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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그리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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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8-05-01 08:44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주말 모처럼만에 문협 모임에 나가 오랜만에 반가운 문우들과 담소를 나누고 돌아왔다. 첫 화두로 나눈 것이 한국어의 순 우리말 가운데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중요단어들은 대부분이 1음절이며, 또한 ‘ㄹ’받침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다리로 걸으면 ‘길’이 되고, 손으로 써 내려가면 ‘글’이 되며, 생각을 담아 입을 열면 ‘말’이 되는 것이다. 내 정신을 ’얼’이라고 하며 내 모습은 ‘꼴’이라 하니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면 ‘얼꼴’이 되고 시간이 흘러서 ‘얼굴’이란 단어가 된다. 이밖에도 ‘날’이 가고 ‘달’이 가고, ‘물’마시고 ‘별’을 헤고, ‘들’에 나가 ‘불’을 피우고, 비를 피해 ‘굴’안에 들어가 ‘돌’을 베고 잠이 든다는 문장이 쉽게 가능한 것이다. 조금만 더 확장해서 생각해보니 옛날 나라의 임금이 두루 인재를 등용하려 했을 때, 그 기준을 ‘신언서판(身言書判)’에 둔다고 했는데 이것도 순 우리말로 순서를 조금 바꿔서 써보면 ‘말,글,얼,꼴’이 되는 셈이다. 결국 우리 삶의 최고 가치와 목표들은 ‘ㄹ’받침 한 음절 가운데 다 담겨 있었던 것이라고 표현하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오늘은 그 가운데 첫번째 순서로 ‘길’과 ’글’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생을 길에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진부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人生’의 한자 의미를 파자(破字)해보면 상당히 깊은 경계와 삶의 교훈이 숨겨져 있었다. ‘生’자를 풀어서 들여다보니 한’一’자 위에 소’牛’자가 쓰여져, 네발 달린 소가 외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형상이 된다. 참으로 우리 사는 인생길을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한번은 여행을 좋아해서 지구 위에 수많은 곳을 방문하고 다양한 코스를 혼자 걸어본 친구에게 가 본 곳 중에 어느 길이 가장 좋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물론 어리석은 질문이었지만 친구의 대답은 의외로 신선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무작정 걷고 있다 보면, 갈래길이 나오고 그곳엔 반드시 이정표가 있어서 일러주는 대로 걷기만 하면 되었다고… 우리 인생길이 그러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고… 문득 “내가 걸어갈 때 길이 되고 살아갈 때 삶이 되는” 이라는 가사의 노래가 입에 맴돌았다.



아무리 좋은 길도 내가 직접 내 발로 걸어가지 않으면 잡초 무성한 풀밭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글’도 그러하리라. 글에 여러가지 등급이 있다면 글 짓는 이에도 등급이 있을 터이다. 옛날 두주불사로 유명하던 조지훈 시인이 ‘주당’의 등급을 매긴 것에 빗대어 글쓰기의 등급을 재미 삼아 매기어 본다.

7급: 글을 아주 못 짓지는 않으나 안 짓는 이

6급: 글을 짓기는 하나 겁내는 이

5급: 겁내지는 않으나 혼자 숨어 짓는 이

4급: 무슨 잇속이 있을 때만 글을 짓는 이

3급: 이성에게만 글을 지어주는 이

2급: 잠이 안 와서 일기와 잡문만 쓰는 이

1급: 글의 경지를 배우는 이

초단: 글짓기의 취미를 맛보는 이

2단: 글짓기의 참된 경지에 반한 이



그러다가 7단쯤 가면 글에 공들이다 병을 얻어 글을 보고 즐기기만 하게 되고, 마지막 8단에 가서는 글로 말미암아 다른 글 세상으로 떠나게 된다고 하였으니 이쯤에서 냉정하게 나의 등급을 스스로 평가해보자면 아직은 6급과 5급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떠난 그 길에 벗이 있다면 외롭지 않으리라는 생각과 함께 ‘길벗’만큼 소중한 것이 또한 ‘글벗’ 이리라는 생각을 하며 주말 외출을 마치고 귀가했다.





부기: 27일, 두 정상간에 그동안 막힌 물꼬를 트는 새로운 ‘길’을 내고, 서로 하나되는 약속을 담아 역사적인 ‘글’을 써서 교환하기를 염원하는 마음 담아 글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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