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참새와 제비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4-10 16:25

김춘희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참 오래전에 캐나다 동부 몬트리올에 살 때의 우리 집 어느 해 여름 풍경이다.

하필이면 제비가 왜 그 자리에 집을 지었는지 모른다. 우리 집 앞에는 큰 고목나무가 그 옆으로도 키가 큰 나무들과 마당을 감싸 안은 담쟁이 나무들 때문에 우리 집은 마치 숲속의 집 같은 분위기였다. 게다가 집이 단층이다 보니까 새들이랑 다람쥐들이 아주 겁 없이 우리 집을 넘보았다. 문을 열어 놓으면 다람쥐가 집안에 들어오려고 하질 않나 새들이 벽난로 굴뚝으로 뛰어들어오질 않나, 한여름이면 유리창이 보이질 않아서 새들이 머리를 박고 유리창에 박치기하여 자살하는 놈들도 있고 아무튼 한여름만 되면 새들과 다람쥐들 때문에 꽤 신경 쓸 일들이 있었지.

나무가 많으니 벌레도 많았고 또 벌레를 잡아먹는 새들이 모여들어 한여름 우리 집은 자칫 숲속에 자리 잡은 벌레와 새, 다람쥐들의 쉼터요 먹거리 풍부한 집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비들이 집 입구 문 위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못 짓게 하는 방법도 없고 또 있다 해도 그들 사생활에 인간이 함부로 간섭할 수도 없어서 못 본 척 내 버려두었다.

제비들은 바빴다. 두 놈이 서로 지푸라기를 주어 모아들였다. 진흙을 개어 찌푸리기와 함께 섞어서 집을 짓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제비는 집 짓는 공사 솜씨가 보통 수준 이상이라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정교하게 털실로 짠 모자를 아래위로 뒤집어 놓은 형상이었다. 아래쪽으로는 둥근 듯하며 끄트머리는 깔때기 모양이었고 위로는 작은 사발을 놓은 듯 그렇게 예쁘고 정교한 모습이었다. 드디어 제비들은 알을 까고 어느새 새끼들이 그득 집을 채웠다. 그해 여름 나는 제비들 때문에 한동안 행복했다. 문 바로 위에 집을 지었어도 우리 식구들이 드나드는 것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래서 우린 서로 쳐다보며 서로 방해하지도 않고 즐거운 여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가 했더니 제비들은 어느새 모두 다 자기들 갈 곳을 찾아 떠나 버렸다. 겨우내 새집은 비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고 라일락 향기가 온 동네를 휘감으며 향기를 퍼드리던 어느 날 비어 있던 제비집에 새 손님이 들어 왔다. 이번엔 제비가 아닌 참새들이었다.

참새들은 자기들이 지은 집도 아닌데 남의 집에 들어와 살림을 차렸다. 제대로 잘 꾸며진 제비집에 자기들 식으로 다시 내부 수리를 하는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이었다. 지푸라기들을 엉성하게 물어 와 자기 둥지를 치고 있었다. 바쁘긴 왜 그리도 바쁜지 지푸라기를 쓸 만큼만 물어 오는 것이 아니라 마구 물어와 둥우리를 치고 있었다. 새집은 문 바로 위였기 때문에 어떤 때는 찌푸리기가 머리 위로 떨어질 때도 있고 아무튼 제비와는 달리 참새들은 말도 많았고 지저분하게 일을 했다. 부지런을 떨며 수선스럽게 집을 다 지어 놓고는 알을 까고 새끼들이 생겼다. 이제 참새 부부는 먹을 것을 쉴 새 없이 물어 와 새끼 참새들을 먹이는 일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어찌나 엉성하게 둥지를 쳤는지 하루는 참새에게 큰 불행이 닥쳤다. 새끼 한 마리가 엉성한 지푸라기 둥지에서 잘못하여 땅으로 떨어져 죽었다. 이틀 후에 또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

남의 집에 들어가 제 둥지를 다시 틀어 집을 지은 참새는 여러 가지로 실수를 한 것이다. 함부로 남의 집에 들어간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참새는 자기가 참새란 것을 잠시 잊은 것이다. 남이 잘 쌓아 놓은 집을 자기 것인 양 들어간 참새는 처음부터 잘못 판단한 것이다. 또 하나 잘못된 것은 남의 집에 무단히 들어가 놓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다시 그 위에 둥지를 틀은 것도 잘못된 것이다. 자기 새끼들과 거처할 공간이 넉넉했어야 했는데 그 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공간은 비좁았고 새끼들이 자라면서 지푸라기로 엉성하게 지은 둥지는 안전성이 없었다. 새끼들이 땅에 떨어지는 비극을 맛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참새 부모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꽃 가게를 하는 교민이 있었다. 갓 이민 와서 일자리를 찾던 한인 이민자를 딱하게 여기고 그에게 자기 꽃 가게에 직장을 제공해 주었다. 꽃에 대한 경험이 없는 고용인에게 꽃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그리고 꽃 도매 시장에서 어떻게 사와야 하는지 꽃 사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 선한 꽃가게 주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렇게 일 년간 열심히 가르치고 배우고 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고용인은 꽃가게를 그만두었다. 주인은 많이 섭섭했다. 앞으로 자기 가게의 매니저로 쓸 생각을 하며 열심히 가르쳤는데 하루아침에 가게를 그만둔다는 것이었다. 꽃가게 주인은 고용인을 붙들 힘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 되어 그 고용인은 꽃가게를 그만두고 바로 그 꽃가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같은 길에 똑같은 꽃가게를 차렸다. 새로 꽃가게를 차린 그 사람에게 법적으로 잘못된 점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먼저 지은 제비집에 들어가 안 주인 노릇 하는 참새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몬트리올 그해 그 여름 제비집 추억을 반추하며 새 주인들이 참새가 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