃과 가족들에게옹졸했던 마음 모아 용서를 청하오니새해엔 달 뜬 마음을 다스리게 하소서모진 설한의...
이상목
God, where are you? 2024.01.02 (화)
어느 추운 겨울날 새벽 4시 30분쯤. 출근길에 bus shelter를 지나는데, 어떤 사람이 시멘트 바닥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homeless guy인 것 같았다. 살펴보니 흐트러진 갈색 머리의 젊은이가 누워있는데 그는 얇은 천으로 된 검정 상의와 파란색 하의 그리고 흰색 양말만 신고 있었다. 그의 허리와 발목은 속살이 다 드러나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았다. 그 순간 그의 몸이 요동치는 바람에 나는 움찔하며 놀라고 말았다. 그는 상체를 비틀다가...
愚步 김토마스
며칠 뒤 한국으로 떠난다는 김시인을 만났다.왜 떠나려 하느냐는 말에 그는 말했다.“여기는 더 이상 외로워서 못 살겠어요.”그의 입에서 ‘외롭다’는 말을 들어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그는 늘 외로워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정작 외롭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여름 한 철에는 정원 가꾸는 일을 노는 날도 없이 하다가 낙엽이 지는 가을이 오면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곤 하였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면 ‘여기는 티베트입니다. 네팔입니다.’ 하다가...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