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거리마다 수북이 쌓여있던 흰 눈이 녹아 내리고, 누런 잔디가 어색한 듯 고개를 내민다. 요 며칠 봄볕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틈에 더 따뜻하고, 환하게 세상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눈을 가지고 놀던 아이들의 얼굴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아쉬움이 드리워져 있다. “눈이 다 어디 갔지? 지금은 겨울이에요? 봄이에요?” 파란 눈을 반짝이는 아이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묻는다. “봄이 오는 중이야.” 나는 아이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다정하게 말해주었다. “주디는 겨울이 좋아요? 봄이 좋아요?” 아이가 다시 묻는다.
‘글쎄……’
아이들은 하늘에서 흰 눈이 선물 같이 내리고, 크리스마스가 있고, 따뜻한 핫 초콜릿을 홀짝이는 겨울이 마냥 좋기만 한 모양이다. 겨울을 보내는 마음이 못내 서운한지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바라보며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는 그렇게 겨울과 작별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겨울을 보내는 아쉬움도 금세 뒤로 한 채 물웅덩이 위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까르르 명랑한 웃음을 토해냈다. 눈이 녹아 내리고 한결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쓸고 지나갔다. 아이들에게 찾아온 봄은 내가 느끼는 봄과는 사뭇 다른 듯하다. 아이들에게 봄은 겨울을 밀어내고 찾아온 뜻밖의 친구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다가올 봄은 고단한 하루를 살아내게 하는 소망의 창이었고, 긴긴 기다림 끝에 당도하게 될 영광의 날이었다.
유난히 추울 거라는 겨울을 나기 위해 두툼한 점퍼와 털 부츠를 장만했었다. 그러나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는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갑기만 했다. 그것은 비단 혹독한 추위 탓만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인간 본연의 쓸쓸함과 외로움 때문이었고, 인간에 대한 신뢰의 상실과 정신의 세속화로 인한 갈등이 마음속에서 눈 폭풍을 만들고 있었던 탓이다. 인간은 덧없이 떠도는 차디찬 상념을 끌어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눈물이 고인 마음은 쉽게 얼어붙기 일쑤였고 때때로 몰아치는 칼 바람은 살점을 도려냈다. 나는 한겨울의 추위와 그렇게 마주할 때면 나무가 부러웠다.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한 방울의 물도 아낌없이 뿌리로 흘려 보낸다. 만약 자신의 가지 끝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라도 더 소유하려 들었다면 나무는 그로 인해 겨울을 이기지 못하고 못내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존재의 온전함을 바라는 나무는 때를 따라 비울 줄 알고, 다가올 때를 준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봄이 오면 다시 싹을 틔우고, 잎을 푸르게 물들이며 보기 좋고 맛 좋은 열매를 품는다. 위대한 자연 앞에 서서 한껏 작아진 자아와 대면할 때면 나는 부끄러움에 곧잘 고개를 떨구곤 한다. 그러나 살아서 다시 봄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뿌듯한 일이다. 나무처럼 온전히 비울 수 없어 마음에 남아 있던 물기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진창이 되기 일쑤였지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늘 새로운 길을 제시하며, 기나긴 겨울을 얼어 죽지 않고 견디게 해 주었다. 나무처럼 고고하고 위엄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봄을 맞이하는 모든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지난겨울은 너무도 혹독했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더욱 간절했다.
“주디는 겨울이 좋아요? 봄이 좋아요?” 아이의 물음에 나는 비로소 입을 연다.
“추운 겨울 뒤에 오는 봄, 그 봄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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