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일몰을 기다리며

서정식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8-02-19 15:49

서정식 / 한인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무술년 새해가 왔다. 모두 바라보고 싶은 새해 아침, 떠오르는 일출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앞으로의 바램과 지난 세월의 아쉬움이 교차한다. 여러 해를 지나며 밝아온 새해 첫날, 지나간 추억을 마음에 담은 채 새해에는 조국 땅 대한민국에서 모처럼 새해 첫날을 맞고 있다. 

일출 기회보다는 가까운 서해 일몰을 맞이라기 위해 여유로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새해 아침이 지난 오후 한나절, 눈에 밟히는 해안가가 사뭇 낯선 풍경이다. 갈매기 떼의 활기찬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몇 척 배뿐이다. 그저 일몰의 순간만을 맞으려 이곳저곳 다리품을 파는 자신의 모습이 왠지 낭망객 같다. 

나에게는 어딜 가든지 카메라가 늘 동행한다. 이곳 바닷가서 찾아볼 수 있는 젊은 사람들의 새해 첫날 모습이 이색적이다. 그들을 담아본다. 그리고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본다. 요즈음 한창 유행인 캠핑족의 생활 일상을 이곳에서도 목격하며, 그들에 대한 동경심이 유발된다. 현란한 색이 입혀진 캠핑카와 그 부속으로 따라다니는 자전거들, 또, 별채로써 사용되는 독립형 텐트 안에 설치된 B.B.Q 시설. 모두 완벽하다. 심지어 노래방 음향 시설까지도 갖추어진 이동식 문화 공간에 또 다른 부러움을 갖는다면 이상할까? 정말 멋진 젊은 인생들의 모습! 부럽다는 외마디 메시지를 미소로 대신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나의 모습에서 상대적인 쓸쓸함을 보게 된다. 

무작정 기다리는 일몰은 아직 이르다. 조바심도 난다. 언제나 일몰의 순간은 일출보다 짧게 연출된다. 일출 후에는 장렬한 빛과 함께 바라보는 하루가 시작되지만, 일몰 후 어둠 속에 사라져 가는 마지막 하루가 있기에 또 다른 매력이 있다. 

때마침 일몰이 한 편의 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소품 일부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 그림 같이 떠 있는 몇 조각구름, 그들과 함께하고픈 배 한 척의 모습도 서서히 그 곁을 향하고 있으니, 정말,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이 역시 장렬함이다. 흐뭇함과 만족감이다. 

그리고, 짧은 순간이 지나고 그들 소품이 제자리를 잡았다. 나의 카메라 앵글은 연신 분주했다. 한낮에는 젊은이들을 향하더니 밤에는 지는 태양을 향했다. 그 카메라는 진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의 한낮과 밤에 대해 수많은 기억, 일몰이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어는 순간 너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과 같은 기억들이다. 바로 이 하나하나의 기억들을 더 아름답게 만들고자, 사진기 앞에서처럼 의식적으로 나는 저무는 태양을 마주하고 서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하루를 다독인다 2024.02.12 (월)
하늘에 먹구름 한 점이 맘에 짙게 내린 어스름 같아바람이여 가져가라 했는데바람이 더디 온다고 구름은들먹들먹 울고 있다홀로 쏟는 속 울음이그리 쉬이 강이 되어 흐를 수 없어언젠가 올 바람을 기다리며두 손 모아 축축한 무릎그렁그렁 눈물로 씻는다마음에 창 하나 그려하늘가에 열어 놓고알몸으로 굴러야 했던 하루를바람결 이랑이랑 애절히 묻고가슴 비벼 문지르며썩어라, 아픔도 잘 썩으면꽃으로 피어나리버거웠던 하루를 다독인다
한부연
시인의 뜨락 2024.02.12 (월)
허퉁할 때 들여다보는 비밀의 뜨락이 있다몸집 가녀린 진달래가 머리숱 돋은 반송을 두르고실팍한 일본단풍 뒤 키만 껑충한 설악산 단풍나무 새강아지풀 같은 입술 내민 양버들까지다들 고꾸라질 듯 앞으로 몸을 내밀고 있다볕이 그리운 게다서녘볕이나마 온몸에 받고 싶은 게다고곡 방문길 노시인의 속주머니에 묻어와노수필가의 정성으로 틔운 고향 진달래병든 소설가의 퇴원길에 안겨온 희미한 분홍색 튤립제각기 다른 품, 다른 발길에...
김해영
전나무와 향나무 2024.02.12 (월)
   나무를 잘랐다. 앞마당에서 전나무와 함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었던 향나무였다. 이사 왔을 때만 해도 둘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가 지나 서로의 몸체가 불어나면서 향나무 가지가 전나무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향나무와 맞닿은 전나무 부분은 푸른색을 잃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향나무를 진즉 다듬어 주어 서로의 간격을 마련해 주어야 했다. 나무에 대해 잘 몰랐던 무지함과 게으름의 결과였다....
민정희
광교산 계곡에서 출발해 소리 없이 흘러온 물이 수문 앞에 다다라 소용돌이쳤다. 태양이 서포루(화성 서측 성벽 위 2층 누각) 너머로 뚝 떨어지는 순간, 사나운 포성을 질렀다.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하던 물이 일곱 홍예(화성의 북쪽 수문)를 지나 수직 낙하하며 갑자기 격정의 폭포수로 변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실개천보다 크고 일반 하천보다 작은 공간에 소망을 추구하는 사람, 우연의 재회를 꿈꾸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꿈들이 모여 방주의 천정...
박병호
   어린 시절 나는 눈을 참 좋아했다. 눈이 오는 날이면 동생과 뛰쳐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코끝과 손끝이 발개져서 집에 들어오면 갑작스레 따뜻해진 공기에 손발이 가려워 피가 맺힐 때까지 긁어 대곤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과 함께 눈을 굴려 가며 누가 더 큰 눈사람을 만들지를 겨루는 시간은 더없이 즐겁기만 했던 기억이다.  그 시절 눈이 오면 부모님이 “눈이 오네. 길 얼지...
윤의정
그림자 3 2024.02.05 (월)
한여름 고산의빙하를 감상하고내려오다 길을 잃었다초저녁부터브랜디와 와인을 걸친 산의 양 어깨는더욱 무거워 보였다어둠 속에서 혼자 싸우다 먹칠하다무사히 내려왔다​라면 끓여 허기 채우고산짐승 공포와 습기를 머금었던이슬 친 옷가지며 어두웠던 마음조차따사로운 모닥불에 털어 말렸다빠닥빠닥 말리고 훌훌 날려버렸다진한 커피 한 잔 마시고 선애써 잠을 청했다산 그림자 서늘하다 못해오싹한 밤이었다​날카롭게 흘기던외 눈 달빛...
하태린
봄이 오는 밤 2024.01.29 (월)
조용한 호흡이크게 느껴지는안식의 긴장이무의식의 시간을날 선 칼같이 새롭게 한다대지의 핏줄은이미 봄을 바로 집터 밑까지밀어 오고밤은 내일 터질 성벽을벼르듯 턱 밑까지숨이 차다가느다란 비가적막의 커튼을 드리우고어둠의 너머에새봄의 생기가아가의 숨골 위에새록 인다긴 여정 끝지난 모든 과실은겨울 추위와 얼은 땅거죽아래에서 모두 해체되어 다시준비되었다땅 밑의 수로는물길을 뚫어바로 봄의 축제를 대비했다모든 생명은 이제이해...
김석봉
밴쿠버에서 남들은 거의 다 가보았다는 멕시코 캔쿤 여행은 갑작스럽게 결정이 났다. 막내 딸과 아내 세 식구가 비행기를 탄 것은 작년 12월 11일이었다. 근래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할 때는 에어 캐나다 직원 가족으로 자리가 있어야 탈 수 있기 때문에 빈자리가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할인 가격으로 사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짜는 아니다. 공짜가 아니면 당당해진다. 비행기는 이륙 후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콜로라도...
한힘 심현섭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