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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는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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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5-07 08:43

송무석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이 세상 생명에 꼭 필요한 것은 태양 에너지와 산소와 물, 그리고 영양분이다. 먼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하는 플랑크톤이나 식물에서 먹이 사슬이 시작된다. 그러니, 태양 빛은 모든 생명에 꼭 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빛이 없는 캄캄한 깊은 동굴 속에 사는 생명이 있다. 만약 지구 에너지의 근원인 태양 빛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지구는 엄청 추워질 것이다. 그 정도로 지구 온도가 낮아진다면 햇빛 없이 살아 시각이 완전히 퇴화한 생명체도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산소 없이 존재하는 경이로운 생명체도 존재한다. 이런 생명체는 발효와 무산소 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구가 초기에 산소가 없는 곳이었으니 멸종하지 않았다면 그런 생명체가 당연히 존재할 수 있으리라.
이런 햇빛이나 산소 없이 사는 생명체보다 더 발견하기 힘든 것이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체이다. 모든 생명은 바다에서 시작됐다고 생물학에서 말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지역은 아타카마 사막이다. 여기에서도 생명(조류(藻類))이 발견됐는데 물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새벽에 응축된 수분을 이용한다. 1) 그러니, 물속에 살지는 않더라도 전혀 수분이 없이 사는 생명을 적어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런 모든 생명에 꼭 필요한 물을 나는 생명을 죽이기 위해 사용한다.
늦가을부터 봄까지 밴쿠버는 비나 눈이 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더 많다. 그래서 북위 50도에 가까운 높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온화한 겨울 날씨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 온화한 날씨는 우리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의 생존에도 마찬가지로 좋다. 특히, 올해같이 큰 추위 없이 겨울이 지나가니 3월이 되기 전에 파리, 모기가 날아다닌다.
우리 집은 주차장 진입로(driveway)는 물론 집 둘레 전체가 빨간 벽돌이 깔렸다. 이 벽돌로 만든 보도는 보기에도 예쁘고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된 진입로보다 수명도 훨씬 길다. 하지만, 문제는 잡초이다. 봄이 오기 전부터 채 1cm도 되지 않는 벽돌 틈 사이로 빼곡히 이끼가 생기고 곳곳에 잡풀이 돋아난다. 그래서, 맑은 날씨가 지속하는 5월경에는 이끼 제거용 세제와 뻣뻣한 비를 써서 이끼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이 이끼 못지않게 귀찮은 녀석들이 바로 벽돌 틈도 마다하지 않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잡초들이다.
보도는 처음 설치할 때는 “Magic Sand” 같은 벽돌 틈을 메워 단단히 조여주고 잡초 성장을 막아주는 모래처럼 보이는 중합체를 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중합체가 떨어져 나가고 잡초들이 제 세상을 만난다. 벽돌 사이를 다 파내고 중합체를 다시 부어 넣기는 힘들 뿐 아니라 이 중합체가 인체 유해 물질이니 다시 채워 넣기도 꺼림칙하다. 그래서, 제초제를 사다 분무기로 뿌려 보았다.식초 같은 그 냄새도 싫을 뿐 아니라 몸에 유해하고 환경에도 나쁜 제초제를 계속 쓰고 싶지 않아 나중에는 꼬챙이로 하나씩 잡초를 제거했다. 수백 개도 넘는 많은 잡초를 쪼그리고 앉아서 뽑자니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너무 허리도 아프고, 힘들었다. 무슨 방법이 없나 궁리하다 갑자기 채소 삶는 게 떠올랐다. 그래서, 뜨거운 물로 제초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꼭 옷걸이에 옷을 건 채로 다리는 증기다리미처럼 생긴 증기를 활용하는 제초기가 있었다. 200~300달러 하는 장비를 일 년에 몇 차례 쓰자고 사기도 싫고, 장비를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물을 끓여 부으면 환경 오염 없이 깨끗이 보도와 주차장 진입로에 마음대로 자라는 모든 식물을 죽일 수 있는 데 어떻게 장비 없이 할 방법이 있나 모색했다. 집에 있는 조리 도구 중에서 가장 알맞은 것은 전기 주전자였다. 햇볕 따사로운 날을 골라 나는 집 밖 수도에서 전기 주전자에 물을 받아 집 외벽에 있는 전기 콘센트에 꽂아 물을 끓였다. 그다음 보도나 주차장 진입로에 잡초가 머리를 내미는 곳마다 물을 조금씩 부었다. 뜨거운 물에 데쳐지는 채소처럼 잡초들은 힘없이 쭈그려 들었다. 이런 식으로 이십여 차례 주전자에 물을 끓여 잡초에 부었다. 다음 날 잡초들은 모두 하얗게 변해 죽어 있었다. 물론 잡초는 한 번 없앤다고 다 사라지지는 않는다. 한두 주 뒤엔 다시 어디서 나타났는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나의 노력을 비웃는다. 그러나, 나는 이제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손쉽게 녀석들을 없애는 방법을 안다. 여름에 두세 차례 보도와 주차장 진입로에 자라는 풀들에 뜨거운 물세례를 주면 꼭 보기 싫은 잡초 걱정은 더는 없다. 또, 나는 집 벽 바로 옆에 땅을 파고 성가시게 하는 개미에게도 같은 방법을 쓴다. 개미집 속으로 뜨거운 물을 부으면 굳이 살충제를 쓰지 않아도 개미가 없어진다. 올해도 나는 환경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면서 또 뜨거운 물로 잡초와 개미를 없앨 것이다.
물은 모든 생명에 가장 소중한 것 중의 하나이다. 아무리 뜨거운 여름 햇살도 즐기면서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던 잡초도 결국 물이 없으면 죽고 만다. 하지만, 거의 모든 생명이 팔팔 끓는 물을 부으면 죽고 만다. 생명을 지키고 기르는 물이 끓으면 살생의 수단이 되는 셈이다. 온기는 생명에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뜨거우면 죽임의 무기가 된다. 생명을 죽이는 뜨거운 물은 내게 중용(中庸)의 미덕을 생각하게 한다. 물처럼 아무리 생명에 소중한 것이라도 알맞아야 함을. 정원 관리가 즐거운 소일거리이기도 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정원에 잡초 하나 보이지 않게 또는 낙엽 하나 뒹굴지 않게 관리하려면 정말 수월한 일이 아니다. 그런 고생을 하다 보면 몸이 아프고 아예 집 관리 자체가 신물이 나기도 한다. 지나치지 말자. 생명에 필수인 온기와 물조차 생명을 죽일 수 있는 데 적당함을 알고 완벽을 추구하는 무리한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 몸에 좋다는 식품도 보약도 그것만 지나치게 먹으면 결국 해가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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