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 늘산 박병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필요에 따라 존재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모기나 파리도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써리에는 야생동물들이 많이 산다. 그 중에 하나가 청설모다.
이놈들도 제 방식으로 살아가는 동물이겠지만 나에게는 성가신 존재 중에 하나다.
과일을 따먹는 것을 시작으로 씨로 넣어 놓은 콩도 파내 먹으며 내가 좋아하는 라즈베리 딸기도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지금 놈들과 지혜 겨루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담장 위를 뛰어 다니기에 올가미로 잡기도 하고 틀을 놓기도 한다.
틀은 철사로 되어 있고 안쪽에 땅콩을 갈아 넣어 놓으면 냄새를 맡고 들어가다가 발판을 밟을 때 문이 닫히게 되어 있는 함정이다.
아침에 무심코 건너다보는데 무엇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얼른 망원경으로 살피니 청설모 한 마리가 틀에 와서 서성거린다.
맛있는 땅콩냄새를 맡았는데 들여다보니 한쪽이 열려 있다.
청설모도 제 나름대로 생각하는 듯하다.
‘이것은 내가 늘 먹이를 찾아 먹는 환경과는 완전히 다르다. 철장 안에 먹이라----. 나무에 달린 것을 따먹거나 익어 떨어진 것을 주워 먹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데 고소한 냄새가 오금을 저리게 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는 모양이 약간 불안한 기색.
한 바퀴 돌아보고는 담장위로 올라간다.
한참 가만히 있더니 다시 내려선다.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옳지 잡히는구나. 숨을 죽이며 바라보는데 한참 있다가 어럽쇼 다시 돌아 나와 담장으로 올라간다. 바로 앞에 맛있는 먹이를 두고 돌아 나오다니.
조심스럽기가 보통이 아니다.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다.
한 번 더 오르내리기를 반복한 후에 또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드디어 덜커덩 문이 닫혔다. 후닥닥 놀라 뛰어 보는데 그의 생은 이미 거기서 끝난 것이다.
먹는 유혹이 죽음보다 더 강한 걸 어쩌랴.
고위 공직자가 먹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당하는 걸 수없이 보게 된다. 장관 후보자가 추천되어 청문회에 이르면 위장 전입이다 교통법 위반이다 논문 표절이다 문제가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흠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도리어 이상한 눈으로 보는 시대가 되지 않았는가 한다.
모든 생물이 본능적으로 살아간다면 인간은 본능적인 유혹을 넘어 탐욕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린다. 진정 끝을 모르는 탐욕이다.
안에서는 몰랐는데 밖에 나와서 바라보니 보이는 것이다.
어떤 부서의 고위 공직자들이 단체로 해외 출장을 갔다고 한다.
모두들 돌아 올 때 부인들을 위하여 선물을 준비해 왔는데 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왔고 출장비 남은 것을 반납하였다 한다. 그런데 부인들이 모여 담소 하다가 선물을 받지 못한 부인이 이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융통성 없는 남편과 살기 싫다고 이혼을 했다는 소식이다.
부패 공화국, 우리 공직 사회에 아직 청백리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한때 나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식욕과 성욕, 어느 욕구가 더 강력할까 생각해 본적이 있다.
먹는 게 우선이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성이 우선이라 한다.
흉년에는 먹는 게 우선이라 하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Sex 할 때에는 먹는 게 생각나지 않고 식사 중에는 그 생각이 나니 성이 우선이라고 하면 어떨까.
그런데 이 가설이 요즈음 정리 되었다.
먹는 게 우선이고 또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걸 발견했다.
나에게는 100세가 되신 어머님이 계시는데 지금 Care Home에서 생활 하신다.
이틀에 한번쯤 방문하는데 식사를 하거나 누어서 잠자는 게 일이다.
성이란 그의 생애에서 잊혀진 지 아득히 오래 되었다.
결국 우리는 먹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배를 채우고 나서 힘이 생기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란 결론을 얻었다.
세상살이란 유혹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것과 같다.
땅콩 냄새에 목숨을 거는 청설모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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