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무릎 꿇은 어머니

김원식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7-11-17 15:51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 수필

지난 9월 5일 TV에 생중계 된 서울 강서구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에 관한 서울시 교육감과 강서구 주민 토론회가 열린 곳은 강서구의 어느 초등학교 강당이었습니다.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특수 학교 설립을 찬성하는 쪽과 설립을 반대하는 측의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측의 패널은 10명이나 되었으나 찬성하는 측은 장애인들의 어머니 4명 뿐이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청중들도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측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도 청중들의 반응에서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특수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측의 토론 패널 들은 너나 없이 모두가 흥분과 격앙된 목소리로 서울시 교육감에게 주민들과 협의 없이 이 지역에 장애인 특수 학교를 설립하려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중죄인 다루듯 수십 번을 다그쳐 물었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은 3년 전 이 지역에 한 초등학교가 학생 수 미달로 폐교 됨에 따라 이미 18년 전부터 장애인 특수 학교를 설립하기로 계획된 대로 특수 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시종일관 설득력 있게 답변했으나 반대 측은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은 절대 찬성할 수 없고 그 자리에 지역 발전을 위하여 한방 병원을 지어야 한다고 토론에 나선 패널마다 계속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 했습니다.

또 어떤 50대 쯤 으로 보이는 여성 패널은 이 지역에는 기피 시설이 너무 많아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을 절대 허락하면 안 된다고 몹시 격앙된 어조로 톤을 높였습니다. 이어서 한 장애인의 어머니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지역에 장애인 학교가 없어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려면 매일 2시간씩 차를 타고 멀리 다른 지역에 있는 장애인 특수 학교에 가야만 합니다.” “육체적으로 나 정신적으로 24시간 도움이 필요한 우리 아이에게 버스 안에서 2시간은 대소변이나 육체적 고통을 참기는 너무 길고 힘이 듭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장애인이든 비 장애인이든 아이들이 학교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 “여러분들이 욕을 하시면 저희는 욕을 듣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모욕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나가시다가 때려도 저희는 맞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학교 만은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이때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지역 국회의원을 향해 “의원님 가지 마시고 저희의 의견을 들어 주십시오!” 장애인 어머니는 이렇게 두세 번 외쳤으나 그 자리에 한방 병원을 짓겠다고 선거 공약을 내걸었던 그 의원님은 그냥 외면한 채 말없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장애인을 둔 어머니의 간곡한 애원과 통한이 맺힌 장애인 어머니의 애 끓는 호소를 하는 중에도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집어치우라” “끄집어내라” 등 거칠게 항의하는 고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애아의 어머니는 조금도 분노하거나 동요하지도 않고 진심이 담긴 침착하고 적절한 논조로 토론을 마치는 그분이 참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이어서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 반대 비상 대책 위원회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입가에 거품까지 품으며 장애인 학교 설립을 절대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토론회는 이렇게 고성과 소란으로 계속되어 끝이 보이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이때 40대로 보이는 여성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나는 중증 장애인 딸을 둔 엄마입니다.” “지금까지 토론은 계속되었지만 제 생각에 결론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강서구 주민 여러분께 여기서 이렇게 무릎을 꿇고 장애인 학교를 지을 수 있게 사정하겠습니다.”

나지막했지만 결언한 어조로 말을 마친 장애인의 엄마는 청중과 토론 단상을 향해 조용히 바닥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합장한 그 장애인 어머니의 모습은 전혀 비굴해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도 천해 보이지도 않았고 다만 성스럽고 거룩하게 만 보였습니다.

그 어머니의 뒤로 주위에 있던 또 다른 20여 명의 장애인 어머니들도 같이 따라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쇼 하지 마라!” “끌어내라!” 등 장애인 학교 설립 반대 측의 삿대질과 함께 험악한 악담과 고성으로 토론회 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 꿇은 장애인 어머니들은 토론회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어 토론이 끝난 후에도 계속 전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조용히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숙이고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 한동안 일어서질 않았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말은 항복하거나 굴복한다는 뜻인데 항복할 이유도 굴복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도 오직 장애인을 자식으로 둔 것이 큰 죄라며 그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서슴지 않고 무릎을 꿇고 머리까지 숙여 애원하여야 하는 그 어머니들의 처연한 모습이 우리 마음을 더욱 아프고 슬프게 했습니다.

사실은 3년 전 까지만 해도 그곳의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은 대다수 (65% 이상)의 구민들이 찬성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 학교 예정지 바로 옆에 대 단위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후 그 고층 아파트 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기피 시설이고 혐오 시설인 장애인 학교가 이곳에 들어서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비상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여 정부나 정치권에 압력을 넣기도 하고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한다는 현수막을 만들어 붙이고 유인물을 돌리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남구의 예를 보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장애인 특수 학교가 설립 되기 전이나 후에도 그 지역의 집값은 차이가 없고 오히려 인근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올랐다고 하는 사실은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내려간다는 그들의 주장은 이미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1950년대나 1960년대 우리나라의 초기 장애인 정책은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돌아 다니지 못하도록 수용 시설이나 집에 꼭꼭 가두는 것으로서 장애인을 비 정상인으로 보는 그릇된 인식이 전부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장애인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도출되어 장애인을 둔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사회 계층간 많은 불협화음을 촉발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우연이나 필연 에 의해서 장애를 가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왜냐하면, 질병이나 사고에 의해서 또는 노화에 의해서 우리는 언젠가 는 장애인이 될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토론회에서 장애인 학교를 기피 또는 혐오 시설 이기 때문에 집값이 내려간다고 고성으로 외치던 그 50대의 여성이야말로 육체적으로는 멀쩡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중증 장애인이 아닌지 나는 의심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도 장애인을 누구보다 최우선으로 배려하고 보호하고 장애인들의 의식주는 물론 교육 문화 건강까지 소요되는 재정과 물질과 환경을 완전무결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캐나다와는 판이 하게 달리 죄 지은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평생을 죄인처럼, 때로는 무릎을 꿇고 때로는 머리를 숙이며 온갖 멸시와 수모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알고 살아가는 한국의 장애인들과 장애인 어머니들의 고달프고 힘든 삶을 생각하면, 그들을 위하여 애초 교육청 계획대로 걸어서도 쉽게 갈 수 있는 편리하고 가까운 거리에 강서구 장애인 특수 학교가 세워질 수 있도록 구민 모두가 마음을 모아 선으로 합의를 해 주시면 참 좋겠다고 간절한 희망을 해 봅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불편한 자녀가 탄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장애인특수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어머니들의 행복한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골덴 바지 2024.01.29 (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나는 겨울이면 늘 어깨를 웅크리고 다녔다. 어머니는 내가 키가 크지 않은 이유가 그 때문이라며 자주 나무라셨다. 그게 마음에 걸렸던 지 어느 날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골덴 바지를 한 벌 사오셨다.  바지에 대한 촉감은 허벅지까지 먼저 알아차린다. 병아리 털에 닿은 듯 부드럽고 포근하면서 약간 간지럽기도 했다. 그런데 길이가 길고 품이 컸다. 내 허리춤을 잡아보며 어머니도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성화
어미 2024.01.29 (월)
처음은 어둠이었다가다음은 점이다가그 다음은 점 점 점 선명해지는눈 코 입 손 그리고 발가락그렇게 생긴 꽃들이 내게 와서나는 저절로 꽃이 되고덩달아 꽃이 되어어미의 이름으로 사는꽃의 나날난얼마나 환하고뜨겁고겁 없이 용감했는지
어미
쏟아지는 모시빛의 햇살아래너는 눈이 부시게도 빛나고 있었지.누군가를 향한 너의 기다림은하얀 여백이 되어가고 있었고지울 수 없는 명징한 약속은까만 상흔이 되어 나부끼고 있었어.고결하게 새겨진 너의 이름은성실한 애달픔을 묵묵히 지우며무심한 시간을 견뎌내고 있었지.하얗게 사무치는 천년의 침묵은한겹 두겹 수피를 벗겨 내었고,영혼을 향한 순백의 기도로 다시 태어났었어.빛과 어둠은 자리를 바꾸어 나갔지만너의 가녀린 뿌리는...
이봉란
황혼의 찬미 2024.01.22 (월)
J 에게,엊그제 이민 온 것 같은데 어언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제는 성숙한 디아스포라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네. 내 인생에도 황혼의 자유가 찾아온 셈일세.자네가 보내 준 ‘황혼의 자유’ 라는 글 속에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 노숙해지는 것도 있어 참 좋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도 있다네. 오미크론이 지난 이즈음 아는 목사님의 거동이 불편한 모습을 보면서……그렇지만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웃고 싶으면 웃고 내...
이종구
나의 문학 수업기 2024.01.22 (월)
  학원이란 잡지가 있었다. 1960 년대 중, 고교생들의 인기 잡지로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소년, 소녀 문사들의 문학 등용문 역할을 했다. 참으로 글을 잘 쓰는 친구들이 많았다. 거기에 실린 주옥같은 글들을 보면서 나는 언제나 저들처럼 멋지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고 한탄하고는 했다.  필자가 다녔던 대전 중학교 도서관은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동, 서양의 고전을 비롯해 현대물, 교양 서적 등 만 여권의 장서가 사방 벽면을 가득 메우고...
이현재
끝끝내 매달리려마침내 매운 바람 끝흘러 내리는 눈물처럼마지막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내가 지르고 싶은폐 깊이 눌렀던 고함을 걷어가을 나무 잎 새는 떨어져 나갔다작은 가지에 모든 얘기 걸어 놓고마지막 잎 새는떨어져 나갔다연 고등 새싹 피어 오르던 봄나는 네 앞에 서서새 출발의 새 다짐을갈증의 한 모금 찬물처럼입에 물었다견디다 보니 견디어도 무너지는세월의 회초리는고통에 웃으라고 윽박 지르더라그래도 봄이 오면겨울 견딘 나무에 새...
조규남
설화 2024.01.15 (월)
따사로운 햇살에들력을 풍요롭게 익히었던가을 바람도록키 넘어온 북서풍에 미련이 남아있는 사연들눈 속에 모두다 묻었다겨우내 창 두두리고흰 머리 날리며정이 많아 속 눈물 흘리는 너는살을에는 칼 바람 부는날별이 좋아 밤새워앙상한 가지에 피어낸 꽃 향기없이 피어난설화뒤 돌아볼 시간 없이 사라질 운명명일 햇님이 찿아오시면차거운 세상에 힘겨웠던 마음도함께 반짝이겠지또 시린 가슴 호호 부는날다시 피어나는 숭고함에옷 깃을...
리차드양
 언젠가 고국에서 유행했던 노래가 있다. 그 노래는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였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이 어려웠던 시절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며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어졌던 대중가요이다. 그 당시 방송에서 흘려나오는 노랫가락은 내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올 정도로 잘 알려졌다. 모두가 힘든 시기에는 이렇게 희망을 주는 노래와 꿈을 갖게하는 설교는 듣는이들에게 희망을 갖게하거나 꿈을 꾸게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김유훈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1  2  3  4  5  6  7  8  9  10