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품위 있고 평안한 삶의 마무리

최낙경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6-04 10:37

최낙경 / 캐나다 한국문협
  지난주 대학 동기 모임에 참석했다. 56학번이니 62년이란 세월이 흘러 간 셈이다. 모두 들 새하얀 머리에 세월의 골이 깊숙이 파인 주름살로 산수傘壽를 바라다보는 모습들인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던 지난 세월만큼 시간이 흐른다면 내 나이는 124세. 그때 나는 이 모임에 분명 참석하지 못하리라. 게다가 나와 같이 82세인 사람이 겨우 91,308명이 살아 있다니. 나의 죽음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 서성이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소름이 돋았다. 한 치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투성인 것이 삶이라지만 죽음은 이처럼 확실한 것으로 다가 선 것이다. 그런 죽음에 나는 무감각하고 몽매하다. 지난해 거처를 옮긴 노인 시설인 실버타운에서, 평균 연령 84세의 입주자들과 함께 어울리면서도 죽음이란 단어는 아예 입에 담기조차 터부시하고 있다. 
  우선 우리의 죽음의 환경은 어떠한가? 지난해 집에서 숨진 사람은 전체 28만 827명의 15.3%에 그치고, 반면 74.9%가 병원 객사客死가 대세大勢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기 환자 등 임종에 이르면 하나같이 자기 집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늘어놓는 다는데... 그들은 예부터 내려오는 오복五福중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을 떠 올린 바람이 아녔을까? 그러나 집에는 그를 간호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객사나 비명非命이 아닌 편안하고 사랑 받는 장소에서 죽음을 맞고 싶다는 것, 요즘 말로 품위 있는 죽음을 호소하는 것으로 각인된다. 선진화된 호주濠洲에서는 환자의 아픔을 돌보며 가족과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다소간 가볍게 떠날 수 있게 도와주는 호스피스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호스피스마저 턱없이 부족하여 언감생심. 거이 대부분은 홀로 찬바람이 으스스 깔린 어느 병원의 언저리에서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너무나도 무섭고 외로운 정신적 혼란에 몸부림치며 맞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거쳐야 하는 처절한 삶의 마무리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65세 이상의 노인 가운데 20.8%인 138만 명이 가족 없이 홀로 사는 홀몸 노인들이다. 한해 4% 넘게 늘어나고 지난해는 노인 고독사가 835명으로 최근 4년간 80%나 크게 늘어났단다. 노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서도 자살이나 홀몸노인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환경에다 준비 없이 100세 시대를 맞는 오늘의 노년은 거이 10년 여의 세월 동안에 병원을 드나들며 서서히 기운을 잃고 쇠약해지면서 가늠키 어렵고 지겨운 나날을 이어 갈 뿐인 것이다. 그들은 마지못해 법적이고 가족, 친지, 주변의 버거운 어려움을 알면서도 자살이라는 유혹에 홀리게 되었으리라. 죽는 길마저 자유롭지 못하여 괴롭고 슬픈 지경인 것이다. 
  그나마 이러한 환경에서도 우리 주변에서는 마지막 삶을 편안하게 마무리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1998년 최종현 SK회장이 재발한 폐렴의 항암 치료를 거부한 채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였고, 소설가 박경리는 항암치료 대신 마지막 순간까지 시詩를 써서 임종한 그 해에 시집을 출간했다. 2009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은 인공호흡기를 포함한 일체의 생명연장 조치를 거부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인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도 피부암이 악화되자 10여 일 동안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했다. 또한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장례식도, 수의壽衣도, 관도, 자기 저서의 발간도 모두 거부하는가 하면 죽으면 곧바로 화장을 주문하면서 삶을 마무리한 법정스님도 있었다.
  며칠 전 “104세의 호주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베토벤 9번을 들으며 잠들다”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는 아직도 병은 없지만 건강이 갑자기 약해졌다며 더 이상 살기를 원하지 않았다. 해서 조력사가 인정되는 머나먼 스위스로 갔다. 가까운 가족, 친지들과 베토벤 9번을 틀고 고별 연을 갖는 자리에서 병원이 처방한 치사 약을 주사기에 연결된 밸브를 손수 열어 삶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죽는 것보다 죽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게 진짜 슬픈 일”이라며 “노인의 조력자살 권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조언助言을 남겼다. 이를 계기로 조력자살을 비윤리적이고 생명경시輕視라는 반론을 잠재우고 자기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그야말로 우리의 고종명 보다 더 진화된, 품위 있고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기폭제起爆劑가 되기를 기대하며 두 손을 모은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홍안에서 노안으로>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이에 비해 어려 보여 난처했던 적도 꽤 있었고, 나이 들어서는 비교적 젊게 보니 마음이 흡족할 때도 있었다.20대 초반 제대 후 복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경기도 안양시 어느 변두리를 걷고 있었는데, 불량하게 보이는 학생 세 명이 나에게 다가와 돈을 내놓으라고 했다. 한 명은 체격이 작았지만 뒤에 2명은 보통 체격...
이형만 외 2인
<고귀한 분실>  해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단풍 꽃이 필 때면 우리 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다. 이 고마운 손님은 산란기가 되어 수많은 어려움과 난관을 헤치고 목적지인 모천까지 무사히 회귀하는 연어들이다. 알을 낳기에 가장 좋은 장소를 찾아 먼 바다에서부터 거센 강줄기를 거슬러 하천 상류 얕은 물가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겹다. 연어에게 주어진 태생적 생존 본능이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양현석 외 2인
  팔루스는 사진 모임에서 매년 세 네 차례 출사를 가는 곳이다. 팔루스는 미국 아이다호 주 서부 맞닿은 워싱턴주 동부에 위치한 밀밭 곡창지대이다. 구릉과 평원으로 끝없이 펼쳐진 이 곳의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다. 새싹이 돋는 봄은 출렁이는 물결처럼 갓 태어난 푸른 밀들이 춤을 추고, 여름이 다가오면 노란 유채꽃들과 푸른 밀들이 축제를 벌이고, 가을엔 밀들이 베어진 대지가 마치 전라의 여인처럼 본래 대지의 아름다운...
박광일
그래도 봄은 온다 2024.03.25 (월)
경칩 지나 춘분으로가는 길모롱이 언덕 바지에불현듯 반짝이는보라 빛 고운 웃음소리긴 긴 겨울 잔인한 혹한 속에서그래도 봄은 온다고옹기 종기눈 녹은 양지녘에 모여 앉은여리고 작은 제비꽃 가족반짝이는 보라 빛 비단 실 입에 물고대지 위에 점점이희망이란 단어를 환하게 수 놓고 있다
임완숙
니스에서 3박 4일 2024.03.18 (월)
프롤로그쓰레기와 개똥이 널려 있는 지저분한 도시, 니스Nice의 첫 인상이다.트램 역에서 예약한 호텔로 걸어가는 길은 지중해의 아름다운 도시라는 환상에서 깨어나게 한다. 역 주변엔 노숙자와 개가 퍼 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 있어 개똥과 쓰레기 투성이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상황은 심각해 발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주의가 필요하다.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도착한 숙소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고 종업원은 친절하다. 프랑스 말을 알아들을 수는...
강은소
3월의 일기장 2024.03.18 (월)
펼쳐보니뒤척였던 적보다 구겨졌던 적이 더 많았군요먼지 투성이로 처박혔던 것보다 나았다고혼자 위로도 해보지만눈 보라 쳤던 겨울밤에 웅크리던 낱말 들다시 덮을까요?여전히 봄은 멀어 보였죠나무 밑 다람쥐가 조심스레 도토리를 오물거리네요가난한 위장을찌그러졌던 속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듬더군요햇살이푸른 햇살이돌돌 말려 올라간 꼬리에 머무네요잔잔하게 바라봅니다조용히 덮었어요그리고 너덜거리는 일기장을 햇살에...
유장원
오래된 마음 2024.03.15 (금)
1‘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푸시킨의 시가 서두에 놓인 기사였다. 퇴근을 앞둔 마지막 교정이었지만, 이미 야근이 계속된 터라 피곤이 몰려왔다. 고골이 푸시킨을 200년에 한번 나올법한 작가라고 치켜세운 부분에서는 집중력을 잃고 교정지 위에 빨간 펜으로 기다란 선을 긋고 말았다. 그러다 나의 관심을 끈 건 뜻밖에도 푸시킨의 아내였다. 푸시킨은 러시아 상류층 사이에서 미인으로 소문났던 나탈리아 니콜라예브나...
고현진
추억 (안녕) 2024.03.08 (금)
  김회자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창가에 앉아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비 소리에 섞여 흘러가는지    그리움이 강이 되어  가슴을 흔들어 놓고 한 줄기 빛처럼 비추는  지난날의 추억들이 퐁당퐁당 떨어진다   나를 과거로 이끄는  그리고 나를 현재로 되돌린 비의 속삭임이여 안녕.
김회자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