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측은지심

김베로니카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4-04 08:44

김베로니카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이른 아침 하늘은 오랜만에 붉은 노을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여명의 빛을 선물한다. 유난히도 많은 비를 뿌린 이 겨울도 다해 가는지 며칠 전부터 찬란한 햇빛이 영혼의 축축함과 회색의 찌든 때를 씻어 내가는듯하다. 멀리보이는 산에는 하얀 눈이 병풍처럼 펼쳐있고 한가롭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새들, 그리고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인들이 느리게 걸어가고  옛날 어느 날의 내가 그 장면 속에서 같이 어울려지는 듯한  그런 평화로운 날이다.
  
 앞집에는 매일 아침 아이를 맡기러 오는 젊은 엄마가 있다. 오늘따라 아이가 엄마를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지 한참을 아기를 안고 애쓰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와 함께  엄마가 가는 차를 향해서 손을 흔들곤  갑자기 뛰기 시작한다. 이제 2살 정도인 그 아이는 차도를 향해 뛰어가고 놀란 할아버지는 그 뒤를 쫓아가는데 어찌 빠른지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면서 혼자 마음을 졸이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귀여워 내려가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내 입가에 미소를 불러오는  그런 풍경들을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청소차들도 열심히 그들의 일을 시작한다. 혼자서 운전도 하고 내려서 또 쓰레기를 비우고 어떤 젊은이들은 차 옆에 매달려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자기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 그런 험한 일을 마다않고 일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하면서 미안하기 조차하다.

 사람들은 저 나름대로의 길을 가고 있지만 지고 가는 십자가가 이젠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이웃이 사랑스럽고 고맙다. 한 밤중에 들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깨도 뒤에서 수고하는 사람들과 위급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또 짧게 기도라도 올릴 수 있는 내 자신에게 감사한다.

 ”측은지심”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는 “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 남을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하며 부끄러운 마음이 있어야하며, 사양하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한 맹자의 사단 설에 나오는 좋은 마음이다. 젊은 시절엔 뭐가 그리 바쁜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지도 사물을 바라보지도 못했다.

 거리에 나서면 많은 불쌍한 사람을 만난다.
차가 네거리에 정차해 있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보이는 노숙자들, 그들을 외면하기엔 마음이 편하질 않다. 

 얼마 전 늦은 밤이었다. 그 시간엔 노숙자들도 다 잠자리를 찾아들어가고 거리에는 사람도 뜸한 시간인데 신호등 앞에 어떤 초라한 차림의 남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에 내려서서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저녁도 해결하지 못 한 듯 그 모습이 너무 절실해 보였다. 마침 나도 그 사람하고 가까운 위치에 차를 정차하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호가 바뀌면 떠나야하는데  마음은 급해지고 얼마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 순간 손에 마침 지폐 한 장이 잡혔다. 급하게 창문을 열고 그에게 손을 내미니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사실 가끔 그런 일이 있어도 눈을 마주하면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드물었다기보다 피했는지도 모르지만 그 날은 서로 눈을 마주하면서 서로에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나도 좋은 밤 보내라고 서로 주고받은 그 인사말이 순간 나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그날 밤 자리에 누우니 내가 베푼 작은 정성이 저녁을 못 먹어서 허기진 한 사람에게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행복했다

 자선을 베풀 땐 사랑이 가득 찬 눈빛으로 눈과  눈을 맞추면서 마음에 담은 자선을 베풀라고 하신 교황님의 말씀을 실천 해본 좋은 밤이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 친다는 것 어쩌면 어색할 수도 있지만 그냥 생각 없이 집어던지는 그런 도움보단 “당신을 사랑 합니다” 하는 진심어린 눈빛이 그들에게 큰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있었나보다.

 이젠 한걸음 물러서서 내 주위를 살펴보고 내가 처한 모든 상황에 감사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눈을 가지고 싶다. 용기를 내서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노인들의 짐을 들어주고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과 같이 횡단보도도 같이 건너 주고 가끔 버스에서 잔돈이 없어서 당황해하는 사람에게 동전도 내어주는 그런 작은 배려를  실천해보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라는 측은지심의 마음을 가지고 주위를 바라보면서 남은 내 생을 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